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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성 최고농업기술명인 콩 한 톨에 담긴 희망

우직한 한 길 36년 째 콩과 보리에 청춘 바친 대한민국 최고 달인

2021년 01월 23일(토) 15:35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김복성 최고농업기술명인 콩 한 톨에 담긴 희망
우직한 한 길 36년 째 콩과 보리에 청춘 바친 대한민국 최고 달인

‘2020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더불어 사는 농장」 김복성(59) 대표가 12월 15일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받은 동판 인증패 제목이다. 들기에도 무거운 동판 소재 인증패에 명인의 오른손바닥을 찍은 핸드프린팅과 함께 주요 공적을 새겨, 김복성 명인이 ‘논콩 다수확 재배 및 생력기계화 기술 확립, 콩나물콩 등 우수 품종 확대 보급, 채종기술 확산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여 식량작물(콩)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농업기술을 갖춘 명인임을 공인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2009년부터 식량, 채소, 과수, 화훼·특작, 축산 분야별 각 1명씩 선발하고 있는 최고농업기술명인은 전체 영농경력 20년 이상, 동일영농분야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농업인만이 신청할 수 있고 깐깐한 서류와 현지심사를 거쳐서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선정하지 않는 등 엄격한 조건을 갖춰야 받을 수 있는 인증이다. 농업기술과 아이디어 면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인근 농업인들에게 본보기가 됨으로써 농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 농업인재에게 귀감이 되는 장인정신을 갖춰야 한다. 또한, 보유기술을 타 농업인에게 보급 확산하며 타 농가에 선진 기술을 지도하는 등 나눔과 봉사의 정신까지도 심사를 받아야 하니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뿐 아니라 도덕성 까지도 심사의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이것저것 작목을 바꿀 때에도 우직하게 한 길만 바라보고 36년 째 콩과 보리에 청춘을 바친 김복성 명인은 “이제는 보리밭 사잇길에만 들어서도 보리의 숨소리가 들리고 콩잎 하나만 봐도 가을에 콩이 어떻게 열릴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기르는 농작물과 교감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명인이 겪은 고생과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산면이 고향인 김복성 명인은 마음 깊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지금도 명절 때면 부모님 모시고 명절 보내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명인은 슬하에 자녀를 셋 두었는데도 더 낳았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을 하시던 어머니는 명인이 열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도 잠시, 슬픔보다 배고픔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어린 아이의 눈에 동네 친구네 곳간에 쌓인 쌀 몇 가마는 장차 이루고 싶은 꿈이 되었다. ‘나도 우리 곳간에 곡식을 가득 채워야지’라는 인생의 목표가 생기면서 그의 삶에서는 쉬는 날이 사라졌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남의 밭에 나가 일손을 돕고,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방앗간에 가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농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배움도 포기하지 않았다. ‘백문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즉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해보는 것이 더 났다.’는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으로 중노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실습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또한, ‘졸업하고 장차 무슨 일을 하던지 자기 수입의 1%는 자기의 발전을 위해서 쓰고, 사업 수입의 1%는 사업발전 연구개발에 투자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당시 임업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발전을 위한 연구와 투자의 가치를 깨달았다.
농업을 시작한 이후 침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특별 관리하면서 변화된 사항을 36년째 적어오고 있는 명인의 연구 자세는 그 때부터 싹 튼 삶의 지렛대이다.

학창시절부터 동네 품일을 하면서 늘 성실함으로 칭찬을 받아 온 김복성 명인은 1981년 전투경찰로 군대에 입대해서도 상관에게 인정받아 경찰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해주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찰공무원 제의를 정중히 거절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농사에 대한 꿈이 컸다.
군대를 전역 한 다음해부터 농사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김복성 명인에게 가장 큰 문제점은 땅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의 땅을 임차할 수밖에 없는데 땅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임대료가 비싸 결국 황무지나 다름없는 야산개발지 밭 10,000㎡(3,000평)을 겨우 확보하여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란 의욕과 패기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품일을 하면서 해 본 경험이 있었던 땅콩과 고추가 첫 농사 품목이었지만 땅콩은 굼벵이가 다 갉아 먹고 고추는 탄저병에 걸려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일 년 내내 죽어라 노력하였지만 농지 임차료를 주면 남는 것이 없는 허탈한 결과를 마주하면서 작물 선택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명인은 병충해와 농지 이용률, 판로 등 여러 면을 고려하여 하계작물은 콩, 겨울에는 보리를 심어 2모작 농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다.
1986년부터 시작된 콩, 보리에 대한 명인의 사랑은 35년간 변치 않고 지속되어 2019년에는 농사 규모가 210ha(630,000평)로 늘어나 단일 농가로서는 전국에서 제일 많이 하는 농부가 되어 있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보리수매가 완전히 없어지고 콩 수입은 늘면서 시장상황이 악화되자 많은 농가들이 콩 농사를 포기하고 고소득 특용 작물로 대체할 때에도 명인은 오히려 콩과 보리의 재배 면적을 늘렸다. 소규모 농가는 줄어드는 대신 규모가 큰 농가가 생기면서 명인은 10ha 이상 비교적 넓은 면적을 경작하는 젊은 농업인들과 농기계를 공유하고 영농 정보를 교환하면서 ‘고창군 콩작목반’과 ‘고창보리작목반’을 결성하여 상생 공존을 위해 노력하였다.

