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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탐방 강릉 참소리박물관

축음기 수집가의 길로 이끈 ‘참소리’의 힘

2014년 08월 22일(금) 16:35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강릉 참소리박물관
주소: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93

최근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말한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해석하듯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적 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것은, 대상이 다른 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자기 자신이든, 현실적 가치에 지배받거나 현실적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의지일 것이다.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방해요소들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는 힘을 통하여 대상을, 예컨대 소리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는 소리에 대해 지배적 권력을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물론 허구이지만, 무릎이 성치 않아 비척대는 100세 노인이 일상적인 상식을 뒤엎는 자유로운 결단으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삶을 이루어내는 모습은 인류의 역사를 이끌었던 천재와 영웅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참소리 박물관에서 만난 에디슨 역시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로 인류의 삶을 끌어올린 천재적 영웅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강릉의 참소리 박물관은 축음기를 중심으로 한 소리와 영상 박물관이기 때문에 축음기를 발명하였던 에디슨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참소리 박물관과 나란히 서있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잠은 인생의 사치입니다. 저는 하루 네 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숙면을 취할 때 말이죠.” 최근 시몬스 침대광고 영상에 나오는 에디슨의 말이다. 에디슨과 미국 자동차 왕 헨리 포드, 그리고 미국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즈벨트 편으로 구성된 광고영상은 여러 면에서 내심 놀라운 사실들을 깨닫게 해 주었는데, 그 중 하나는 에디슨이 목재회사를 운영하며 침대도 만들었고, 그 목재회사가 시몬스 침대회사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발명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우리는 잠시 그가 한 때 27개의 회사를 운영하기도 하였던 벤처사업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가로서 1093종의 특허로 ‘발명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에디슨은 그의 3대 발명품인 축음기와 전구, 영사기 이외에도 다양한 가전제품을 만들어 가전제품 및 주방용품이 본격적인 공장생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전기를 서민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둘러보고 나오면 “토마스 에디슨의 덕을 보고 있지 않거나 그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을 찾으려면 정글로 가야 한다”고 했던 헨리 포드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에디슨과 헨리 포드의 사적인 친분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1878년 에디슨은 지금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신인 전기회사를 설립하는데, 헨리 포드는 이 회사에 취직하여 일한 적이 있었다. 그의 성실함과 기술은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회사에서도 인정받게 되었고, 16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디슨과 포드의 우정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그들의 친분을 증명하듯이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에는 에디슨의 마지막 숨결이 봉인된 튜브가 전시되어 있다. 에디슨은 그를 위하여 전기 자동차를 발명했으며, 포드는 1929년 에디슨의 전구발명 50주년을 기념하여 헨리 포드 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에디슨과 포드는 에디슨 일렉트릭 베터리카를 플로리다 주에 있는 그들의 휴양소에서 타고 다녔는데, 당시 제작된 자동차 2대 중 한 대는 헨리 포드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한 대는 우여곡절 끝에 참소리 박물관에서 구입하여 2000년 11월 이후 전시되고 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강릉 경포 호수 변에 위치한 참소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에디슨 발명품의 3분의 1을 수집했다고 자부하는 손성목 관장은 2007년 2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에디슨의 본적은 미국이지만, 에디슨의 현주소는 대한민국 강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슨이 최초로 만든 축음기, 전구, 영사기가 모두 강릉의 참소리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성목 관장이 자랑하는 수집품은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제1호 축음기 ‘틴포일’로 에디슨이 만든 6개의 틴포일 중 5개가 참소리 박물관 소장품이다. 세계 최초의 소리 기록 장치인 틴포일은 에디슨이 설계하고 그의 조수인 배츨러와 크루시가 3일 동안 제작해 완성하였다. 은박 또는 주석 포일을 감은 원통을 돌리며 진동판에 대고 말을 하면 바늘이 포일에 흠을 내며 소리를 기록하는 원리로 이 틴포일에 최초로 녹음된 노래는 에디슨이 부른 ‘메리의 어린 양’이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향후 무한하게 발전할 가능성의 초석이 됨과 동시에 개선해야 할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듯, 이 틴포일은 단 한번만 녹음이 가능하고 재생도 한 번 내지 세 번 정도 밖에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세계에 1대 밖에 남지 않은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를 수집할 때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는 동전을 넣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축음기로 1900년에 6대가 만들어졌지만, 1985년 수집가들 사이에서 단 1대만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99개를 가지고 있어도 나머지 한 개마저 모으고 싶은 것이 수집가인지라, 마지막 남은 한 대라는 소문은 손관장의 수집가로서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떠났던 그는 경유지인 미국에서 강도를 만나 어깨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경매에 참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경매에 참가하여 한 대 남은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축음기에 미친 사람이다. 