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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 변천과정 살필 귀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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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주련 11점 고창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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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3일(목) 10:4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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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암마을 인촌 김성수 선생 집안 제실에 걸려있는 11점의 추사 주련 사진들. 왼쪽 두 번째 주련 적향강파동성두(謫向江波動星斗)의 첫 단어 ‘적향’은 귀양이라는 뜻이다. | ⓒ (주)고창신문 | | 고창향토문화연구회(회장 오강석, 이하 향토문화연구회)에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쓴 주련(柱聯: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 편액 탁본을 공개해 학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향토문화연구회는 12일 오전 10시 고창군립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산면 반암리 인촌 김성수 집안의 제실에 걸린 주련 11점이 추사 글씨임이 학계 고증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향토문화연구회는 해당 주련이 제주도 귀향길에 오른 추사의 심정을 담은 내용인 것으로 추측하여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추사의 유배 행로 추정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귀중한 자료라는 학계의 평가를 받았다.
고창에서 추사의 행적이 처음 나타난 곳은 부안면 하오산마을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동생인 서정태(93) 시인은 13세 때 하오산마을에 사는 친구 이동필 씨의 집에 갔다가 그의 할아버지에게 추사와 관련된 일화를 전해 들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정태 시인은 “이 씨가 집안에서 소를 잡아 추사를 대접하고 육포를 떠서 귀향길에 먹을 수 있도록 융숭히 대접했다”며 “이를 고맙게 여긴 추사가 병풍 글을 써준 것을 고 이규동 씨가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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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향토문화연구회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추사와 관련된 내용을 발표했다. | ⓒ 하우람 기자 | | 고 이규동 씨의 아들인 이춘헌(78) 씨는 “평소 선친으로부터 추사가 써준 병풍이 6.25때 소실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증언하며 “임종을 앞두고도 여러 번 추사가 글을 쓴 병풍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추사박물관의 허홍범 학예사는 “벼슬을 지냈긴 했지만 죄인인 추사를 객사에 재울 수 없어 유배지까지 가는 동안 지방 수령들이 대부분 유숙할 곳을 마련해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발견된 11점의 글씨는 아산면 반암리 인촌 김성수 집안의 제실에 걸려 있다. 반면 사학자 김상휘 박사가 1975년에 이 제실에서 주련 20점을 탁본해 소장한 점으로 볼 때, 주련은 애초에 총 20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9점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다.
국사편찬위원이자 추사 금석문연구가인 이용엽 씨는 “그 동안 전북지역에서 거의 발견된 적이 없는 추사의 주련이 대거 발굴된 것은 추사 연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발굴된 추사 중기의 글들은 추사체의 변천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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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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