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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투쟁으로 나라를 지킨 고씨종친"

기획_ 종친회 탐방 ⑥고씨 고창군종친회

2016년 08월 31일(수) 18:05 [(주)고창신문]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의사(義士).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내걸고 싸운 이들이 있다. 이번호 <고창신문>에서는 의병투쟁으로 나라를 지킨 종친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씨 고창군종친회다. /편집자 주

↑↑ 입향조 고직 제실(정읍시 입아면 지선리 어룡제)

ⓒ (주)고창신문

종훈
1. 우리는 탐라국 고을라 왕의 후손 한 집안 한 핏줄임을 자랑한다.
2. 우리는 선조의 유덕을 받들어 친목단합으로 종문의 앞날을 빛낸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고씨 고을라 시조께서는 BC2337년 단군 즉위 4년 전에 탐라국 왕이 되었는데 탐라국이 비록 섬이었지만 제왕으로써 성(姓)을 일찍부터 가진 것이다. 역사학적으로 한자가 사용했던 신라 말 고려 초에 성을 사용했던 것 보다 훨씬 앞서 고씨는 성을 써왔다. 고을라를 시조로 한 고씨는 탐라국 45대 자견왕의 아들 태자 말로(末老)가 고려에 입조하면서 우리나라 고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그로인하여 후손들이 고말로를 중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원지 제주(탐라국)을 본관으로 성주공파·전서공파·영곡공파·문충공파·장흥백파·화전군파·문정공파·상당군파·양경공파등 9개파로 2013년 통계청 인구서비스 조사에 의하면 135,488호에 인구는 435,893명으로 우리나라 333개 성씨 중 22번째이다. 현재 우리 고창에는 문충공파와 장흥백파가 살고 있다. 이들 중 95%이상이 장흥백파이고 문충공파는 신림면 만화마을등지에서 일부가 살고 있다.

장흥백파(長興伯派)
장흥백파는 중시조 성주공 말로(末老, 탐라국의 태자)의 10세손 중연이 파조다. 중연은 일명 복림(福林)으로 자는 수일(壽一)이며 1330년(충숙왕17년) 1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서시랑 군기감을 거쳐 문화시중을 역임하였다.
1361년(공민왕10년) 10월에 10만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와 그해 12월 개경을 침범하자 공(公)이 공민왕을 모시고 지금의 안동으로 피난하였다. 다음해 난이 평정되자 개경으로 환궁하여 공민왕께서 공을 호종공신 장흥백에 봉하였으며, 공이 1381년에 향년 71세로 별세하니 양헌(良獻)이라는 시호를 내려 장흥백파의 파조가 되었다.

