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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달군 놋쇠덩어리 망치로 두드려 방짜유기 이루다

■ 박물관 탐방 - 고창 판소리박물관·고인돌박물관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 특수 박물관의 현황 ① 방짜유기박물관

2014년 05월 12일(월) 17:23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9

두들겨 맞을수록 아름다워지고 흙 묻힌 지푸라기로 박박 닦아야 빛이 나는 방짜유기는 마조히스트의 고된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두드린 흔적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방짜유기의 가치는 대량생산과 몰개성이라는 시대적 특성의 역설이기도 할 것이다. 방짜유기는 ‘놋그릇’의 일종이다. 그 옛날 할머니의 찬장 속에 잘 닦여 빛나던 놋그릇은 아이의 눈에 황금그릇 같아 보였었다.

ⓒ (주)고창신문

고려시대부터 상류층에서 식기로 사용되었던 놋그릇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로 들어서면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생활 용구로 사용되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유기공출’로 가정에서 사용하던 거의 모든 유기들이 수탈되었다. 그 후 해방과 더불어 유기가 다시 성행하였으나 연탄을 사용하면서 놋그릇에 녹이 쉽게 슬어 관리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때 마침 알루미늄과 스테인레스 그릇이 나오면서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웰빙시대를 맞아 놋그릇의 살균력과 이온화 작용 등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개되면서 놋그릇은 열보존률이 제일 높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대장균인 O-157을 살균하는 기능 뿐 아니라 농약성분을 검출하는 기능을 가진 그릇으로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겉 빛이 노르스름한 ‘놋쇠’는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 니켈 등을 혼합하여 만든 합금으로 원료의 비율에 따라 방짜쇠와 잡쇠로 분류한다. 잡쇠에는 백동, 황동 등이 있는데 백동은 구리와 니켈을 80대 20의 비율로 섞은 합금으로 강도가 떨어져 장식품 제작에 주로 사용하고, 구리와 아연을 60대 40의 비율로 섞어 만든 황동은 향로, 향합 등 식기류를 제외한 물건 제작에 사용한다.
방짜쇠는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비율로 만든 합금이다. 이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바둑알같이 만들어진 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겨 펴고 달구기를 여러 차례 하여 만든 그릇이 방짜유기이다. 방짜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고 쓰면 쓸수록 윤리가 나며 고유한 메자국(망치자국)의 멋이 은은히 남아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특히 불순물이나 독성이 없어 예로부터 식기 중에서 으뜸으로 쳤다. 우리 조상들은 수 천년동안 생활식기와 무속악기로 방짜유기를 사용해 왔는데, 만약 방짜유기 기술이 이어지지 못했다면 악기문화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사물놀이의 악기와 웰빙문화에 알맞은 식기로써 대중적인 생활공간의 예술품을 겸하여 화려하게 재기하고 있다.

ⓒ (주)고창신문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유기 외에도 주물유기, 반방짜유기 등이 있다. 주물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함께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주조한다 하여 일명 ‘붓백이유기’라고도 한다. 주물유기는 합금이 자유롭고 규격과 모양이 같은 제품을 다량 생산할 수 있으며 금속 성분에 따라 품질과 색상이 뚜렷이 구별되는 섬세하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반방짜유기는 주물유기에 방짜유기 제작 방법을 절충한 것으로 주로 소형식기류 제작기법이다. 주물유기 기법으로 그릇을 U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불로 달구어 가면서 오목하게 판 곱돌 위에 놓고 ‘궁구름대’라는 공구로 유기의 끝부분을 오목하게 방짜식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가장 질이 좋은 방짜유기는 재료가 되는 쇳물 만들기부터 까다롭다.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와는 달리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정확히 맞아야 하는데 1%라도 재료 함량의 비율이 어긋나면 모든 작업공정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재료조합에서부터 정확함을 필요로 한다. 방짜유기의 첫 번째 공정은 바둑(혹은 바대기) 만들기 작업으로 가마 온도는 합금이 잘 될 수 있도록 1500도에서 1600도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용광로에서 거푸집에 놋쇳물을 부어 기본 모양인 바둑이 만들어 지면 네핌질, 우김질, 냄질, 닥침질, 제질 및 담금질, 벼름질의 단계를 거친다. 불에 달구고 메질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릇이 만들어지면 마지막 단계인 가질을 통해 산화피막을 제거하고 표면의 메자국도 없애 놋쇠의 본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광을 낸다.
방짜는 열한 명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한다. 불 때는 풀무꾼으로 안풍구와 밖풍구, 원대장을 도와주는 제질풍구가 있어야 하며, 원재료인 구리와 주석을 정확히 합금하고 융해하는 겟대장, 녹여낸 바둑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메질하는 앞망치대장, 달군 바둑을 세게 쳐서 넓히는 센망치, 바둑을 넓히는 집게잡이인 네핌대장, 달군 바둑을 메질하고 칼갈이도 해야 하는 곁망치, 모양을 잡는 제질이 끝난 뒤 가질을 맡은 가질대장 등 방짜 제조 과정은 열한 명의 협업이 필수다. 기계 해머가 도입돼 인원을 줄여도 최소한 여섯 명은 필요하다. 이 중 원대장은 총책임자로서 복잡한 제작과정을 다 알아야 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숙련된 기술을 익힌 장인이다. 원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을 두고 밑바닥 단계에서 시작해 맨 위로 올라가는 어려운 훈련과정을 견디는 인내심과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행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누구나 원대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장 하나 만들기 위해 주인 하나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 (주)고창신문

