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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국화 옆에서 시상은 고창읍 월곡. 정 규 갑(전북일보 전 편집위원)

2009년 01월 30일(금) 17:53 429호 [(주)고창신문]

 

↑↑ 동아일보 1982년 5월 20일 발행된 신문. 고창고보(서울) 출신들이 모교 선생님이셨던 신태수박사(당시 87세),
정인승박사(당시 86세), 홍순복선생(당시 84세), 유찬식선생(당시 83세) 등 네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제자들과의 모임(동창회)에 참석. 가운데 줄 왼편에서 세번째가 11회 졸업생 자격으로 참석한 서정주선생(당시 69세).

ⓒ (주)고창신문


인도의 대시성인 ‘타고르’가 1913년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일본을 방문 시 언론매체와 미디어 매스컴을 통해 미당 서정주를 높이 찬양, ‘동방에 새 시성이 탄생했다’라며 한국의 시문학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미당 서정주는 독보적인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 고장 출신이며 국민의 시인인 미당의 유명한 ‘국화 옆에서’의 서정시가 고창읍 월곡리에서 살 때 시상으로 동시를 펴내 고창지역에서는 값진 의의와 더 깊은 연유가 된다.

- 부친 서강한은 자녀들의 신교육을 위해 이사-
미당이 어렸을 적에 고창읍 행경(현 대양동)과 월곡리에서 거주한 사실을 더듬어 본다. 부친 서강한은 질마제의 지선인 줄포만에서 농사경작 감독으로 있을 때 미당을 줄포보통학교에 재학을 시켰다. 이는 김정웅씨(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세계시문학연구회장)의 증언이다. 미당이 줄포보통학교를 마칠 무렵 부친 서강한은 자녀들의 신교육을 위해 1929년도경 고창읍의 고창성 뒤편 언덕박이에 자리한 행경으로 이사와 미당은 고창고보에 큰딸 정옥, 정태, 정갑, 막내 딸 정희씨는 고창보통학교에 입학시킨 것으로 안다. 당시 행경은 비만 오면 논두렁과 도로에 물이 넘쳐 건널 수가 없어 큰딸 정옥은 동리 신재효의 4대 종손부인 강한희씨(84)가 처녀 때 친정인 고창읍 동촌동에 살아 정옥은 강 여사 집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 다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당의 남동생인 정태씨가 전북매일 편집국장 재임 시 강 여사가 빵 공장을 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는 것이다. 미당의 부친 서강한은 행경에서 가는 학교길이 너무 멀어 2년후 쯤 월곡리로 이사 왔다. 월곡리는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원 월곡리와는 한마을이면서도 조금 외진 곳으로 현재 월곡리에 거주하고 있는 전 고창중학교장인 임정빈씨(80)와 미당 동생들은 교감이 있었으며 어릴 적 본 미당은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었다고 한다.
- 광주학생운동과 서정주 -
미당이 고창고보 재학시절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발생, 1930년도 전국의 학교가 들고 일어나서 항일운동으로 번져 2학년생인 미당도 적극적으로 앞장서 가담해 주모자로 지명되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미당의 시선 집 ‘아버지의 밥숟갈’에서
아버지가 / 들고 계시던 / 저녁밥상 머리에서 / 나를 보시자 / 떨구시던 / 그 밥숟갈/ 정그렁 소리 내며 / 떨어지던 밥숟갈 / 광주학생사건 / 2차년도 / 주모자로 /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 감옥에 끌려간 / 내가 / 해어름에 / 돌아와 / 엎드려 절을 하자 / 저절로 / 떨어져 내리던 / 아버지의 밥숟갈 / …… 그래서 나는 또 / 아버지가 끼니 밥도 / 제대로는 / 못 먹게 하는 / 대불효의 / 자격을 / 또 하나 / 더 얻었다./
