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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복원한 전봉준 생가 철거 한다

고증 없는 복원이 문화재 지정 걸림돌

2019년 08월 03일(토) 22:25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동학농민혁명의 영도자 전봉준 장군의 생가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건물은 복원 당시에 고증도 없이 지어져 역사적 현장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문화재 지정을 받으려 해도 가장 큰 장애요소였다.
전봉준 생가는 고창군 고창읍 당촌길 41-8에 소재하고 있다. 이 곳은 전봉준 장군이 1855년 12월 3일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살까지 살았던 곳이다. 원 건물은 동학농민혁명 기간에 모두 불타 없어졌다.
이후에 생가 터만 보전해 오다가, 지난 2001년 고창군에서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전봉준 장군 생가를 복원했다. 안채 1동과 헛간채 1동 등 2동의 건물을 복원하면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지붕 형태로 복원하여 지금까지 생가로 관리해 왔었다.
그러나 전봉준 장군 생가는 원래 있던 생가와도 위치가 틀리고, 고증이 없이 지어졌으며, 그 당시 시대와도 부적합한 건물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었다. 차라리 고증이 없다면 생가 터만 보존하고 표지석을 세우고, 전봉준 장군을 상징하는 흉상이라도 세워서 방문객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문화재지정 신청을 하여도 고증 없이 지어진 건물로 1800년대 시대상과 너무나 동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문화재지정심사위원회에서 부결 판정을 받았다. 현재 5칸 규모의 가옥은 중인이상 부잣집으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상실된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전봉준 장군은 이곳에서 태어나 1894년 3월 20일(음력, 양력 4월 25일) 공음면 구수마을에 있는 무장기포지에서 4,000여명의 동학농민군들이 모여 창의문을 발표하고, 조직적 항쟁에 나섬으로써 전국적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지배세력의 수탈과 억압에 맞서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중운동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전봉준 장군의 생가를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고창군에서는 동학농민혁명유적지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전봉준 생가를 없애고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나머지 작업도 진행할 예정에 있다. 생가를 철거한 후에는 우선 표지석을 설치할 계획이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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