그의 축음기 수집 이력만 해도 55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이니 그의 인생을 축음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처음 축음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48년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콜롬비아 G241’ 포터블 축음기를 받고 부터였다. 지금도 박물관 1층 로비에 가면, 1.4후퇴 피난길에 그의 아버지가 쌀 한 말과 교환해서 뉴스를 들었다는 라디오와 함께 ‘콜롬비아 G241’을 만나볼 수 있다. 손성목 관장은 3대 독자로 자랐는데, 늘 바깥 일로 바쁘셨던 아버지의 부재를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와 같이 축음기로 음악을 들었던 다섯 살 아이는, 여동생을 출산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피아노와 축음기 주변만 서성이게 된다. 피아노와 축음기가 없으면 밖에 나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버지는 피아노와 축음기를 팔았지만, 어머니를 잃은 다섯 살 배기의 슬픔과 우울함은 가시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손관장이 여섯 살이 되던 해 ‘콜롬비아 G241’ 포터블 축음기를 선물하였다. 그 이후 이 축음기는 그의 수집품 1호이자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축음기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10대도 안된 어린아이가 전쟁 중 피난길에 오르면서도 축음기를 버리고 가자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축음기를 짊어졌겠는가? 함경남도 원산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피난길이 녹녹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축음기를 버리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축음기 소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포와 불안 대신 웃음과 희망을 떠오르게 하였던 것이다. 축음기는 그렇게, 그에게 소리의 힘을 체험하게 하였다. 음악은 그에게 어머니의 목소리이자 생명의 젖줄이었기에 박물관 이름도 ‘참소리’가 되었다. 소리에 대한 그의 추억은 끝이 없다. 열네 살 쯤에는 삼촌이 준 고장 난 축음기와 밤새 씨름 한 끝에 새벽녘에 축음기의 목소리를 되살렸는데, 그 때의 감격으로 그는 다시 한 번 축음기의 소리에 매료되었다. 그 날 이후 축음기 소리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동네잔치마다 축음기를 둘러메고 나타났고, 친구들을 이끌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축음기 소리를 들려주며 함께 놀다가 선생님께 벌을 받기도 하였다.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축음기를 모으기 시작하여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약 열 대 정도의 축음기를 수집하게 되었다. 수집한 축음기는 반드시 분해하여 재조립하고 고장 난 축음기는 며칠 밤을 새고서라도 고쳤다고 한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아무리 삶이 고단하고 힘겨워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힘과 희망이 솟아났으니 이러한 소리의 힘이 그를 수집가의 길로 이끈 것이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이름난 경매장을 찾고 수집가를 만나는 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에디슨이 “나는 300년을 살고 싶다. 그래도 항상 바쁘게 살아갈 충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했듯, 손성목 관장도 아직 수집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300년 쯤 살아야만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열정과 희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덕분인지 박물관은 그 어느 박물관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활력이 넘쳤다. 대부분의 박물관에서는 자료에 대한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려면 방문객이 사전에 요청을 해야 하고,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박물관들이 많은데, 참소리 박물관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오는 모든 관람객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 때문에 박물관의 소중한 자료에 대한 가치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7000원이라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던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의 로고로 등록된 ‘니퍼’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참소리 박물관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니퍼’라 불리는 개이다. 머리를 갸웃이 기울인 채 축음기의 나팔 스피커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개의 그림에는 ‘주인님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니퍼’는 이 그림을 그린 영국의 유명한 화가 프랜시스 배로우드의 형, 마크가 기르던 애견으로 형이 죽자 동생 프랜시스가 돌보게 되었다. 어느 날 프랜시스는 축음기 앞에 특이한 모습으로 앉아 떠날 줄 모르는 니퍼의 모습을 보고, 니퍼가 형이 살아생전 즐겨듣던 ‘무도회의 권유’라는 음악만 나오면 축음기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니퍼는 축음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듯, 한쪽 귀를 쫑긋 세우고 축음기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1899년 프랜시스는 마침, 에디슨 축음기 회사로부터 광고용 포스터를 의뢰받고 축음기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니퍼의 그림을 그렸으나,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결국 이 그림은 당시 에디슨 축음기 회사와 라이벌 관계였던 베를리너 축음기 회사가 사용하게 되었고, 이 상표가 크게 인기를 끌자 회사는 이름까지 HMV(His Master’s Voice)로 바꾸었다. 그 이후 ‘His Master’s Voice’는 오늘날까지 여러 나라에서 오디오와 레코드의 심벌마크로 사용되고 있는, ‘20세기 유명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소리 박물관이 로고로 등록하여 이 ‘니퍼’를 마스코트로 삼고 있다.

글, 사진 : 유석영, 조창환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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