개인적으로 시험포를 만들어 우량종자를 생산하고 작목반 위주로 콩 종자를 나누어 주는 등 연구에도 열심이던 명인의 콩에 대해 품질이 우수하다는 소문이 나자 1999년부터 국립식량과학원과 국립종자원 등에서 콩과 관련한 행사와 연구를 같이 하자는 제의가 오고 멀리 강원도와 경상도에서까지 단체로 찾아오는 등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립식량과학원의 현장 연구관, 국립종자원 콩·팥 생산관리지도원으로 활동하였고, ㈜유진종묘에서 공동으로 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출원을 하자는 제의에 응하면서 지금까지 소은(Soun), 소찬(Sochan), 소복(Sobok) 등 모두 3건을 품종보호출원을 하였다.
1991년부터 받은 굵직한 상 만해도 11개에 이른다. 그 중 5개는 대한민국 농업의 수장인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이며 2015년에는 철탑산업훈장, 2019년도에는 ‘신지식인농업인장’을 받았다.

단일농가로서 가장 큰 규모의 농사를 짓다보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듯이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납품 후 돈을 못 받는 것은 그나마 넘길 수 있는 일에 속했다.
하지만 태풍, 가뭄, 병충해 등으로 콩이 여물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년 전, 가뭄이 한창이던 때 그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 통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40일간 입원을 했을 만큼 농작물 걱정은 그에게 숙명같은 일이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고 폭풍우 속에서 전등을 들고 논밭을 해매는 일도 자주 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2020년의 긴 장마로 최고의 피해를 입었지만 그 동안의 고생으로 면역력이 생겼는지 이제는 많이 초연해진 것이다.

“농사는 노력이 30%, 운이 70%”라는 김복성 명인은 하늘이 돕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보리와 콩농사는 기계화가 어려워서 많은 작업을 사람 손에 의존해야 한다. 대부분 밭에서 재배하는 보리와 콩은 논에 비해서 경지정리가 잘되어있지 않고 진출입로도 불확실하며 용수로가 없고 비탈진 산과 연접해 있어 기계경작이 불리하다. 특히 콩은 사람이 직접 수확하여 자연 건조할 때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보니 사람 손이 많이 간다. 1년이면 6천명 가까이 인력이 필요한데 인력 수급이 어려워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난관 앞에서 명인의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들은 이제 그만 은퇴하자고 권한다. 하지만 가을 추수를 끝내고 산더미처럼 높게 쌓인 콩 노적을 보면, 곳간에 곡식을 채우는 것이 꿈이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것 같아 보람 있고 행복하다.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 생각이 들면서 농사는 평생 해야 할 사명임을 느낀다.

김복성 명인은 언젠가 읽었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책 제목처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에 농장 이름도 「더불어 사는 농장」 이라고 지었다. 농장 입구에 「더불어 사는 농장」 간판을 크게 붙여 놓고 오가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그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는 「더불어 사는 농장」 에서 가족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농사를 절대 그만 둘 수 없다는 책임감을 실감한다고 한다.

김복성 명인에게 “농사는 생명이자 천직”이다. 어린 시절의 배고픔으로 한 톨 곡식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남의 입에 한 술 밥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가 지은 곡식으로 잘 먹고 건강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수입 농산물 보다 우수한 우리 농산물, 유전자 조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농산물을 먹이고 싶다는 소망으로 농사를 계속한다.

앞으로 좋은 품종개량으로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콩을 활용한 두부 만들기, 메주 만들기 등 가족 단위로 체험 관광객을 유치하는 6차 산업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또한 지난 35년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적어둔 영농일지와 그 동안의 경험을 책과 슬라이드로 만들어 다른 농업인들과 공유하며 농업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콩으로 내 꿈을 이루었으니 다른 사람과도 그 기쁨을 나누고 싶다”면서 “더욱 좋은 콩을 생산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할 것”이라는 김복성 명인의 콩 한 톨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씨앗이 되어 희망을 싹 틔울 것이다.
유석영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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