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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의 숨은 주역 사호공 함양오씨"

기획_ 고창군 종친회 탐방 ⑥창녕조씨 종중

2016년 08월 31일(수) 15:35 [(주)고창신문]

 

종친회란 집단적인 정체성 외에도 뿌리를 보존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이들이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듯, 자신의 근본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고창에서는 어떤 종친회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이번호 <고창신문>은 지면을 통해 함양오씨 고창군종친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시조 함양부원군 오광휘

시조는 오광휘, 자는 유원(攸元), 호는 송천(松泉), 익호(謚號),는 문도(文度)다. 고려 명종 23년 문과에 장원하여 상서령 좌복야에 올랐다. 신종 2년 상장군이 되어 명주의 도적 김순령을 토벌했고, 고종 4년에는 김취려 장군과 더불어 계단병을 대파하고 몽고군과 연합, 동진군을 강동에서 격파, 추충임난공신(推忠靖難功臣)에 책록되었다. 품계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고,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에 봉해졌다.

↑↑ 사호공 묘소.

ⓒ 하우람

사호공파

사호공파는 시조 함양부원군으로부터 13세인 사호 익창의 후손이다. 그 내력은 시조 함양부원군 광휘의 6세인 두암공 상덕의 자제로, 7세 치선(운봉파)-치행(남원파)-치인(곡성파)로 최초로 분파되어 치선의 자제인 8세 경충(수심제공)의 자제 9세 종하(운봉파), 종은(무장파), 종주(여산파)로 큰 틀에서 재분파되었다. 종은(무장파)의 장남 증(정랑공파)의 후세는 전남장성에서 세거하며, 사호공파는 종은(무장파)의 차남 전라좌수우후부사를 지낸 10세 숙이 돌아가시자 11세 세영이 운구 한양에서 낙향하여 고창현, 무장현 등에 세겨하였다.

 

↑↑ 오재형 회장(왼쪽)과 오영택 재무(오른쪽).

ⓒ (주)고창신문

 

그의 손자인 13세 익창이 임진, 정유재란시 이순신 장군을 민간차원에서 도와 군수품을 조달하는 등 난후 선조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찰방에 제수 되었으며 광해6년 익사원종공신녹(1등)을 제수 받아 현 죽산사(사호 오익창, 사호공의 子 절암 오전, 사호공의 십일세손 수산 오병수)에 배향하여 그 후손이 사호공파가 된다. 사호공파는 다시 7파(종, 관음, 풍촌, 운호, 용산, 백옥, 부정)로 분파하여 현재는 고창뿐만 아니라 서울 등 경향각지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주사무소는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죽산사다. 오재형 회장, 오재묵 부회장, 오낙종 총무, 오영택 재무, 오동균·오용환·오경서·오윤종·오균호 위원, 오재호 감사 등이 임원으로 활동하며, 대표적인 종친회원으로는 사호공파 오종남 종원(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통계청장, SC은행 사외이사)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죽산사

ⓒ 하우람

입향조 유원(裕遠) 오익창(吳益昌)

함양오씨 고창군종친회의 입향조 오익창(吳益昌)은 1557년 7월 16일 전남 영광군(靈光郡) 효곡리(孝谷里)에서 태어나고 1713년 79세의 나이로 심원별서에서 천수를 다했다. 자(字)는 유원(裕遠), 호(號)는 사호(沙湖)로 불렸다. 광해군 때 조부 세영(世英)이 무장현(茂長縣, 지금의 고창)으로 낙향하며 세거지가 되었다.

사호집(沙湖集) 해제

『사호집』은 3권 2책.(병화兵火로 전책 불전不傳). 영조 49년(1779) 간행. 간사지(刊寫地). 간사자(刊寫者) 미상. 목활자본(木활字本). 사호집 원본 사호선생의 후손인 오영택 씨 소장.

