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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말의 따뜻하고 오래된 이야기

■ 박물관 탐방 - 고창 판소리박물관·고인돌박물관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 특수 박물관의 현황 ① 과천 말박물관

2014년 04월 22일(화) 11:02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박물관 탐방 ① 과천 말박물관

사람과 말의 따뜻하고 오래된 이야기
박물관의 냄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어느 시대 누군가의 손길이 머물던 유물들이 체온을 잃고 주인의 목소리를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는 곳. 그리하여 가만 눈 맞추면 깊이 잠든 영혼이 숨결로 다가와 오래된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
먼 미래 우리의 삶이 그럴 것이므로 우리는 그 과거에서 역설적으로 미래의 가치를 발견한다.
고창군은 판소리와 고인돌유적지 등 전북도내에서는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을 2개나 보유하고 있는 자치단체이다. 그 명성을 뒷받침하듯 전문박물관으로서 '고창 판소리박물관'과 '고창 고인돌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전문 박물관들의 실태는 그리 녹록치 않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은 1년에 한 차례 기획전시를 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할 정책입안자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군민들의 문화이해와 표현능력의 중요성은 더욱 외면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고창신문은 지역신문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2014년 중장기 발전계획으로 ‘고창판소리박물관과 고인돌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나라 전문 박물관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전문박물관의 과제와 미래를 가늠하고 문화이해와 표현능력, 즉 문화리터러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국공사립 박물관의 어려움과 우수 박물관 운영 사례를 통해 고창의 전문박물관들이 미래와 세계로 열린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 (주)고창신문

말박물관
주소: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대로 107

우리는 대상이 아름다울 때 감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교감함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교감과 아름다움의 체험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로 읽으며 ‘하고 많은 동물 중 왜 하필 ‘말’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말을 가까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소설에서 배어나오는 말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교감을 느낄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인간이 느끼는 말과의 교감은 특별하다. 그것은 아름답고 강하며 선하여 스위프트가 상상하였던 말의 나라, ‘휴이넘’들이 인간인 ‘야후’를 지배하는 그 세계에 은근 공감이 간다.
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과천 경마공원에는 휴일이면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잎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역동적인 힘과 흥분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 낼 수 있는 경마 뿐 아니라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참여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풍을 겸하여 가족과 연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경마공원의 입구와 건물 사이에는 경기에 출전할 말들이 다소 긴장한 발걸음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는 예시장이 있다.
경마에 출전할 수 있는 말의 나이가 만 2세 이상이기 때문에 예시장에 나온 말들은 적어도 2세 이상의 말이다. 대개 5세나 6세가 넘으면 은퇴하지만 말의 기량과 마주 및 조교사의 판단에 따라 11세가 넘은 말들도 경주에 출전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올드빌리(Old Billy)’라는 말은 1760년부터 1822년까지 62년을 살아 가장 장수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말의 평균 수명이 25년에서 35년 정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말의 나이 5세나 6세는 인간이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인 20세에 해당하므로 경주에 출전하는 말들은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나이일 것이다.

ⓒ (주)고창신문

예시장 옆으로 말박물관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사회의 규모나 경마공원의 규모에 비해 좀 초라하다 싶을 정도이다.
오늘날 말은 주로 경마나 승마 등 오락과 스포츠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교통, 통신, 농경, 전쟁 등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고대사회부터 물자의 운반을 비롯하여 폭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말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왔기 때문에 풍부한 기마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과천의 말박물관은 이러한 자료를 발굴하고 보존함으로써 말 관련 문화의 전통을 잇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1988년 9월 마사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하였다. 이듬해인 1989년 사립전문박물관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하였고 1996년에는 경기도 테마 박물관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2013년에는 말박물관으로 관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주)고창신문


123평 규모의 전시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특별전시의 공간과 상시전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서 첫 번째 공간에서는 2007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7회를 맞는 정기 특별전이 “말, 사람 그리고 치유”라는 제목으로 진행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미디어아트(Media Art)라는 장르로 표현한 말과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는 과도한 욕망으로 지친 우리의 영혼을 벚꽃처럼 화사한 분홍색채의 휴식과 여유로 달래준다.
의자와 칠판이 있는 앞 공간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작은 아이가 자신의 모델이 된 말을 보느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분필로 말을 그렸다.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순하고 따뜻한 말의 눈빛을 잘 읽어내고 표현한 그림이어서 여러 번 눈길이 갔다.
입구로부터 더 들어가면 대형으로 제작된 말의 생물학적 진화과정과 마문화 연표가 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주)고창신문

