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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고창사람 _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 연어의 회귀처럼 인간도 결국 숲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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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씨앗을 소중히 키운 천리포수목원장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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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30일(월) 19:1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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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서해안 태안반도의 끝에 자리 잡은 천리포수목원은 울창한 나무와 아름다운 꽃가지 사이로 탁 트인 푸른 해변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2000년에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할 정도로 그 경관이 일품이다. 이러한 천리포수목원의 원장으로 수목원을 애지중지 키워내고 있는 자랑스러운 고창의 인물이 바로 김용식 원장이다.
지난 2018년 2월 천리포수목원의 제7대 원장으로 취임한 김용식 원장은 고창읍 도산리에서 출생하여 고창중, 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임학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과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으로 런던 교외의 왕립큐우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 UK)에서 식물보전을 주제로 박사후과정(postdoc)을 마쳤다.
이후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에서 수여한 연구기금으로 5년 간 매 여름과 겨울방학기간 중 10회에 걸쳐 영국 왕립큐우식물원과 레딩대학식물학부에서 멸종위기식물의 보전을 연구하였다. 박사과정 중에 영남대학교 농축산대학 조경학과(현 생명응용과학대학 산림자원 및 조경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34년 간 재직한 끝에 2017년 2월 말에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여 현재는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유학을 하였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하여 황실 가족들을 가까이 만나는 기회도 있었고, 영국의 명망있는 린네학회(Linnean Society of London)의 석학회원(Fellow)으로 추천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현재도 국내외의 보호지역과 식물보전 및 식물원과 수목원 관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2017년에 펴낸 『수피도감』을 비롯하여 다양한 저서를 출간하였다. 『수피도감』은 나무의 껍질인 수피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국내 최초의 책으로서 조경과 원예 및 수목 전문가를 비롯하여 식물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수피의 특성을 일깨워 조경 식재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천리포수목원의 설립자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나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서 인천에 상륙한 고(故) 민병갈(閔丙㵧, 1921.4.5 ~ 2002.4.8) 선생이다.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라는 이름의 미군 장교였던 그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바닷가 황무지 땅을 사들여 수목원으로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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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태안반도의 끝자락, 토양마저 아주 척박한 모래땅에 씨를 받아 뿌리고, 삽목으로 수종을 하나씩 확보해 나가는 방식으로 터를 일구었으니, 쓸모없는 나무들을 비싼 돈을 들여 키우는 모습이 당시 주변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2002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반평생을 태안에 은둔하다시피 살며 척박한 야산을 고집스럽게 일구어 1970년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으로 등록하였다.
5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수입으로 수목원을 운영하면서 매일 매일 날씨를 비롯한 모든 수목원의 일들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 수목원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장교로 우리나라에 왔지만, 식물에 대한 열정과 헌신적 사랑으로 2005년 ‘숲의 명예전당’ 에 헌정되어 이 땅에 보여준 그의 헌신적인 식물사랑이 기록되었다. 사람대신 자연과 결혼한 그의 삶에 화답하듯 수목원 조성의 첫 삽을 뜬 이래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되었다. 김용식 원장은 조성된 지 30년 만에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 된 사례는 전무후무하며 다른 식물원들은 적어도 100여 년의 역사가 있어야 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천리포수목원이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인간의 아름다운 불굴의 의지가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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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설립자와의 인연은 김용식 원장이 이등병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군 생활 중 읽은 신문에서 천리포수목원 기사를 보고 수목원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민병갈 설립자로부터 답장이 오고 이듬해 첫 휴가 때 당시 민병갈 설립자의 직장이던 한국은행에서의 첫 만남을 가지면서 김원장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인연을 시작하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후 1974년 첫 휴가를 나와 천리포수목원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 제대 후 복학 전까지 10개월 간, 천리포수목원의 첫 인턴학생으로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넓은 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 온 힐리어 씨 부부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민병갈 설립자와 함께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이름표가 사라져 식별이 어려운 식물에 일일이 이름표를 새로 달아주는 모습을 보며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과정에서도 분류와 기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때의 인연으로 힐리어 씨에게서 받은 낡은 식물도감의 여백에는 “1977년 3월 18일 작년 12월에 보내주셨던 걸 잃어버리고 다시 Harold G.Hillier 씨로부터 받다. 그 분의 뜻을 받들어 더욱 소중히 간직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로 하자! 전북 농대 임학과 3학년 김용식”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젊은 시절 김원장의 다짐과 의지를 잘 보여주는 이 메모는 김원장에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3학년과 4학년 방학 중에도 천리포수목원에 머물면서 낮에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때 만난 국내외의 수많은 저명한 식물학자들을 통해 큰 영감과 꿈과 용기를 얻게 된 김원장은 이 시기를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행운의 시기로 회상한다. 그 인연들 중 하나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 수의·임과대학 임학과 하트만 교수를 만난 일이다. 수목원에서 다래 종자를 정선하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대화가 통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트만 교수가 귀국 후 제자를 소개하여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 동안 그 제자와 함께 제주도, 울릉도, 덕유산, 지리산, 설악산 등 전국을 여행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인연은 서울대학교 임학과의 임경빈 교수를 만난 일이다.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싶어서 전북대학교 대학원 임학과에 합격하였지만, 임경빈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석사과정에 지원하여 합격하였고 서울대학교의 새로운 제도의 수혜를 받아 등록금과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천리포수목원 인턴시절 이후의 소중한 인연으로는 영남학원 이사장으로 후에 영남대학교 총장을 하신 유준 박사와의 인연이다.
