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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강선(降仙)과 강선교(降仙橋) 유래

2018년 04월 10일(화) 18:09 [(주)고창신문]

 

↑↑ 기생 강선이 만들었던 다리는 없어졌으나 원래 위치에 새로 건설한 강선교

ⓒ (주)고창신문

지금은 흥덕면이 비록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고창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흥덕현이 있었고, 무장현이나 고창현에서 고부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였으며, 다양한 문화유적과 사적이 많은 곳이다.
특히 이곳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흥덕현감으로 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선운사 IC를 지나 4차선 도로의 선운사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남서쪽으로 흐르는 갈곡천이 있고, 흥덕면과 부안면을 이어주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다리가 강선교이다.
원래 있던 다리는 비록 없어졌지만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군민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은 해마다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방장산 기슭과 신림면·흥덕면·부안면에서 흘러오는 많은 양의 물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여 사람이 떠내려가고 논밭이 매몰되거나 침수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런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재난을 막겠다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는데 강선이라는 나이어린 기생이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기생이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선은 본래 훌륭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기생이 되었다.
강선은 입을 것 입지 않고, 먹을 것 먹지 않으면서 악착같이 번 돈을 몽땅 털어 다리를 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으며,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이때는 조선 성종 때 일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관청에서 많은 협조를 하였다. 성종은 농사를 나라 일의 으뜸으로 삼았고, 저수지를 만들거나 둑을 쌓는 일에는 온 힘을 쏟았다. 이런 시기로 강선이 하는 일에 관청도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빈둥거리던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 일에 나섰다. 몇 달이 지나 다리 공사는 끝이 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마을 사람들은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길이 새기기 위하여 다리의 이름을 강선교라 하였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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