고창에 입조한 고직(高直)
고직의 아버지 고협(高協)은 장흥백의 4세손으로 조선을 건국한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과 동문수학을 하며 나이가 동갑인 절친한 친구였다. 고려 말 익원대군 왕소(王玿)의 사위이자 병부시랑 북부상서인 친구 고협에게 태종께서 신하 겸 스승으로 도와달라며 이름을 신부(臣傅)라 고쳐주면서 호조참 대호군의 벼슬을 제수(除授 =천거 받지 않고 임금이 직접 내림)하였다. 고협은 고려 왕조에 대한 의리를 이유로 대며 이를 거절하였다. 후에 고협은 지금의 장성군 삼계면으로 낙향, 삼계산중에 은거하며 궁핍한 생활을 하다 별세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께서 옛 친구로서 정을 생각하여 특별히 예신(禮臣)을 보내어 후히 장사지내게 하고 지금의 삼계면 덕산리 일대를 고협 공(公)의 사패지로 정하여 주었다.
고창에 입조한 고협의 둘째 아들 고직(高直) 또한 태종이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 =지금의 감사원)이라는 관직을 제수(除授)했다. 하지만 고직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출사(出仕)를 거절하고 1410년에 영광에서 지금의 흥덕면 제하리 고려실로 옮겨왔다. 고직은 마을 이름을 고려곡(高麗谷)이라 하고 마을 뒤 암벽에 <고려곡>을 새겨 고려를 잊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 있고 마을 이름도 그대로 고려곡(고려실)이라 부르고 있다. 고직이 이사를 와 살던 집터에는 공(公)이 심은 모과나무가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자라고 있다.
공(公)이 별세하자 지금의 정읍시 입암면 지선리 어룡포(당시 흥덕현 일동면)에 예장을 하고 제실을 지어 어룡제(魚龍齊)라 하여 장령공 화수회 주관으로 매년 4월 첫째주 토요일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고직의 배(配 =아내)는 숙부인 해주 최씨 전라감사 최당(崔璫)의 딸이다. 슬하에는 철산철성(哲山哲城) 형제를 두었으며 후손은 고창에 4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2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충공파(文忠公派)
문충공파는 중시조 성주공 말로(末老, 탐라국의 태자)의 11세손 경(慶)이 파조(派祖)로 문충공(文忠公) 경(慶)은 1292년(충열왕 18년) 16세에 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1297년에 문하성사, 1299년에 강원감사, 다음해에는 이부상서, 1304년에는 보문각 직학사 겸 집현전 태학사와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1320년 고향 옥구로 낙향하여 1342년 향년 67세에 별세하니 시호를 문충공이라 하였다. 이로써 공이 문충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전복 옥구, 경기, 강원, 서울 등지에 많이 살고 있으며 특히 유적지인 옥구지방에 세거하며 호남갑족의 유풍을 이어오고 있다.
고창에 입조한 사량(思良)은 중시조 성주공(公) 말로(末老, 탐라국의 태자)의 26대손이며 사직공 인충의 12대손으로 이씨조선 12대 영조대왕 52년(1776년)에 아들 덕성·덕형과 질 증통정대부우승지 덕승 종질 가선대부 이조참판 덕인 등을 인솔하고 진안군 용담에서 만화마을에 정착하여 240여 년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가통을 계승하여 서울, 전주, 익산 등지에서 살고 있다.

↑↑ 옥제사(성내면 옥제리)

ⓒ (주)고창신문

옥제사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473-1번지에 위치한 고덕붕·고여흥·고제만을 모신 고씨 장흥백파 여곡문중 사우로 매년 음력 10월11일 흥덕향교 유림들의 주관으로 향사하는 곳이다.
고덕붕 : 호는 여곡. 장령공 고직의 6세손이다. 1552년(명종7년) 출생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92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흥덕현 남당에서 단을 쌓고 삽혈동맹하여 맹주장이 되어 흥덕 장산, 부안군 호벌치 전투에서 왜적과 격전하다 장렬하게 순국했다. 1893년(고종30년) 승정원 좌승지로 추증되었다.
고여흥 : 호는 요은. 여곡공의 손자로 1617년(광해9년)에 출생했다. 오경대지도, 요은집상하, 심통성정도, 증용지도, 천인기도, 대학집요, 가레석 등을 저서한 당대 호남지방의 대학자였다.
고제만 : 호는 죽계. 여곡공의 11세손이며 1860년(철종11년)에 출생했다. 광무황제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 독립의군 참모관 칙령을 받고 의군으로 활동 파리장서에 주동이 되어 활약하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군산 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다. 광복 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도동사(신림면 가평리)

ⓒ (주)고창신문

도동사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168-3번지에 위치한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 국가보훈처 헌충시설 51-1-23호로 지정됐다. 고석진·고예진·고용진 등 독립투사 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고석진 : 호는 수남. 1856년에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1914년 유림의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독립 의군부 참모총장으로 활약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고예진 : 호는 송천. 1875년 흥덕면 송암리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수남 고석진과 함께 도동사에 배양되어 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고용진 : 호는 송제. 수남 고석진 선생의 큰형님이다. 1914년 고종황제로부터 독립 의군부 회계총관의 밀칙을 받고 활약했다. 광복 후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 파리장서 기념비(새마을 공원)