대학원 석사과정 중이던 1979년, 주말에 서울 등촌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무를 살피고 있던 김원장에게 한 노신사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아는 대로 두어 시간 정도 설명을 해 드렸는데 그 분이 바로 유준 박사였고 그 인연으로 김원장이 영남대학에서 일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나병연구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로 김원장의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르바이트하던 묘포장에서 가진 두어 시간의 대화는 김원장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영남대학교에서 교수로서 34년 동안 가르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몇 줄의 편지글을 씨앗삼아 소중하게 가꾸고 다듬어 큰 인연으로 키워낸 김원장의 마음이 곧 한 톨의 씨앗을 고이 키워 아름답고 울창한 숲을 가꾸는 수목원장이 되는 힘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자세가 가정생활에도 바탕이 되었던 것인지 김원장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대학졸업 즈음에 해주 오씨 가문의 경북 의성 아가씨를 소개받았지만 전라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이다 보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좁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 적대하고 차별하는 것은 우리 삶에 보이지 않는 장애일 것이다. 34년 간 영남지방에서 살아오면서 말 못한 고충을 피부로 느꼈기에, 영남대학에 재직하면서 호남대학의 한 연구실과 다년간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활발하게 활동을 주도하며 영호남 교류와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결과 세 쌍의 부부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열린 마음가짐과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인지, 양 집안의 껄끄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는 그해 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들 모두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녔고, 졸업 후에는 두 아들이 모두 안과의사로서 서로 필요한 때에 공동연구와 논문발표도 하면서 우애 깊게 지내고 있다. 두 아들은 음악 분야에서도 취미가 맞아서 클라리넷과 보컬로 합동 연주회를 하여 가족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아버지로서 김원장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성실과 인격도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낼 것을 조언한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가 인생의 성공이나 밝은 앞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문의 과정이나 인생의 여정에서 매번 좋은 멘토를 만났고 이들의 격려와 끊임없는 성원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자신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탁월한 교육적 역량을 이제는 천리포수목원의 꽃과 나무에 쏟아내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충청도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제주도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큰 지리적인 장점을 바탕으로 현재 16,500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고 이중에서도 단풍나무,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목련 및 무궁화를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키운다. 목련은 세계적으로 약 1,000종류가 있는데 천리포수목원은 800종류를 보유하여 세계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고 다양한 호랑가시나무를 기르고 있어 미국호랑가시나무협회에서도 공식 인증한 수목원이다. 올해는, 지난 1997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목련학회의 총회를 열기로 계획되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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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은 식물을 수집, 전시, 연구, 교육하며, 사라져 가는 식물을 보전하는 일을 주로 하는 곳이다. 특히, 앞으로의 수목원은 꽃과 나무를 보여주는 기능보다는 점차 훼손되어가는 환경을 되돌리는 연구와 생물 다양성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우치는 교육의 기능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최근에 문을 연 서울의 서울식물원처럼 세계의 유명한 도시는 모두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있기에 여행의 기회가 있다면 그 도시의 수목원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것도 다채롭고 풍부한 여행의 추억을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요즈음 전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초강대국들도 예외 없이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만 잡으면 앞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 창궐했던 사스 또는 메르스를 생각하면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더 자주, 더 큰 위력으로 우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는 그 동안 인류가 자연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오직 경제개발만 추구하며 자연을 훼손한 것에 따른 재앙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세상을 지속가능한 친환경의 세상으로 만들어야할 것이다.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생태계에 수많은 종류의 생물종이 매우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생태계는 우리가 보기에 무한할 것 같지만 그 수용능력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인류가 느끼던지 느끼지 못하던지, 에너지는 끊임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인류의 문화는 자연 생태계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김용식 원장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귀산, 귀농 현상은 우리 마음의 한 언저리에 항상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비록 급속도로 산업화된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앞으로의 직업 선택에는 아름다운 환경에서 올바른 심성을 키우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본다. 연어가 큰 바다에서 지내다가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인간도 숲이라는 거대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국가는 국민의 정신과 건강의 함양을 위해 숲의 치유능력에 관심을 가지고 오늘날 시대적 사명인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창이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방장산, 문수산, 심원의 갯벌, 선운사 동백숲 또는 문수사의 단풍나무숲, 고창천과 같은 자연자산을 잘 지켜나가야 하며, 긴 시간을 염두에 두고 고창의 생태 환경을 소중하게 돌본다면 이는 우리 후손에게 큰 선물을 준비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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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수목원장으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직무를 마친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그는 세계 주요 도시의 식물원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아내와 더불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 섬, 그린란드 및 시베리아의 가장 먼 북쪽지방 등 오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한다. 김용식 원장의 식지 않는 열정은 고창 생태자원의 보존과 조화를 위해서도 좋은 씨앗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우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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