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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_ 정창진 전 기획실장

"고창군 발전 위한 토대 마련"

2016년 05월 10일(화) 13:42 [(주)고창신문]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 또,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다. 시간은 상대적이기에 똑같이 주어지지만 동일한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20대의 하루와 70대의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쓴 이들은 오늘날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이번호 <고창신문>은 고창군 발전을 위해 매진했던 초대 기획실장 정창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정창진 초대 기획실장

ⓒ 하우람

▶ 퇴직 이후로 지금까지의 근황은?

= 공직생활을 마친 이후로 얼마 동안은 자유롭고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만, 그것도 잠시고 생활이 지루하고 불안하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던 중 집 뒤의 야산을 개간하여 과수원을 조성하여 10여 년간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이나 영농지식의 부족으로 관리가 힘들어 폐원하고 말았습니다.

과수원 내의 위치해 있던 기존의 산소에 조상님들의 묘원을 조성하여 초천(草川)묘원이라 명명하고 관리에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친회장으로도 2년 동안 활동하며 종친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고요.


▶ 공무원 재직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 73년도 새마을계장으로 근무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어렵고 힘든 때였습니다.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 세대들은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 같지만… 당시 새마을운동은 대단했습니다. 산을 깎고 도로를 만들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나라를 바꾸는데 동참했고요. 지금은 도로 하나를 내더라도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게 보통 복잡한 게 아닙니다. 그때는 ‘내 재산이 조금 손해 보더라도 마을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제가 담당했던 무장의 덕산마을이 면별로 1곳씩 선정하는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덕산마을에 정씨 씨족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제가 담당자가 되자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우려했습니다. 그래도 공평하게 했습니다. 규정만 따라 가다보니 성과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새마을계장이 끝난 뒤였는데, 무장면을 지나다 우연히 만난 주민이 보자기에 싼 ‘청자담배’ 몇 갑을 제게 건넨 적 있습니다. ‘새마을계장 끝나기 전에 주려고 했는데 이제야 준다’면서요. 그렇게나 기분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역에서만 근무를 했습니다. 때문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실과소장직을 주로 거쳤습니다. 그 시절 고창군의 다양한 사업을 보고 듣고 이루는 데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창진 전 기획실장의 연세가 여든둘이다. 앞으로의 여생을 보낼 계획은?

= 제 좌우명은 ‘가족을 사랑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자’입니다. 나라와 사회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평안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조상님께서 건강한 몸을 물려주신 덕분입니다. 또, 나라와 사회가 공무원으로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연금을 받으며 지금의 논밭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받아온 관심과 사랑을 기억하고, 저 역시 베풀고자 노력합니다. 그간의 과오를 뉘우치며 반성하는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기억하되 과거에 함몰되지 않는 진취적인 노인이 되고자 합니다.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사회의,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 퇴직 이후의 활동 중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 진주정씨 종중의 시제와 종친회 활동에 항상 참여하여 종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것 같습니다. ‘종친회’라는 게 단순히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닌, 뿌리를 같이 하는 혈족들의 모임입니다. 넓은 개념에서 보자면 모두 한 가족입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백원철 박사의 한문강독반이 개설된 이래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다니고 있는 것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다 보니 한문 글자 자체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에는 더욱 어렵고 실천은 더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월-화요일이면 도서관에 나가 한문을 공부하고 옛 것을 익히는 게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자랍니다. 꾸준히 배우다보면 노후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군민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입니다. 모두가 조금씩 배려하고 서로를 아낀다면 더 따뜻한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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