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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산중에 외로이 자생하는 야생 녹차'

차산지로 부각된 적이 없는 고창, 현대화 시설 및 체험 프로그램 시급

2009년 05월 26일(화) 13:37 [(주)고창신문]

 

↑↑ 우룡스님

ⓒ (주)고창신문


모양은 참새의 혀처럼 생겼으며 갓 나온 차나무의 어린 싹을 따서 만든 차, 작설차. 드넓은 산중에 외로이 자생하고 있던 야생 녹차는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선운산을 지키고 있다. 수줍은 듯 풀숲으로 우거진 산중에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약 14년 전에서야 그 가치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우룡스님이다. 선운산 야생녹차의 오랜 벗이자 아버지인 우룡스님은 전부터 차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1988년 불교계에 입문하고 91년 참당암에서 선방공부를 하던 시절 선운산자락에서 자생하고 있던 야생녹차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지금의 우룡 작설차를 만들게 했다. 처음 야생 녹차를 접하고 1년 반이란 세월을 잡목제거에만 주력했고 숫자로는 셀 수 없는 스님의 손길로 인해 야생 녹차밭은 차츰 그 면모가 갖추어지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4년의 세월동안 오로지 ‘세상에 쌓을 공덕은 이것 밖에 없다’라는 일념하나로 야생 녹차와 동고동락한 우룡 스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어찌 평탄한 길만 나올 수 있겠는가. 우룡 스님 또한 혼자 몸으로 쉽지 않은 길을 택했던 지라 작설차만 생각하면 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수많은 감정이 교차된다. 선운사의 진귀 식품으로도 손꼽히는 작설차. 그 작설차를 품에 안은 세월 동안 우룡 스님은 더욱 더 강인해졌고 작설차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야생 녹차밭에는 고랑 사이사이로 호밀들이 심어져 있다. 자연친화적으로 녹차를 재배하기 때문에 토양정화에 탁월한 호밀을 심은 것이다. 작설차는 세작이라고도 불리는데 은은한 향과 빛깔이 옥과 같고 맛이 강한 차라고 한다. 때문에 작설차를 내는 물은 수돗물 보다 석간수나 자연수가 좋다. 우룡스님은 작설차를 마시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1인분 차의 분량은 약 2g 정도로 다관(차 주전자)에 넣고 70~80℃로 식힌 물을 붓고 차 맛과 농도를 고르게 하기 위해 2~3분 정도 우려낸 다음 조금씩 찻잔에 따라서 마시면 됩니다”. 우룡스님은 “좋은 차 일수록 차에 담긴 오미(五味)를 느낄 수 있다”며 “선운산 작설차는 그 어떤 차보다 오미(신맛·쓴맛·단맛·짠맛·매운맛)를 완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극찬했다. 선운사 작설차의 재배조건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서 수확시기도 타 지역의 녹차보다 20일이 늦고 수확을 마감하는 시기도 20일이 빠르다고 한다. 차를 만드는 기술차이에서도 그렇고 차 밭이 북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맛과 향이 찐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같은 찻잎을 가지고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차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선운산 작설차는 덖음차의 일종으로 우리나라 전통차 제조방법인 구증구포 제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구증구포는 아홉번을 쪄서 아홉번 말리는 과정으로 커다란 무쇠 솥에 찻잎을 넣고 가열하며 건조한 뒤 이를 멍석에 널어 손으로 조심스레 비비면서 건조하는 과정을 아홉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구증구포를 거치면 찻잎이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건조돼 차 본연의 은은한 향과 깊은 맛을 그대로 간직한다. 현재 선운산 녹차는 우룡 스님만의 개인 사업이 아닌 영농법인으로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인터넷 쇼핑몰(www.seonuntea.kr)을 개설하여 작설차 애호가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국 유명 사찰과 차 업계에서는 선운사 작설차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어 수도권 쪽에서는 인지도가 높다고 한다. 선운산 작설차는 그리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차이다. 천년고찰 선운사의 역사와 함께 한 선운산 작설차는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지리지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지역의 대표 토산품으로 임금님께 진상되었다고 한다. 불교탄압과 함께 차 문화가 크게 쇠퇴한 조선조에서도 고창을 대표하는 토산물로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것은 선운산 작설차의 빼어남을 익히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인 ‘부풍향차보’에도 선운사 일원의 차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가 고창 선운사에서 차를 따서 7종의 향약을 가미해 만든 약용차의 제조법을 이 책에서 밝혀냈다. 이운해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선운사에서 좋은 차가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차에 무지, 보통 잡목처럼 여기고 땔감으로 쓰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저술 동기를 적시했다. 지금까지 차산지로 부각된 적이 없는 고창에도 차가 있었음을 알려 우리나라 차산지와 향유공간을 확장시켰다. 우룡스님 또한 선운산 작설차라는 보물을 재탄생시킨 장본인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우룡스님은 “뭐든 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듯이 항상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더디게 가는 것이 오래토록 내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넝쿨 속에서 수많은 잡목과 함께 묻혀 있던 야생녹차. 그 야생녹차의 진귀함을 쉽게 지나치지 않고 오늘날의 작설차로 만들어지기까지 이판사판(理判事判)으로 임했던 우룡 스님. 명산에 명차가 있고 경관 또한 수려하지만 그 명차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미비하다. 외부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왔을 때 한마디 말로 내치시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변변한 작업실도 없다. 그저 임시방편으로 지은 비닐하우스에서 가마솥을 걸고 명차를 만들뿐이다. 햇볕 좋은 날 그냥 들어가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비닐하우스. 그 비닐하우스 안에서 뜨거운 불과 함께 씨름하며 차를 덖고 있는 우룡스님. 지금이라도 우리는 선운산 작설차를 자신보다 더 아끼며 사랑하는 우룡스님을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고창의 미래와 선운산 작설차의 보존을 위해서는 선운산 작설차를 산업화 할 수 있는 기계시설과 체험관광 위주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듯싶다. 조만간 우룡스님의 주름진 이마가 판판하게 펴질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우룡스님은 묵묵히 녹차 잎을 따는데 여념이 없다.
김희정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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