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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을 모신 우리나라 최고의 도산서원

열린 자세로 진정한 용기를 일깨우는 대학자의 넉넉한 인품 느껴져

2020년 10월 20일(화) 20:50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토계리)

퇴계 이황을 모신 우리나라 최고의 도산서원
열린 자세로 진정한 용기를 일깨우는 대학자의 넉넉한 인품 느껴져

2020년 10월 1일 정축(丁丑)일, 도산서원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추석이기도 한 이 날은 음력 8월 들어 두 번째 정(丁)일로,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는 도산서원의 가을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번 가을제사에는 서원 역사 상 최초 여성 초헌관이 족두리와 당의 차림으로 등장하였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제사에 주부가 두 번째로 술을 올리는 아헌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서원의 제사처럼 사대봉사를 넘어서는 불천위 제사에 초헌관으로 여성이 등장한 경우는 처음인 것이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여성 초헌관이 입을 제례복을 결정하는데도 아홉 달 넘게 고증과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도산서원의 초헌관은 매년 추천된 인물 중에서 덕행과 학행, 공적 등을 따져서 선정하는데 이러한 절차를 거쳐 선정된 최초의 여성 초헌관은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배용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의 이사장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우리나라의 서원을 등재시키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열정을 바쳤던 공적을 인정받은 것이다.
유교의 서원이 여성 초헌관을 인정할 만큼 시대 인식이 변하였고 우리의 의식도 세계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세태를 읽고 스스로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유학자들이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이렇듯 개방적이고 유연한 도산서원의 변화는 도산서원의 배향인물인 퇴계 이황(1501(연산군 7)~1570(선조 3))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의어금이 불원어고(宜於今而 不遠於古)”, 예란 현실의 실정에 맞되 옛 법도에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도산서원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퇴계의 종손 이근필 서원 운영위원장의 말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시대를 따르라는 퇴계의 ‘시종(時從)’을 언급하며 유교가 고집만 부리지 말고 세상을 사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퇴계의 열린 자세는, 널리 알려진 고봉 기대승과의 ‘사단칠정론’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 성리학의 독자성과 높은 수준을 보여준 ‘사단칠정론’은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권위를 가진 59세의 퇴계가 26살이나 어린 새내기 학자인 고봉을 힘이나 권위로 누르지 않고 동료 학자를 대하듯 8년간 12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었던 논쟁이다. “진정한 용기는 기세 높여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는 것”이라 한 퇴계의 글에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열린 자세로 부족함을 찾고 고쳐나갈 수 있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는 것을 일깨우는 대학자의 넉넉한 인품을 느낄 수 있다.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맑고 순수한 퇴계의 인품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도산서당’이라는 현판이다. 장중하지만 엄숙하지 않고 단정하지만 따뜻하고 편안하다. 권위를 내세우고 체면을 앞세웠더라면 이런 현판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해서체와 상형문자, 예서체까지 섞인 현판의 글씨는 모든 서체를 통달하고 초월하여 그 너머의 경지를 이룬 퇴계의 빼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가 육십 세에 직접 설계하고 주도하여 지은 서당이다. 도산서당을 짓기 전에도 여러 번 집을 지었는데, 퇴계는 50세부터 전원에 은거하는 삶을 택하여 안동면 토계리에 3칸 규모의 한서암(寒棲庵)을 지어 머무르면서 제자들을 위해 근처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지었다. 1973년에 보물 제585호로 지정된 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에 들어있는 겸재 정선의 4폭 묵화(墨畵) 중 「계상정거(溪上靜居)」는 1746년 겸재 정선이 퇴계가 머물던 서당과 주변 산수를 담은 풍경화로 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이다. 풍경 속의 서당이 도산서당인지 계상서당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계상’을 고유명사로 해석하는지 일반명사로 해석하는지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계상서당이 좁아 제자들이 불편을 겪자 퇴계가 쉰일곱 되던 해에 도산 남쪽의 땅을 구해 집을 짓기 시작하여 육십 세에 도산서당을 낙성하였고, 이듬해에 기숙사인 농운정사(隴雲精舍)를 지었다. 퇴계가 직접 주도하여 세웠던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뒤로 퇴계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을 건립하면서 서원과 서당이 같은 공간에 자리하게 되었다.
서원은 1574년(선조 7)에 건립되어 1575년에 선조로부터 편액을 받았고 그 다음 해인 1576년 2월에 사당을 준공하여 퇴계 선생의 신위를 모셨다.
도산서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인의 경우 1500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매표소에서 도산서원은 500미터 정도 거리에 있어서 안동댐 상류를 따라 널찍하게 잘 닦인 길을 따라 걸으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안동호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기 좋은 벤치 앞, 호수 안에 마치 섬처럼 시사단(試士壇)이 떠있다. 시사단은 과거를 보았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한 비각을 세웠던 것인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축대를 높이 쌓아 비각을 보존하였다. 1792년 정조 때 도산서원 앞 송림에서, 퇴계를 추모하여 임금이 친히 내린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았는데 7천명의 응시자가 모여들었던 송림은 물에 잠기고 당시 영의정 번암 채제공의 비문만 전해진 것이다.
