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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할 비결이 배꼽에 숨겨있다 전해

손화중 꺼냈다는 소문에 수만 동학교도 모여

2018년 04월 25일(수) 10:03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선운사의 서쪽으로 약 2.5km지점에 있는 도솔암 서편 칠송대(七松臺) 의 바위면에 4.5층 높이로 새겨져 있다.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연화좌대가 갖춰져 있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위에서 출토된 기와명문을 통해서 선운사가 소재한 선운산이 전에는 도솔산으로 불렸다는 점에서 도솔암 마애불로 부른다.
마애불은 높이 약 40m의 바위 면에 16m의 높이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불신 높이 12.5m, 양 무릎의 폭 8.5m 그리고 불신 밑의 좌대높이는 2.7m로서 밑에서 보면 마애불은 지상에서 약 6m 올라가 있다. 마애불이 조각된 암벽 위에는 몇 개의 구멍과 쇠 못, 부러진 목재들이 남아 있는데 옛 동불암이라 부르던 공중누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수지(手指)의 표현이 추상적이며 양손은 무릎위에 내장(內掌)하여 가지런히 높았다. 상부로 가면서 너비를 줄였는데 좌대에 다는 장식은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소박한 것이다. 복장(服裝)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애불은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미륵사상과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해지면서 농업·산업·수공업·신분 제도 등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조선은 전국 각지에서 조선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는 오래전부터 떠도는 예언에 따른 것으로, 조선 왕조는 500년이라는 숙명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는 민중들의 바람과 더불어 새로운 사상도 도래하였다. 곧 동학사상으로, 당시 고창 지역에도 동학사상이 팽배해 있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돌출부에 비결이 들어 있는데,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의 배꼽을 열어 보기 전부터 복장 감실을 둘러싼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곳에는 신기한 비결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하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 살도 들어 있어서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이서구가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에서 서기가 뻗치는 것을 보고 뚜껑을 열어보니 책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벼락이 치는 바람에 ‘이서구가 열어 본다’는 대목만 얼핏 보고 다시 넣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그 뒤로도 여러 사람들이 열어 보고자 하였으나 벽력이 무서워서 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장 지역에서 최대 동학 조직을 가지고 있는 손화중은 동학교도들과 함께 이 비기를 꺼냈다고 전해진다.
황현의 『오하기문』과, 김재홍(金在洪)의 『영상일기』에 의하면 1892년 8월 전라도 무장현에 큰 지목(指目)이 일어났는데 도내의 유수한 두목은 물론 동학당이라면 개인까지도 잡아들여 무장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선운사 용문암 석불 배꼽에 있는 비결을 훔쳐 갔다 하여 강도 행위이며, 역적 모의였기 때문이다. 관헌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동학당 영수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고영숙(高永叔) 등 세 사람을 주모자로 몰아 사형을 선고하고 옥에 가두었는데 각지의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무장을 에워싸고 관아를 습격할 것이라며 위협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무장수령은 도망가고 죄수는 탈옥하였다.
이 일로 전라도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은 점차 심해지는데도 오히려 동학교도는 수가 점차 늘어갔다. 무장·고창·영광·흥덕·고부·부안·정읍·태인·전주·금구 등 각지에서는 이민(吏民)은 물론이고 동학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92년 이 비결을 당시 고창에서 동학을 포교하던 손화중이 꺼냈다는 소문이 퍼지자 손화중의 접(接)에만 수만 명의 새로운 교도가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창 지방에서 손화중이 차지하고 있던 영향력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를 말해 주는 것이며, 손화중포(孫化中包)에서 비결을 이용하려고 하였던 점은 추측해 볼 수는 있으나 동학농민혁명과 직접적인 관련 사실에 대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당시 이 일이 얼마나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포가 동학 교단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곧 손화중포는 고부봉기 후 동학 농민 혁명의 봉화를 올리는 데 주도적인 일을 한 부대로 선운사 마애불 비기 탈취사건은 손화중포의 조직과 이상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곧 고창에서 손화중이 차지하고 있었던 영향력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를 잘 보여 준다. 선운사의 마애불 비결 설화는 당시 혼란한 시대적 정황이 마애불 안에 있는 비결로 민심들의 기원을 해결하고자 한 일단의 사건이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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