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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공로훈장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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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로’ 도로명 변경 및 ‘동상철거’ 등 후속 과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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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1일(목) 19:0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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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 소재하고 있는 인촌생가 전경 | ⓒ (주)고창신문 | |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인촌 김성수(1891∼1955)가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 현 건국훈장 대통령장, 2등급)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 후 56년만으로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충격 또한 크게 느껴진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1월 8일 상훈법 제8조 1항 1조에 의거 ‘서훈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이를 박탈하도록 규정한 근거로 서훈 취소건에 대한 심사를 요청 했었다. 이에 따라 주무부 장관인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이 국무회의에 상정했고, 관련법에 따라 이날 취소결정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2년 3.1절을 앞두고 처음으로 독립유공자 208명에 대한 대대적인 포상을 실시하였으며, 인촌 김성수도 이때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인촌은 ‘문화운동’의 공로로 훈장을 받았으며, 문화운동이란 동아일보 창간, 물산장려운동 참여, 소위 ‘일장기 말소사건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때 받은 건국훈장 2등급은 격에 맞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백암 박은식 선생,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 의사, 여자 안중근로 불리는 남자현 의사 등이 2등급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3.1운동의 상징자인 유관순 열사도 3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서훈 취소는 2017년 4월에 있었던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당시 대법원이 김재호 동아일보사장과 (재)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일부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함에 따른 후속조치이다.
1심은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했고 인촌 측은 이에 불복하여 즉시 항소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은 4년 2개월 만에 이루어져 지난 2016년 1월 “1심의 판단이 맞다”면서 원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었다. 그러자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모두 인용했었다.
참여정부시절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리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9년 총 1,005명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한 바 있다.
정부가 친일 전력자들에게 수여한 훈장을 박탈한 경우는 두 차례 있었다. 1996년에 5명의 서훈을 취소하였으며, 2011년에 19명을 추가로 취소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이승만 비서출신으로 초대 내무부장관을 지낸 윤치영, 불교계의 거물이던 이종욱이다. 단골로 대상자로 거론되던 인촌은 이때도 빠지게 된 것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서훈이 취소된 인물은 세사람으로 인촌 김성수를 비롯해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송대곡’을 썻던 위암 장지연, 2·8독립선언에 참여했으나 나중에 변절해 일본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이 되어 친일논설을 쓴 서춘이다. 서춘은 1996년에, 자지연은 2011년에 각각 서훈이 취소되었다.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위는 구체적이고 다양하다는 이야기이다. 인촌은 실력양성론을 표방한 우파 민족진영에서 활동하였는데 총독부의 문화통치에 발맞추어 일제와 타협했다고 한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5회에 걸쳐 쓴 ‘민족적 경륜’이라는 궤변적 칼럼이 한 예이다. 사이토총독이 남긴 ‘사이토 문서’에 따르면 인촌의 오른팔이자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는 한달에 한번꼴로 사이토를 만난 것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창간초기에는 총독부로부터 여러 차례 무기정간을 당한 것이 사실이나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이후 동아일보는 친일성향의 보도를 밥 먹듯이 하였다.
개인적 친일행적도 적지 않다. 일제침략 전쟁당시 전시동원단체인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 이 단체의 후신인 국민총력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감사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일제 말기인 1943년 조선인 대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나가도록 촉구한 매일신보 1943년 11월 7일자에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를 쓰고 다른 호에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기고문이 있다. 이글은 매일신보가 조작해서 썻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자료가 없다.
인촌 김성수의 친일 논란은 대법원 판결과 정부의 서훈 취소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후속으로 취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며 우리 고창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고창에 있는 동상의 철거문제이다.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 소재한 인촌선생생가는 지방기념물 제39호로 1977년 12월 31일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의 김성수 고택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고창읍 새마을공원에는 1983년 8월 15일 광복절에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서 세운 인촌 동상이 소재하고 있다.
또한, 인촌생가가 있는 마을 앞을 통과하는 지방도 734호선은 심원면 용기에서 부안면 소재지까지 12.5km의 도로가 ‘인촌로’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도로에 대한 도로명 변경을 국내 17개 독립운동가선양기념사업회들로 구성된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회장 함세웅 신부)에서 지난해 고창군에 공문으로 변경요청을 하였으나 아직까지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동상 철거와 도로명 변경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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