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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판소리박물관 이영일 학예사

신재효 자료 총서 발간의 의의와 전망 ①

2014년 03월 31일(월) 02:41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1. 들어가며

그 동안, 산재되어 있는 동리 신재효 선생의 사설과 자료에 대한 영인본 및 총서 발간에 대한 요구가 있어 왔으나, 지금까지 시도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늦게나마 총서발간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시작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알다시피, 일찍이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일제 강점기 '조선문화의 정립'을 위해 각종 고문헌 자료를 수집 연구하여 민족의 정기를 올곧게 세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1932년 경부터 신재효의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고창을 오가며 신재효 판소리 사설본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재효 연구는 김삼불, 강한영 등으로 이어져서 신재효 연구의 큰 줄기를 형성해오면서 신재효 사설 자료에 대한 영인본(1969)과 주석본(1984)을 출간함으로서 신재효 사설에 대한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영인본(1969)의 경우 다양한 등서본 중 한 종만 영인된 것으로 그 한계가 명확하며 주석본(1984)은 다종의 신재효 사설본을 검토하고 비교 대조하여 최종적으로 신재효 사설을 제시한 것으로서, 신재효 사설을 확정짓고 주석하였다는 점에서 큰 업적임이 분명하지만, 이것은 한 사람의 연구자에 의한 사설 확정작업에 초점이 맞추어진 과정으로, 신재효 문화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비교 대조작업의 기회가 많은 연구자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즉, 누구나 쉽게 신재효 사설 등서본에 접근하여 연구할 수 있는 사설자료 총서의 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신재효 판소리 활동 전반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재효 판소리 사설 뿐 아니라 신재효 선생의 전기역사 자료와 구비전승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밑받침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고창군 주최, 판소리학회에서 주관한 학술발표회에서 김종철은 “신재효 자료 총서 출간”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이미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여 정보의 축적과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산재된 자료에 의해 신재효 선생에 대한 연구가 제한되고, 연구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많은 연구자들의 공감을 얻었는데, 총서의 발간은 현재의 지체를 타개할 올바른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그 요지는 신재효 선생의 자료를 신재효 사설자료, 신재효 판소리 단가 및 가사자료, 신재효 전기관련 문헌, 신재효 구비전승자료 등 4개지 범주로 나누어 총서를 발간하자는 것이다. 이 중 필자는 판소리 사설 자료를 중심으로 신재효 사설 등서본의 특징과 총서발간 방향을 논의해 보려고 한다.

1. 2. 신재효 사설 등서본의 서지분석과 특징

신재효 사설자료는 신재효 원본, 신씨가장본(읍내본), 성두본, 가람본, 새터본, 고수본, 일사본, 나손본, 동리유집초(桐里遺集抄) 등이 있다.
신재효 원본은 한글본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또한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건데, 신재효 원본은 <春香歌>(男唱, 童唱(一云 女唱)), <沈晴歌>, <박흥보가>(또는 박타령), <퇴별가>(또는 兎鼈歌), <赤壁歌>, <橫負歌>(또는 변강쇠가), 《成造歌, 漁父詞, 虛頭歌 合附》, 《도리화가·오섬가·광대가·호남가·방아타령·단잡가 합부》등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신재효 사설본이 등서되기 시작한 것은 1898(성두본 <춘향가>A형)년 부터이다. 신씨가장본이 1904~1908년 사이에 등서된 것을 보면, 이 때 까지 신재효 원본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신씨가장본이 생겨나게 되면서는 이 본이 많이 차본되었던 것 같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고창을 방문하여 동리 신재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32년부터서이다. 이어 김삼불, 강한영에 의하여 신재효 사설본이 조사 연구되었다. 강한영 박사에 의해 등서된 가장 이른 시기가 1948년인데, 대부분 신재효 사설의 기존 등서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원본에 대한 언급이나 기록은 전혀 없어, 이미 그 이전에 신재효 본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강한영 박사가 신재효 친필본 방아타령 軸의 글씨를 신재효 친필이라고 단정한 것을 보면 원본을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 고창의 향토학자인 이기화 전문화원장의 구술에 따르면, 신재효 사설의 초기 연구자였던 김삼불에 의하여 북으로 유입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고, 현재 정확한 소재도 알려져 있지 않다.

(1) 星斗本의 서지분석과 특징
동리 신재효 사설본 중에서 가장 먼저 등서되기 시작한 것은 성두본이다. 성두본은 1차본(한글본, A형)과 2차본(국한문본, B형) 두 종이 있는데, 성두본 <춘향가>(A형)은 맨 끝장에 등서일자가 1898년(무술) 겨울로 제일 앞서 있다.
강한영 박사는 성두본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적고 있다.

유제중(柳濟中)씨-등서자 柳寵錫씨의 아들-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성두본은 柳寵錫씨가 星斗에 살면서 우연히 申戶長의 판소리 사설(타령)인 春香歌를 얻어 보았다. 그 文章의 놀라움과 人物事件의 적절함에 감탄하여 三讀四讀하였다. 신호장의 손자인 申參奉의 外三寸이 당시 새새골(星斗里의 일부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손쉽게 신호장의 親筆本인 여섯마당과 허두가 등 그의 作品 전부를 빌어다가 藤本하였다. 처음에는 原本(純한글體本) 謄書하였더니 國文을 읽을 줄 아는 이는 모두 누구나 와서 借本하기를 청해 오니 책이 많이 손상해짐을 아쉽게 생각한 나머지 國漢文體寫本을 다시 하나 더 썼다. 그 뜻인즉 貸冊을 회피하려는 것이었다. 유제중씨는 유총석씨의 二男이다. 父親의 親筆본이요, 또 愛讀하던 冊이었기 때문에 잘 보관해 오다가 朴興甫歌·赤壁歌·는 신호장의 증손인 申基業씨에게 빌려 주었고, 橫負歌는 筆者가 寄贈받아 보관중이다. 유제중씨 댁에 보관중인 것은 적벽가, 박타령, 츈향가, 春香歌 등 四冊이다.

인용문을 보면 신재효 원본은 순한글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본을 빌어다가 한글로 필사한 것이 성두본 1차본이며, 국한문체로 필사한 것이 2차본이다. 또한 등서를 할 때, “신호장의 親筆本인 여섯마당과 허두가 등 그의 作品 전부를 빌어다가 藤本”하였다는 말도 주목된다. 전부를 등서하였다면 성두본은 여섯바탕과 단가·가사집 2종을 합쳐 전부 8종의 책이 전해져 와야 한다. 그리고 후에 등서한 국한문제본도 8종이 전해져 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두본은 현재 1차본 즉 한글본은 <츈향가>(A), <박가라>(A), <적벽가>(A) 3책, 2차본 즉, 국한문본은 <春香歌>, <朴興甫歌>, <赤壁歌>, <兎鼈歌>, <변강쇠歌> 5책 등 전부 합해 5종 8책만이 전해 오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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