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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 184기 밀집 된 상금리 고인돌

고려시대 이전 축성 추정되는 고산 산성

2018년 04월 25일(수) 10:02 [(주)고창신문]

 

↑↑ 184기가 밀집된 분포를 보이고 있는 상금리 고인돌 군

ⓒ (주)고창신문

대산면 상금리는 고창읍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영광쪽으로 16km 쯤 가면 대산면 소재지가 나오고, 대성농협 사거리에서 남동방향 대마면 쪽으로 500m쯤 가면 갈림길에서 상금리 고인돌유적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상금리가 시작된다.
대산면 15개 법정리 중 하나인 상금리는 장성군 삼계면과 영광군 대마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성송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진입도로의 우측은 거의 전남지역과 경계지역이다. 상금리는 많은 고인돌이 분포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인은 안 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무장군 원송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상금, 중금, 석현을 병합해서 상금리라 하였으며, 성송면에 편입되었었다. 그 후 1987년 행정구역 일부개편에 따라 대산면으로 편입하고 상금, 중금, 차동, 석현 등 네 개 분리를 두게 된 것이다.
상금(上金)마을의 유래를 보면 상금이라고 한 것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에서 쇠(金)가 많이 난다고 하여 쇠네(金川)라 하였는데 마을이 금천(金川) 위에 있다하여 상금(上金)이라 하였다고 한다.
상금마을에 살고 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조선 영조 때 무장면 덕림리에서 살다 이 마을로 옮겨오면서 살게 되었고, 지금은 고흥유씨(高興柳氏), 무송유씨(茂松庾氏), 청주한씨(淸州韓氏), 경주김씨(慶州金氏)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장성군 삼계면과 연결하는 가리재(225m)는 예날 법성포와 장성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육상교통로이다. 여기는 법성포 굴비를 파는 보부상들이 하루에 수백명이 넘어 다녔던 곳으로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금마을은 고산을 등지고 앞쪽은 금천(金川)이 흐르고 있는데 쇠내(金川)의 중간 지점에 있다해서 중금(中金)이라고 하였다 전해지고 있다. 조선 광해군 초기인 1610년경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방이라는 사람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는데 후손들이 번창하여 영광군 대마면 등지에 터를 옮겨 살고 대마면에서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았으며 지금은 정씨, 진씨, 차씨 등 여러 성씨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차동마을은 1600년경 임진창의선무원종공신으로 녹권을 하사받은 예빈사 주부 慶州金氏 김익수라는 사람이 중금에 자리를 잡은 뒤 옥녀금차낙지 명당터를 찾아 이곳에 마을터를 이루고 차동이라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석현(石峴)마을은 1730년경 조선 영조때 진주강씨(晉州姜氏)가 마을 터를 이루고 성송면으로 넘어가는 마을 뒤쪽의 고개에 큰 바위가 있어서 석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상금리 고인돌은 상금리 입구에서 장성군 경계인 가리재 정상까지 1.65km 거리에 184기가 소재하고 있는 곳으로, 447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창고인돌유적에 이어 군내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고인돌이 있다.
이 곳의 고인돌은 2001년 고창군 시행으로 원광대박물관에 조사를 맞은 ‘고창상금리 지석묘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반식, 탁자식, 개석식, 지상 석곽식, 위석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상금리 고인돌은 장성군 삼계면까지 이어지고 있어 청동기문화의 전파과정과 교통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산(高山)은 노령산맥의 주산인 방장산에서 뻗어 내린 산맥은 문수사의 경수산을 지나 성송면과 대산면으로 이어지는 고산까지 연결되어 있는 산이다. 해발 526.7m의 고산은 성송면 남쪽에서 대산면에 연결되어 있어 고창군과 장성군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다. 고산에 올라서 보면 고창군과 장성군은 물론 날씨가 좋은날엔 광주 무등산과 담양 추월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고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제1봉은 278.3m의 각시봉으로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여 와우형 봉우리라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 제 2봉인 309.8m의 깃대봉, 제 3봉인 띠꾸리봉, 제 4봉인 촛대봉, 제 5봉인 527m의 고산 정상이 있다. 제 5봉은 이곳에서 시작한 계곡물이 대산천과 와탄천의 발원지로 영광군 덕오리에서 합류한 후 서해로 흐른다.
고산산성(高山山城)은 대산면 상금리와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와 경계인 고산에 있으며, 길이 5,000m, 높이 5m 정도인데, 지형에 따라 형식이 다르며, 자연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성하였다. 성의 양식을 보면 자연적 계곡과 산을 이용한 포곡형으로 공법은 내탁법을 사용하였으며 겉은 석축으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을 다져서 쌓았다. 외면을 자연석을 수직 쌓기와 물림 쌓기를 하였다.
성문은 남문과 동문의 형태가 남아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신동국여지승람과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고려이전의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헌에는 산성의 둘레가 8,100척(2,400m) 이고 내유삼천(內有三泉)이라고 기록되었으며, 성 안에 용지(龍池)와 서봉사(瑞峯寺), 수고암(水庫庵)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600m의 산성 형태가 남아 있다.
법우선사(法雨禪寺)는 상금리 북쪽자락에 위치한 한국불교 법륜종 사찰로 2001년 3월 석호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1998년 풍수에 밝은 사람과 함께 고산에 법당터를 찾기 위해 산신제를 올리던 중 부처님의 선몽으로 법당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절 이름을 물질보다 위에 있는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법우선사라 하였다고 한다.
상금마을 당산제는 재앙을 물리치고 풍년과 복을 비는 동제신앙 유적이다. 당산은 이정표와 경계표시 까지 갖고 있는 성역의 상징이다. 이 곳은 500년 수령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 당산석 역할을 하는 고인돌 군, 자연석 기단부로 이루어져 있다. 정월 대보름날은 마을의 평안함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모신지 2천 5백년의 전통을 가진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칠성날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다지는 행사를 하였다고 한다.
중금과 차동마을에도 500년 넘은 당산나무가 있다. 이 곳 두마을은 매년 정월대보름날 주민들이 모여서 음식을 준비하고 농악을 치며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이 없도록 당산제를 지내 오고 있다.
차동마을에는 효열부 광주이씨기적비(孝烈婦 光州李氏紀蹟碑)와 효열각이 있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심성이 착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17세에 이 마을에 사는 경주김씨 집안인 김광희에게 시집을 왔다. 그녀는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기고 길쌈을 하며 농사일을 돌보며 부도를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시아버지 상을 당하고, 25세 나이에 남편이 군에 징용되어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으며, 시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였다. 90세까지 산 시어머니 봉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와 같은 효열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비와 정각을 건립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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