ⓒ (주)고창신문

파리장서 독립운동 기념비
“우리는 차라리 자진해서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을 것이다.”
붓의 투쟁으로 불리우는 파리장서 독립운동에서 전국 유림 대표들이 만천하에 자주독립 의지를 드러내며 쓴 글이다. 파리장서는 1919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에서 전국의 유림대표 137인이 민족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설파한 독립청원서로 3·1운동의 독립선언서와 함께 독립의 대의를 펼친 명문으로 전국 유림대표 137인 중 호남출신이 10명이다. 그 중 고창출신 고씨 가문의 고석진·고예진·고순진·고제만 의사(義士) 네 분이 목숨을 내걸고 독립청원서에 서명 날인동참하신 뜻을 기리기 위해 정부의 지원금과 군민의 성금으로 2014년 3월 29일 고창읍 새마을공원에 세운 기념비이다.

고씨 집성촌 위치
흥덕면 : 제하촌, 성암촌, 역곡(고려실), 종송리(송암)
성내면 : 교동(다리골), 외옥, 내옥, 대산물
신림면 : 만화, 왕림, 가평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요인물
고광노(청주지검 지청장) 고은설(현 대전지방법원 판사) 고석홍(제주지검 부장검사) 고재규(변호사) 고광철(조선대학교 전 공대학장) 고광헌(전 한겨레신문 사장, 현 연세대 교수) 고석원 (전 전북도의회 의장, 현 영선중고등학교 및 신협 이사장) 외 박사 56명 의사 32명 대학교수 20여 명이 활동 중.

[고씨 고창군종친회]
창립일 : 1982년 3월 15일
회원수 : 400여 세대
현 회장단 : △회장 고정상(고창읍), △부회장 고복상(신림면)·고석원(고창읍)·고용석(성내면)·고백상(서울) △고문 고광용·고석상·고광헌·고병윤·고남규 △감사 고석산·고정규 △총무 고황규 △재무 고용진

역대 회장단 : △초대~5대 고완상(흥덕면) △6대 고대식(신림면) △7~8대 고용림(고창읍) △9대 고광호(고창읍) △10대 고일규(신림면) △11대~12대 고광용(흥덕면) △13대~14대 고광헌(신림면) △15대 고병윤(성내면) △16대 고석상(흥덕면) △17대 고남규(신림면) △18대 고정상(고창읍)

종친회장 인사말

 

↑↑ 고정상 종친회장(왼쪽), 고황규 화수회장(오른쪽).

ⓒ (주)고창신문

 

고씨 고창종친회 회원 여러분 유난히도 무더운 삼복 더위에 건강하신지요.
우리는 탐라국 고을라 왕의 후손 한 집안 한 핏줄기로 한 뿌리에서 자란 꽃과 열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가를 만나 초대면을 하고 손을 잡으면 피가 흐르는 따사로운 감정이 옵니다.
고씨 고창종친회는 1982년도 3월에 흥덕 영한의원을 하시던 고완상 족장께서 당시 고제화 고창경찰서장과 창립하여 어언3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완상 초대 회장님을 비롯 역대회장님들이 장학사업과 종친 간 친목도모에 기여해 주셨고 종친의 뜻 깊은 의미와 뿌리내림에 진력해 주셨습니다. 지방자치제에 부흥하여 고병윤씨가 고창군의회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 인구 감소로 종친가구수도 줄어서 400여 세대이고 단합된 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종친 간 친목도모는 자주 상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년 시행하는 년초 정기총회에 특히 젊은 층이 많이 참여하여 일가 간 근황도 알고 좋은 의견 나누시고 종문에 관한 상식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종훈을 명심하시고 모든 일가 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무궁한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제주고씨 고창군종친회 회장 고정상

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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