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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_ 제2대 고창군의회 이돈우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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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운동장 부지마련 가장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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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월) 18:0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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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의 중심지인 지금의 고창이 있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멀게는 동리 신재효 선생부터 가깝게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고창 기틀을 마련한 이들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는 이번호 <고창신문>을 통해 제2대 고창군의회 이돈우(81) 전반기 의장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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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우람 기자 | | ▶ 정계를 은퇴한 뒤의 근황은?
= 잠시 정치에 뛰어들긴 했지만 저는 원래 농사꾼입니다. 젊어서 가난한 생활을 했고, 마흔을 넘겨 자수성가하게 된 계기도 역시 농사입니다. 지금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돌보고 있습니다. 다만 나이가 먹다보니 힘이 부친 것도 사실이지요. 때문에 농사보다는 주로 집안에서 이것저것을 돕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건강도 예전보다 좋지 않아져서 병원도 수시로 다니고 있습니다. 누구나 세월은 피할 수 없는 법인가 봅니다.
▶ 정계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제가 군의원으로 활동할 때는 초창기입니다. 이미 <고창신문>에서 앞서 인터뷰하신 분들과 같이, 저 역시 기틀을 잡는데 작은 몫을 했을 뿐이지요. 어떻게 의정활동을 해야할지 가닥을 잡기 위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공부하며 지방자치를 ‘배우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선적으로 ‘군민헌장’을 발의하던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마산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산공원의 시비(詩碑)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고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도 활발했던 지역입니다.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을 필두로 문화적으로도 뛰어난 고장이었지요. ‘의와 국충, 예의 고장’인 고창에 정신문화의 상징인 군민헌장이 없다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적 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발의하게 됐죠. 지금도 보람을 느낍니다.
또, 한-일 합방 당시 의병활동을 하던 독립운동가를 위해 제사를 드리도록 제안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호화로운 묘지에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가난하다 못해 대가 끊긴 자랑스런 조상들이 안타까웠습니다. 8·15 행사를 할 때면 지금도 그분들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있죠, 우리를 위해 애쓰신 분들입니다. 응당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의장으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이호종 군수 때였죠. 어느날 군수께서 의장실을 방문하셨습니다. ‘공설운동장을 지을 땅이 필요하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고창양계 자리 7천여 평이 빌 때였습니다. 그 정도의 규모가 비는 건 더 없는 호기였죠. 하지만, 급했습니다. 당장 경매는 임박했고 재무과장은 승인만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차대로라면 의원들 모두가 모여 협의를 해야 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의장에게 승인 받았다고 하고 무조건 입찰하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당장 입찰부터 추진해 공설운동장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의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의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동료 의원들의 질타가 거셌습니다. ‘절차상으로 잘못은 분명히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공청회를 가집시다. 의견이 좋지 않다면 의원직까지 물러나겠습니다.’ 모든 걸 걸고 추진했습니다. 당시 동료 의원들에게는 송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군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가 중요했으니까요.
지금에 와서는 정말 잘 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한 면적의 땅을 한번에 취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월권행위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사안이 급하고 중요했으니까요.
또 하나 들자면 무장읍성의 현판사업을 주도하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무장읍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실망해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신숙주 같은 훌륭한 선조들이 무장읍성에 방문해 남기고 가신 시(詩) 등 훌륭한 자원이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향교의 서적으로만 남기지 말고 현판으로 남기자고 제안했습니다. 아직도 보람을 느낍니다.
▶ 신문을 통해 한 말씀 하신다면?
= 요즘은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자칭 천자(=스스로를 황제라 일컬음)’라는 소리를 들을 일들이 ‘자기PR’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되니까요. 이런 때일수록 효(孝)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나니 결혼을 기피하고, 황혼이혼을 합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나라가 망할 위기입니다. ‘의향 고창’입니다. 애국심·효를 위해 군비를 들여서라도 계몽운동을 전개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이 바뀌면 나라가 바뀌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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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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