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07-09 | 11:48 오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지역문화

문화/관광(행사)

생활레져/스포츠

문화종합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문화/생활 > 문화종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안중근의사 遺墨(유묵)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보물 제569-22호

2020년 06월 17일(수) 12:38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안중근:1879.9.2.-1910.3.26. 황해도 해주
태어날 때 배에 검은 점이 7개가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어릴 때에는 응칠(應七)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을 해외에 있을 때 많이 사용했다. 17세에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다.

안중근의사의 생애는 많이 알고 있기에.. 우리가 몰랐던 안중근의사 유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유묵은 200여점 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현재 발견된 유묵은 62점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유묵 140여점이 된다.
안중근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독방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접촉이 없었다. 글을 쓴 것은 1910. 2.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날부터 3.26일 사행이 집행된 날까지 40일 동안이다.

40일동안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고 유묵 200여점을 썼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만끔 어려운 일이다.
40일동안 그 글을 쓰려면 하루에 5점을씩을 섰다는 일이다.유묵 글씨체를 보면 갓 30세가된 젊은 청년이 사형선고를 받아놓고 언제 형이 집행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붓글씨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는 작업실에 안중근의사 유묵 12점을 서각으로 작업하여 추모관을 꾸며놓고 있다. 그중 한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에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이글은 감옥을 지키는 간수(看守)인 검찰관 야스오카에게 써준 유묵(遺墨)인데 집안 가보로 간직해오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했다.
많은 유묵 가운데 의사로서의 마음의 무게가 가장 잘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아는 <발렌타인 데이>는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 사실을 숨기려는 듯 얄팍한 상술로 초코렛을 주고 받는날로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치욕이다.
우리는 이 치욕적인 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1살의 나이에 형상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1910년 3월 26일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 되기까지 40일동안 유묵 200점은 인간으로써는 이해가 가지않은 정신력이다.

보통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아놓고 하루하루를 보내기란 정신 분열증에 공항상태였을 것이다.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조 마리아) 편지를 언급 하고자 한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거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 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쓰는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안중근 유해는 뤼순 형무소 근처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만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은 차가운 뤼순의 땅밑 어딘가에서 무슨 생각을하고 있으며, 지금의 우리나라에선 안중근의 의지를 이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서울국립현충원의 안중근의사 묘소는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기 위한 가묘(假墓)이다. 이글을 쓰고 나면 작업실의 안중근 추모관에 참배하러 가야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염영선 시민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고창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하늘말나리

동방 5현 일두 정여창 모신 남계서..

희망샘학교 복지시설 나눔 숲 조성..

심원면 하전리 상전마을 이종구 이..

공정한 판단으로 큰 고창을 만들기 ..

고창군의회 제8대 후반기 원구성 마..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조창환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조창환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