오익창의 평가와 명량해전의 활약 내용

1. 정범조의 서문에서
내가 사호(沙湖) 오공(吳公)의 유사(遺事)를 읽고 누차 탄식을 하였다. 공은 원래 호남의 布衣之士, 벼슬을 하지 않고 가난한 선비)인데 나라의 남북간 난리를 당하여 관리가 지켜야할 책임이 있지 않았으니, 처자를 이끌고서 산골짝에 숨은들 누가 그를 헐뜯겠는가. 마침내 집안 식구를 모두 이끌고 항해하여 바람 이는 파도와 화살, 총탄 가운데를 드나들었고, 사민(士民, 선비를 비롯한 백성)들을 격려하여 이끌고 왕의 군사를 보필하니, 한산도(閑山島)대첩에서 공의 공로가 많았다.

2. 이사관의 행장후기
이충무공(李忠武公, 이순신)의 노량(露梁)의 공복(功菐)에 있어서는 공이 계책에 보필한 힘이 실제 많았으니, 비록 강회(江淮)의 울타리였던 장순·허원*과 같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당현종 때 안녹산의 반란으로 난군이 수양을 침공했을 때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절한 장순과 태수 허원을 비유했다.
난리를 만나 기미를 보고서 위태로운 재앙에 처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혼탁한 곳을 밟고서 멀리 떠나가니, 그 뜻이 더욱 곧았으나 그 자취는 민멸하였다. 오직 우암(尤庵)의 연회를 통해 주청하여 포상을 허락하였다.

 

↑↑ 사호집 원본. 사호 선생의 후손인 오영택 씨가 소장하고 있다.

ⓒ 하우람

 

서명응의 오사호전(吳沙湖傳)
- 서명응의 문집 보만재집(保晩齋集) 권9 잡저(雜著)에도 있는데, 여기에는 오익창전으로 되어 있다.
정유년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한산도에서 왜놈들을 방어하는데, 원균이 패배한 직후라서 불에 타버린 전함을 거두어 모으니 겨우 12척만이 있었다. 영호남의 사대부들 중에 바다를 항해하여 난리를 피하는 자 천여 척이 흩어져서 여러 섬으로 가려고 하자, 공이 분발하여 말했다.

“적병이 많고 통제사의 병사는 적어 금방 패배하고 말 것이다. 통제사가 패하게 되면 우리의 울타리가 철거될 것이니, 비록 외딴 섬에서 저마다 보전하고자 한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힘을 모아 합세하여 통제사를 위해 성원(聲援)한다면, 온전히 살 길이 있을 것이다. 가령 모두 죽을지라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는 명분은 있게 될 것이오.”

모두가 좋다고 응하였다. 마침내 글을 지어 여러 선박에 포고하자, 이에 천여 척의 배들이 출항하여 모두 통제사의 배 뒤에 늘어서서 물위의 성곽 모양을 연이어 이루니 진영의 형세가 매우 웅장했다. 공이 날렵한 배를 타고 통제사의 배를 왕래하여 군사의 일들을 계획하니, 통제사가 의지하여 소중하게 여기고 거북선을 창조하는데 공을 자주 찾아 왔다.

통제사의 군대가 한창 싸울 때 목이 매우 말랐는데 공이 동과를 잘라서 나누어 주어 갈증을 구하고 또한 왜적의 화살에 방어할 길이 없었는데 공이 여러 선박을 수습 백여개의 솜이불을 물에 적셔 펼치니 적의 화살이 침투하지 못했다. 통제사의 군사들은 모두 갈옷을 입고 추위를 호소하고 양식도 다 떨어지자, 공이 충성과 의리로 여러 배에 탄 사람들을 격려하고, 각기 저고리와 쌀가마를 내어서 한 배에 가득 싣고서 직접 거느리고 통제사의 군대에 이르니 군사들이 모두 감복하고 기뻐하였다.

 

↑↑ 죽산사비(왼쪽)와 사호비(오른쪽).

ⓒ 하우람

 

체제공이 지은 비명에 공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才以捍賊) 재주로는 적을 막았고,
(忠則拒邪) 충심으로는 사악함을 막았네.
(人麗我遯) 남들은 우리 공의 은둔을 좋게 보니,
(湖海以家) 호남바닷가에 거주하셨네.
(我觀今人) 내가 요즘 사람을 살펴보니,
(怵勢而靡) 권세가 두려워 휩쓸려 가는데,
(有過公墓) 공의 묘를 지나가는 자는,
(尙亦知恥) 오히려 부끄러움을 알리라.

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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