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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석 박수근 아기 업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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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화가" 소박한 일상을 정감있게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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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09일(화) 14:3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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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박수근 강원도 양구 (1914년 2월 21일 ∼1965년 5월 6일 50)
미석 박수근은 삶과 예술은 한마디로 ‘서민화가’로 요약할 수 있다. 박수근은 사후에 더 유명해졌다는 점에서 이중섭과도 자주 비교가 되지만 박수근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중섭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며 노상과 장터 등 가난하고 소박한 일상을 정감 있게 표현했다.
화가로서의 시작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봄이 오다>가 입선한 1932년으로 볼 수 있다. 1936년 제15회 선전에서 <일하는 여인>으로 두 번째 입상을 하였다, 아기를 등에 업은 소녀는 밭일 하려간 엄마나, 오일 시장을 갔던 엄마를 기다리 소녀로 하여금 옛적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서민적인 그림이다. 그가 평생 추구한 예술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전쟁은 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공산 치하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혈혈단신 남하했다. 1940년 결혼을한 아내 김복순은 남매를 데리고 피난을 내려왔다가 서울 창신동에서 남편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후 박수근은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을 하며 붓을 다시 들었다
그의 그림은 가장 한국적이고, 서민생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이기에 더욱 정감이 있다. 1953년 국전에서 <집>은 특선을, <노상에서>는 입선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특유의 소박한 인물과 풍경이 굵고 검은 윤곽선에 황갈색의 색채와 두터운 질감, 명암과 원근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보인다. 특히 박수근의 작품은 외국인 미술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독특한 조형적 특성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적 정취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수근의 작품은 시대의 풍속이 그대로 담겨 있어 시간이 흐른 후 점차 한국인들에게도 전통적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26세 되던 해에는 인생의 가장 큰 동반자이자 반려자를 만났다.
결혼전 아내에게 전해준 편지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고는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귀여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꿈꾸어오던 내 아내에 대한 여성상은 당신과 같이 소박하고 순진하고 고전미를 지닌 여성이었는데, 당신을 꼭 나의 배필로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간 그는 사후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김환기와 더불어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2002년에는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에 박수근미술관이 개관됐다. 대표작에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이 있으며.
<아기 업은 소녀>는 38×17㎝ 크기의 작품으로 어린 소녀가 흰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서 있는 뒷모습을 담고 있다.
6.25 전쟁후 부모들은 대부분 생업에 쫓겨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여유조차 없엇고 소녀들은 어린 동생을 업고서 집안일을 돌보아야만 했던 시절을 생생하게 표현 했다.
<아기 업은 소녀> 작품은 2001.1월 서울 옥션 하우스에서 실시된 제53회 한국 근현대 미술품 경매에서 5억 5백에 경매되여 그 당시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에 최고가였다.
2006년 <노상>이란 작품이 10억 4,000만 원, 이듬해 3월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에 낙찰된 뒤 이어진 기록 경신이었다.
<빨래터>는 2007년 3월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45억 2,000만 원이라는 최고가를 경신하며 낙찰되었다.
그가 태어난 생가터인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 박수근 미술관이 있다.
<참고문헌: 청산가곡>
글 염국화, 화각 송천 염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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