화난 아버지는 고생을 하면서도 자녀들의 신교육을 위해 낯선 곳까지 이사 왔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학생운동으로 퇴학과 옥살이까지 하고 나온 정주를 질책을 아니 할 수가 없었던 심경으로 밥상을 받을 때 마다 숟갈을 내던지고 호통을 쳐 미당은 이를 잘 묘사했으며 왜경들의 계속적인 감시도 있고 하며 아버지에 대한 근신차원에서 독서와 월곡리를 조금 지나 수월리 마을 옆길로 방장산 중턱에 위치한 상원사 절을 자주 찾았다. 미당이 살고 있었던 주위는 대밭과 상원사 절을 꼬불꼬불 돌아 올라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의 발에 체인 노오랑 들국화가 산재하는 곳으로 짙은 들국화 내음과 밤마다 고창성내에서 울어대는 소쩍새.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사춘기의 젊은이들에게는 애간장이 녹아나듯이 피나는 쑥국새 울음소리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선남선녀들의 베개를 적시기도 했다. 미당도 아버지에 대한 불효는 물론 왜경들의 계속적인 감시로 가슴 메이는 나날들을 보내다 그 유명한 국화 옆에서의 시상이 떠올라.
한 송이의 국화꽃을 / 피우기 위해 / 봄부터 /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보다 / 중략 / 노오란 /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에 무서리가 / 저리내리고 / 내게는 / 잠도 / 오지 않았나보다./ 미당의 당시 착잡한 감정을 묘사, 국민의 시를 남겼다.
- 1930~40년대 서정시 풍미 -
1930년도에 창간한 문학동인지에서 정지용 김기림 등의 감각파 시인이 참가하여 ‘모란이 피기까지’의 김영랑(본명 김윤식 1903~1950, 전남 강진 출신)이 서정 시인으로 처음 배출되었고 김소월(본명 김정식 1902~1934, 평북 정주 출신), 김억으로부터 사사, 처음에는 정형시를 쓰다 후기에는 민요적인 서정시 ‘진달래꽃’의 서정시를 남겼다. 미당 서정주(1915~2000년, 고창 부안 출신) 중앙 불교학원 석전 박한영원장의 사사로 서정시의 대표적인 ‘국화 옆에서’란 서정시를 김영랑, 김소월, 서정주가 대자연의 꽃을 동경하는 낭만의 영감을 표출, 서사시로 당시 묶어진 시인들의 감상을 풀어냈다. 그런데 미당만큼은 대자연의 신비인 쑥국새(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미화묘사 했다. 소쩍새의 설화에 대한 한 토막. 고창지역에서는 소쩍새를 쑥국새라고도 한다. 옛날에 어느 임산부가 어린애를 분만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끼니의 밥은 물론 미역국 한 모금 먹지 못해 쑥을 캐다 산모의 끼니를 대신했지만 허기가 져 산모와 어린아이가 절명, 산모는 죽어서 한이 되어 쑥국새가 되어 어스름한 달밤에는 봄부터 고창성내에서 밤새껏 울며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끓었던 쑥국새소리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고창성 복원으로 성내에 외등을 설치하고 성벽에는 조명등이 설치되어 이곳 주민들의 오랜 역사적인 애환의 소리인 쑥국새 울음소리는 뜸해졌다.
이조년의 시에서도 이화에 월백하고 / 은한이 삼경인데 / 일지춘심을 / 자규야 알라마는 / 다정도 병인 양 / 잠 못 들어 하노라./
배꽃이 활짝 핀 훤한 달밤에 은하수가 하늘에 수놓고 삼경의 자정 무렵 자규(소쩍새)는 시인의 마음을 피토하듯 한탄으로 그리워하는 다정한 사람의 마음을 병으로 생각하는 서정의 한 대목으로 유행가 낭랑 십팔세 중에서도 ‘소쩍새의 울 때만을 기다립니다’라는 소쩍새의 애절한 사연과 이조년의 시중 ‘소쩍새가 울어대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한다’가 자연의 환경 파괴를 애절한 쑥국새 소리로 이제 뒤안길로 살아지는가 하는 생각이다.
다음호에 계속.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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