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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고인돌의 중요성 재조명 13

동남아시아 고인돌과 한반도 고인돌 비교 분석 - 인도네시아 2

오천년의 역사를 품은 뎀포산, 시공을 초월한 고인돌의 역사 인도네시아에서 만나다

2007년 11월 28일(수) 11:25 [(주)고창신문]

 



새벽 다섯시 여장을 다 차려 방을 나서니 어젯밤부터 걱정스럽게 내리던 비는 그치고 새벽 안개가 자욱하였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니 파가랄람의 새벽장이 서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새벽장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고인돌을 빨리 보고싶은 마음에 일분이 아쉬운 터라 바로 고인돌을 찾아 숙소를 나섰다. 밤의 장막을 거두자 전날 밤에 볼 수 없었던 주변의 경관들이 새롭게 펼쳐졌다. 잠자리 날개같은 새벽의 여명을 입은 뎀포산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의 옷자락이 닿는 주변으로 가까이 혹은 멀리 그 신성함을 지키듯 서있는 석상들과 경배를 올리듯 엎드려 있는 고인돌들이 여기 저기서 우리를 맞았다. 

인도네시아의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현존하는 거석문화에 속해 있는 것 두 범부로 나눌 수 있다. 어떻게 인도네시아의 고인돌 제작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인도네시아의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쉽게 바꿀 수 없는 믿음, 관습, 전통, 의례와 규범 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습과 전통은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데, 특히 자연이 “산화적인” 선사시대 사회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규범, 의례, 매장, 매장품 제작 등이 눈에 띄게 변하지 않는 이유이다. 근대시대는 외부의 문화적 영향을 Sumba와 Flores로 가져왔지만 그곳 사회의 믿음과 생각패턴을 철저히 바꿀 수 없었고, 특히 두 곳이 모두 고립되고 도달하기 어려워진 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Sumba와 Flores에 현존하는 거석문화는 고고학, 특히 거석문화 연구에 유용하다. 현존하는 거석문화는 민족지학의 유사성 또는 민족고고학의 목적으로서 사용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과거의 사회 복원을 시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Sumba에 현존하는 거석문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거석문화 기반의 사회가 만들어졌으며, 거석문화 구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의례와 매장이 어떻게 시행되었으며, 돌들을 어떻게 옮겼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현존하는 거석문화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은 Pasemah 고원(남부 수마트라), Lampumg과 동부 자바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는 반면 현존하는 거석문화의 고인돌은 Sumba, Flores와 Sabu에서 발견된다. 두 그룹 사이에는 독특한 차이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은 단순한 형태인데 돌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평평한” 상부와 작은 돌들이 상부를 지탱하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졌다.
고인돌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근원적인 믿음, 즉 조상숭배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본래 선사시대의 고인돌은 신앙적인 의례에서 상단에 헌납물을 바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추측은 사람의 뼈와 매장품 같은 매장행위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Sumba Iaya 국립 고고학 연구센터의 많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결과들을 근거로 삼는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공예품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Lampung(남부 수마르타)의 고인돌은 금속 세공이 존재하지 않았던 초기 선사시대 때의 것임을 추정하고 있다.

뎀포산은 우리나라 백두산 보다도 높은 3159M 였는데, 멀리서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넓게 팔을 벌린 것처럼 부드러운 능선으로 낮은 이등변 삼각형이 연상되어서 그렇게 높은 산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가이드와 촌장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테굴왕기(TEGUR WANGI)마을, 벨루마이( DUSUN BELUMAI)마을, 탄중아로(TANJUNG ARO) 마을을 차례로 답사하기로 하였다.
숙소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테굴왕기 마을에는 고인돌과 석상들 그리고 석실고분이 있었는데, 벼가 익어가는 들판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은 고창지역의 고인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고인돌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인류가 한반도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고인돌에서부터 익어가는 벼 속에 파묻힌 고인돌까지 백여 개가 넘는 고인돌들이 5000년의 시간을 견디며 위대한 자연의 품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고인돌이 있는 앞쪽으로는 네 개의 석인상들이 큰 눈을 부라리며 ‘이 곳은 신성한 곳’임을 말하고 있었다. 전체의 반절 정도가 얼굴이라 그 얼굴의 눈 코 입 귀가 선명하였으며 투박하면서도 위협적인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학자들은 이 석상들이 모두 어떤 구조물의 모서리에 장식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석상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석상도 있었는데,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는 석상이었다. 머리부분은 훼손되어 누구를 표현하였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마른 몸과 앉아 있는 자세가 부처를 연상시켰다.