세계적으로 방짜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터키, 미국 정도인데 더구나 그릇을 방짜로 만드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방짜는 스님의 머리를 깎는 칼인 삭도, 식기, 악기 등에서 세계적인 특허감이다.

ⓒ (주)고창신문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으로서 전국적으로 유일하다. 자랑스러운 고유문화유산인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전승 보존하며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문화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구광역시에서 2007년 5월 25일 개관하였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팔공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대지면적17,880㎡ 건축연면적 3,758㎡)의 규모로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등 3개의 전시실과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 기획전시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소장품은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유기장 이봉주 장인(匠人)이 평생 제작하고 수집한 방짜유기 275종 1,489점인데 2001년 대구광역시가 무상 기증받아 박물관을 설립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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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짜유기의 맥을 이은 이봉주 대장(大匠)은 예부터 방짜 고을로 이름난 평안북도 납청 출신이다. 북한에서는 방짜를 ‘양대’라 하는데 납청은 양대의 대표고장으로 방짜그릇을 그냥 ‘납청’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지명이 곧 보통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대 기술은 아무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돈을 받지 않고 그냥 기술만 배우러 들어가려고 해도 소위 ‘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북한에서 살 때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였다. 해방 후 언제 군대에 끌려갈지 몰라 불안하고 농사를 지어도 앞날이 막막하던 상황 속에서 그는 월남을 결심하고 1948년 송아지 판 돈 5000원을 들고 남쪽을 향하였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막막하던 그에게 문득 생각난 것은 그의 아내가 그에게 했던 말 ‘남한에서 이모부가 유기 공방을 크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큰 유기 공방을 찾았는데 바로 탁창여 방주의 공방이었다. 이 인연으로 그는 방짜 유기의 길로 들어선다. 탁 방주의 도움에 힘입어 1년 반 만에 공방의 원대장이 된 그는 방짜그릇과 악기를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고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인 유기장으로 인정받았다. 2013년 9월에 명예중요무형문화재로 물러나 지금은 그의 아들 이형근 씨와 손자가 방짜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훈련하고 있다. 이봉주 장인 외에도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으로 인정받은 장인은 안성주물유기 김근수 장인, 보성반방짜유기 윤재덕, 한상춘 장인 이었으나, 김근수 유기장은 2005년 명예보유자가 되었다가 2009년 세상을 떠나고 대신 그의 아들 김수영 장인이 2008년 주물유기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보성유기 기능 보유자이던 윤재덕 장인은 1994년 별세하였고, 한상춘 장인은 기량의 저하, 전승활동의 의무 해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인하여 2008년 12월 인정 해제되어 세인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 (주)고창신문

최근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운행이 금지된 20년 이상 된 낡은 배를 우리나라에서는 운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장인들을 대우하고 그 기술을 관리하는 과정을 보면 그에 못지않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도자기 장인들의 예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조선시대 초기, 이 땅의 장인들이 획기적인 은 제련법을 개발했을 때도 그 기술을 받아들이고 은 보유량을 엄청나게 늘려 국부를 쌓았던 나라는 일본이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잘 꾸며진 외양과는 달리 시에서 운영하는 전문박물관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다. 너무나 한 장인의 수집품에만 의존한 모양새여서 아쉬움이 남았고 더구나 대표 유물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도 답변을 들을 수가 없어서 미진함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글, 사진 : 유석영, 조창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원받아 연재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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