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출간된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은 이데올로기와 공동체 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금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역사문화국가이며 복지국가의 이미지로 각인된 유럽 여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경제적 난맥상을 통계치로 보여주며 그 원인을 미국과 대비하여 분석하고 있다.
영국와 EU의 힘을 약화시킨 브렉시트(Brexit),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독일의 에너지 정책 실패, 난민유입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변화 등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기저에 흐르는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분석하면서 고령화와 저성장의 시대를 맞아, 성장과 복지의 문제를 재검토할 시기라고 제언하는 듯하다.
성장과 복지는 서로 모순적이면서도 보완적인, 인류의 오랜 지향점으로 자본주의의 변천사 속에서 그 추이가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공산주의 탄생에 빌미를 제공한 근대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경제대공황을 거치면서 ‘큰 정부’의 역할을 주장하는 수정자본주의 체제로 진화하지만, 경제불황을 맞아 다시 신자유주의로 거듭난다.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사상은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었고,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되었다. ‘큰 정부’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는 공공복지 제도 확대가 이른바 '복지병'을 야기한다며 자유시장, 규제완화, 재산권 중시 등을 추구한다.
실용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라면, ‘프랑크푸르트선언’의 본고장 유럽은 중도좌파라 표현되는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성장을 지향하는 미국과 복지를 지향하는 유럽이라는 우리의 인식은 이러한 차이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총기사고, 마약,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거대한 덩치로도 빠른 성장을 보이는 반면, 우리가 부러워하던 유럽의 복지는 고령화와 경제성장의 둔화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 그 장점이 희석되고 있다.
국가의 힘이 강하고 재정적으로 여유 있을 때 빛나던 유럽의 연금시스템, 무상교육정책은 국가의 부담을 키우고 세금 부담을 증폭시켰으며 고용의 경직성으로 경제적 비효율성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대학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며 막대한 교육재정으로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나랏돈에만 의지하는 유럽의 무상교육 정책은 교육 인프라 투자에 한계를 보이며 인재 유출을 불러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이 유럽을 첨단 미래 산업에서도 뒤처지게 만들어 ICT산업분야에서 유럽 기업을 찾기 힘들다. 즉, 유럽의 경제전망은 어두운 반면, ICT산업을 독식하다시피 한 미국의 질주는 앞으로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ECIPE(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는 EU 경제 변화를 위한 제언으로, 기업 간 경쟁촉진,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디지털 분야 교역에 대한 개방적인 정책, 글로벌 자유 무역을 위한 지원, 지식 기반 산업 육성을 제시한다. 이는 유럽의 체질변화에 대한 요구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추구해야 할지 미국과 유럽의 현실이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겁게 다가온다.
유석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