서원 앞에서 안동호를 관망할 수 있는 양쪽의 전망대에도 퇴계가 붙인 이름이 있다. 동편이 천연대(天淵臺), 서편이 운영대(雲影臺)로 자연을 벗 삼아 호연한 기운을 기르며 심신을 수양한 선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서원의 넓은 앞마당,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는 수령 400년도 넘은 왕버들이다. 원래 크게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앞마당을 모두 감싸 안을 듯 구불구불한 가지가 양쪽으로 족히 10미터는 뻗어 노거수의 위용을 보여준다.
왕버들 가지가 뻗은 서원의 담 가까이에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 열정(冽井)이라는 우물인데 붉은 페인트칠이 거슬린다. 열정은 열렬한 애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다’는 의미의 찰 열로서 ‘찬 우물’을 뜻하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찬 우물물을 마시며 공부에 매진하였던 선비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도산서원은 앞부분의 서당영역과 뒷부분의 서원영역으로 구분된다. 서당 영역의 건물로는 도산서당,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역락서재, 하고직사가 있고 서원영역에는 강당인 전교당, 동·서재, 사당인 상덕사를 비롯하여 광명실, 전사청, 장판각, 상고직사가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서원의 가장 서쪽 아래에 위치한 역락서재는 1550년 퇴계의 제자 정사성의 부친이 아들을 맡기며 기증한 건물이라고 한다. 원래는 담장이 없었는데 지금은 담이 건물과 너무 가까이 세워져서 답답한 느낌이 있다. 현판 글씨는 퇴계의 글씨이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스승의 공간인 서당이 동쪽에 배치되어 있고 제자들의 공간인 농운정사가 서쪽에 있다. 이동위상(以東爲上)의 위계에 따른 것으로서 돌아가신 분에게는 서쪽이 상석이지만 살아계신 분에게는 동쪽이 상석이기 때문에 퇴계의 공간이 동쪽에 배치된 것이다.
서당의 담장 앞, 뜰에는 퇴계가 좋아했던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퇴계가 눈을 감는 순간 마지막 말이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는 말이었을 만큼 아꼈던 매화는 ‘도산매’ 혹은 ‘퇴계매’라는 이름까지 붙었는데 그 매화는 죽고 없지만 매화를 좋아했던 스승을 기리며 심은 매화가 서당 앞에서 자라고 있다. 도산매에는 퇴계를 흠모했던 관기(官妓)의 일화가 있다. 퇴계가 마흔여덟 살에 단양군수를 지냈는데 미모의 관기, 두향이 퇴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여러 선물을 올렸으나 번번이 거절당하자 퇴계가 매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귀한 매화를 구해 보냈다고 한다. 퇴계는 매화만큼은 거절하지 않고 애지중지 잘 키워 죽는 순간까지 곁에 두었던 것이다.
동쪽 담장 근처에는 샘을 파고 몽천(蒙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경의 육십사괘의 하나인 몽괘에서 따온 이름으로 ‘산 밑에 샘이 남’을 상징한다. 몽천 위로 산기슭에는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를 심은 동산을 만들고 절우사(節友社)라는 시를 짓고 이름을 붙였다. 도연명의 동산인 솔, 국화, 대에 굳은 절개와 맑은 향기를 간직한 매화를 넣어 친구를 맺는다는 절우사 시에는 퇴계의 멋이 물씬하다.
싸리문인 유정문에 들어서면 도산서당이라는 현판을 기둥에 걸고 남향하여 서있는 3칸 규모의 서당이 마주한다. 중앙에 온돌방, 서쪽에 골방 딸린 부엌, 동쪽에 대청으로 단촐 하여 선비의 검소함이 느껴진다. 거처하는 방을 완락재(玩樂齋), 대청을 암서헌(巖棲軒)이라 한 현판이 감히 따르기 어려운 선비의 품격을 전한다. 뜰 한쪽에는 못을 만들어 연(蓮)을 심고 정우당(淨友塘)이라 하였으니 세심하고 애정 어린 퇴계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서당의 서쪽문으로 나오면 맞은편에 제자들을 위해 지은 농운정사가 있다. 도산서당을 짓고 이듬해 세워진 농운정사는 위에서 보면 '工'(공)자 모양으로 지었는데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바란 스승의 뜻이었다. 농운정사의 뒷건물은 하고직사로 음식을 만들고 제사 준비를 하는 등 선비들을 수발하기 위한 여러 일들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서당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은 진도문이다. 책을 보관하는 광명실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누각으로 지어진 것은 습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현판은 퇴계의 친필이다. 원래 역동서원에 걸려있던 것을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자 이곳에 옮겨 걸었다.
진도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전교당이 보인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서쪽에 온돌방인 한존재(閑存齋)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마루로 시원하게 트였다. 기둥사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석봉 한호가 선조 앞에서 쓴 글씨라 한다. 전교당 뒤편으로 전사청과 사당인 상덕사가 있다. 판각을 보관하는 장판각은 상덕사로 들어가는 삼문 동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인 상덕사와 출입문인 내삼문, 그리고 사당 주위를 두른 토담은 모두 '도산서원상덕사부정문및사주토병(陶山書院尙德司附正門及四周土屛)'이란 명칭으로 1963년에 보물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전교당 서쪽에는 상고직사가 있다. 고직사의 열린 문 사이로 멀리 부드러운 앞산의 능선 아래 안동댐의 푸른 물결이 내려다보인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전경이 액자처럼 걸려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전교당의 단 아래 양 옆으로 동재 박약재와 서재 홍의재가 있다. 동재의 문이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웬 선비가 요즘 보기 드물게 한지에 붓글씨를 쓰고 있다. 서원의 사무를 보는 이태원 별유사가 다가올 향사(享祀)를 앞두고 제관 임명을 위한 망기(望記)를 쓰는 중이었다. 서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던지 열의를 다해 서원에 대해 설명하고 여러 가지 자료도 챙겨 감동을 주셨다.
도산서원과 관련된 또 다른 그림으로 1970년 보물 제522호로 지정된 「강세황필 도산 서원도」가 있다. 강세황이 도산 서원의 경치를 그리고 그림 왼편에 글을 적은 작품이다. 서원에서 모시는 위대한 성현의 후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화가들이 작품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서원의 풍광이 수려함을 알 수 있다.
도산서원은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서원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글,사진, 유석영, 조창환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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