말의 화석은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유럽을 중심으로 비교적 많이 발견되는 편이고 연구도 활발하여 말의 진화과정은 다른 동물보다 잘 알려져 있다. 말의 조상은 5800만 년 전 북아메리카의 삼림에 살았던 에오히푸스(Eohippus)로 키가 겨우 25∼30cm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에오히푸스는 다리가 짧고, 앞다리에 4개, 뒷다리에 3개의 발가락이 있었는데 발가락이 하나인 플리오히푸스(Pliohippus)가 나타난 것은 약 1300만 년 전이며, 그로부터 1000만 년 이상 지난 후 마침내 지금의 말 무리와 같은 속(屬)인 에쿠스(Equus)가 북반구 전역에 걸쳐 나타났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발가락이 하나인 말이 이렇게 오랫동안 진화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니 자연과 역사 앞에 새삼 겸손해진다.
두 번째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성장(盛裝)을 하여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실제 크기의 말 모형이 우리는 맞는다.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마구를 복원하여 장착한 것인데, 재갈, 안장, 발걸이 등 말을 타고 다루기 위한 기본적 장비 뿐 아니라 가슴걸이, 엉덩이끈,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와 같이 장식적 효과를 주는 말갖춤도 있고, 주인의 신분이 고귀함을 보여주기 위해 말의 엉덩이 부분에 장식하였던 기생, 흙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려 놓은 다래, 가슴걸이 앞 부분에 매달린 말방울 등 화려한 말갖춤이 눈길을 끈다. 말방울은 경적과 장식의 기능 뿐 아니라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까지 있었다는 학예사의 설명이 흥미롭다.

ⓒ (주)고창신문


안쪽으로는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말과 관련된 유물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말갖춤코너에는 재갈, 말머리갖춤, 안장, 발걸이(등자), 말방울,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띠고리, 편자, 채찍 등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화려한 은제 말방울 한 쌍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은제 말방울은 지름이 10Cm에 가까운 대형 순은방울로 형태와 장식이 아름다워 그 시대에 신분이 귀한 사람의 소장품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안장도 여러 개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자 영친왕으로 알려진 이은 공(公)이 소장했던 안장도 있다. 전반적으로 검은 칠이 되어 있는 이 안장은 앞가리개 중앙에 기린문양이 장식되어 있는데 기린문양은 조선시대 단종이후 제왕의 적자인 대군의 흉배나 관대의 문양으로 사용된 것이어서 힘없이 무너져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의 비애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 (주)고창신문


신앙과 말조각 코너에는 마형토기뿔잔을 비롯하여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을 다양한 말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형토기뿔잔은 5~6세기경 가야시대의 유물로 가야식 기대에 올려진 말의 힘차고 당당한 모습과 그 안장 위에 올려진 길쭉하고 끝이 구부러진 뿔잔이 특이하다. 가야토기의 전형을 보이고 있어서 이 무렵 마구 형식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림과 글씨 속의 말 코너에는 조선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말관련 그림과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생활 속의 말 코너에는 말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도구인 약질이와 말침, 침통을 비롯하여 마패와 낙인, 하마비 등을 볼 수 있다. 약질이는 말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대나무를 비스듬히 잘라 사용했던 도구인데, 손잡이 쪽은 대마디를 이용하여 직각으로 자르고 투약구 쪽은 비스듬히 잘라 말 입에 넣어 약을 먹이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마비는 조선 태종 때 종묘의 궐문 입구에 세운 것이 계기가 되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표식으로 신성하고 엄숙한 장소의 입구에 세워졌다. 요즘에도 많이 쓰이는 단어인 하마평은 관직에 임명될 후보자나 인사이동에 대하여 세상에 떠도는 소문이나 평판을 의미하는데 예전에 관리가 말에서 내려 관청에 들어가면 관리를 태우고 온 마부들이 상전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을 했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사극에서 가끔 등장하는 마패는 정의와 권위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는 마패가 지방 수령의 실정(失政)을 바로잡는 암행어사의 신분증명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인데 원래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교통통신조직의 일종으로 역(驛)제를 운영하면서 그 증명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 전사자 운송, 공물수납, 보고서 우송 등에 역마를 사용할 수 있었고, 뒷면에 한 마리에서 다섯 마리까지 말의 모양을 새겨 이용할 수 있는 말의 숫자를 표시하였다. 암행어사는 2마패를 이용했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코너가 있는데 편자와 말꼬리, 말이 먹는 사료를 만져볼 수 있는 곳, 모자를 쓰고 말모형을 탈 수 있도록 한 곳 등이 있다.
국공립 박물관과는 달리 사립전문박물관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그 분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유물을 모으고 전시공간을 마련한 박물관으로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기가 쉽다. 그렇다보니 말박물관도 경마공원의 구색을 맞추는 수준 정도라는 느낌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고 때로는 적자를 감수해야만 하는 이러한 개인과 단체의 노력은 지원과 격려를 받아야 할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적 기반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숨은 힘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 유석영, 조창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원받아 연재되는 기사입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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