벨루마이 마을의 고인돌 역시 논 가운데 무리를 지어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초록의 바다위에 고요하게 떠있는 섬들 같았다. 이 마을에도 역시 큰 판석으로 네 벽을 막은 석실고분이 있었는데, 테굴왕기의 석실고분과 비슷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벼를 심은 시기가 달랐는지, 이쪽 논에서는 아직 어린 모들이 자라고 있는데, 저쪽 논에서는 추수를 하고 있기도 하였고, 강가에는 이미 탈곡이 끝난 알곡들을 말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의 60년대 농촌마을을 보는 듯 하였다. 사람들의 표정도 그 만큼 순수하였고, 그들은 사진찍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탄중아로 마을에서는 독특한 석상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신성한 장소로서 사람들은 전통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고 있었는데 사랑에 빠진 처녀 총각이 그만 전통을 위반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그들을 휘감아 죽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석상은 나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마을에서도 논이나 들판, 집안에서 잘 생긴 고인돌들이 엎드려 우리를 맞았고, 부근에는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석실고분도 있었다.
이렇듯 파세마 고원 지역의 석상과 석실고분 그리고 고인돌은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서 그 옛날의 숨결을 전하며 신앙적 대상으로 현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흐르고 있었다. 고인돌의 분포 주변에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형태의 석상들과 석실고분이 있다는 점만 빼면 고인돌 자체는 고창 지역의 고인돌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파세마 고원의 고인돌은 사람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논과 벌판 속에서 때로는 강아지의 침대도 되었다가 오리의 놀이터도 되는 등 사람들의 삶 속에 그저 존재하고 있었고, 간단한 안내 표지판이 있는 정도였다. 관리사무실이나 배치된 안내인도 없이 고인돌을 찾는 사람이 있을 때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동네의 촌장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마을 사람들의 문화유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방문객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자세는 고창 지역의 고인돌 보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의 삶과 유리된 채 썰렁하고 형식적인 사무실과 관리인의 손에 방치되고 있는 유적들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팔렘방에는 도시를 관통하여 무시(MUSI)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강물로 밀려들어갈 듯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집들을 보니 마치 바닷가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굴딱지가 연상되었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많았는데, 강가의 공원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할 일 없이 앉아 이방인을 호기심과 두려움이 서린 낯선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서 그 아이들이 앞으로 견디어 가야할 절망적인 삶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팔렘방의 박물관에는 파세마고원에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석상들이 피곤한 기색도 없이 퉁방울 눈으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하마터면 ‘하이파이브’하자고 손 내밀 뻔 하였다. 
팔렘방 공항에서는 자카르타로 오는 비행기표를 끊느라 꽤 애를 먹었다. 창구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알아듣는 바람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서 문장을 적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하다가 뒤늦게 멜라(MELA)라는 그녀의 친구가 와주어서 어렵사리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멜라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 드라마 ‘대장금’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고, 영화배우 ‘권상우’씨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자카르타로 6시 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표였는데, 인도네시아 국내 항공들이 연착이 많다더니 소문과 다르지 않게 비행기는 두시간 이상 연착하여 8시30분이 넘어서야 출발하였다. 팔렘방의 맛있는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안고 비행기는 자카르타를 향해 출발하였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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