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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적 표현으로 엄숙한 가르침을 전하는 ‘도동서원’

동방 5현 중 수현(首賢)으로 추앙받는 김굉필 배향

2020년 09월 01일(화) 12:58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기획 - ⑥도동서원 (道東書院)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해학적 표현으로 엄숙한 가르침을 전하는 ‘도동서원’
동방 5현 중 수현(首賢)으로 추앙받는 김굉필 배향

달성군 대니산과 진등산을 배경으로 낙동강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는 2차선 도로는 분위기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한적한 시골 도로 답지 않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빈번하다. 현풍읍 자모리에서 도동서원이 있는 구지면 도동리를 연결하는 도동서원터널이 2019년 9월 개통되기 전에는 군도 1호선을 따라 다람재를 넘었다. 현풍에서 낙동강을 오른쪽으로 벗하면서 성하리와 자모리를 거쳐 대니산 다람재로 오르면 낙동강 구비와 도동서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람쥐를 닮은 형상으로 다람재가 되었다는 고갯마루에는 도동서원 주인공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의 시 ‘노방송(路傍松): 길가 소나무’ 시비가 묵묵히 길손을 맞고 보낸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2차선 도로 옆, 둘레가 9미터에 달하고 수령 4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이 곳이 예사롭지 않은 장소임을 알려준다. ‘김굉필 나무’라 불리는 이 은행나무는 한훤당 김굉필의 외종손 한강 정구가 안동부사로 재직 중이던 1607년(선조40)에 도동서원 중건기념으로 식수하였다. 남인 예학의 대가인 한강은 한훤당을 제향하는 서원건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역시 훗날 도동서원에 배향된다. 은행나무에 황금빛 단풍이 들면 반경 50미터 이내가 화사하여 지나는 길손을 모두 불러들였을 것이다. 여름이라 화려한 색채는 없지만 그 풍채만으로도 압도적이다.

1568년 도동서원이 처음 건립된 곳은 현풍현 쌍계동으로 원래는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1573년에 사액을 받았지만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는 바람에 1605년 한훤당의 외종손인 한강의 주도로 한훤당의 묘소와 은거지 인근인 현 위치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보로동서원이라 하였다가 1607년(선조 40)에 도동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한훤당 김굉필은 두 번의 사화로 희생된 조선 전기의 대표적 유학자이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길재의 학풍을 이은 사림파의 중심인물인 김종직의 제자로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1498년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빌미가 된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순천으로 옮겨졌으나 51세가 되던 1504년, 연산군 생모 윤씨 폐비사건이 구실이 된 갑자사화로 사약을 받고 처형당한다.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조광조, 정여창, 이언적, 이황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어 수현(首賢)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자신을 ‘소학동자’라 부를 정도로 소학 공부에 뜻을 둔 의리(義理) 학문의 선구자였으며 성현의 학문을 바탕으로 심성을 수양하고 덕을 실천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도학으로 숭상하였다.

서원 앞 은행나무 뒤편에 담으로 둘러싸인 신도비각이 보인다. 한훤당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는 1625년(인조 3)에 사우당 김대진이 주도하여 세웠다. 장현광이 글을 짓고 사헌부감찰 배홍우가 썼다. 귀부의 머리가 두 개인 점이 독특하다.

신도비 맞은편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비석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한훤당의 500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다. 그 뒤편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싫다는 듯 서 있는 유물전시관에는 도동서원의 연혁과 유물모조품 등을 전시한다는데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여기보다는 서원을 보시오’ 말하는 듯하다.
도동사원의 외삼문은 2층 누각의 형태로 수월루(水月樓)라는 현판을 걸었다. 애초에는 없던 외삼문이 1894년(고종 31)에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는데 불에 타 소실되어 1974년에 지금의 수월루가 자리 잡았다. 그 옛날 낙동강을 향한 전망 때문에 단출한 환주문으로 외삼문으로 대신한 뜻을 강당인 중정당의 마루에 올라서 보면 깨달을 수 있다. 수월루가 서원의 조망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에 비친 달이라는 의미의 ‘수월’은 주자의 ‘월락만천, 처처개원(月落萬川 處處皆圓)’을 생각나게 한다. 달이 모든 물에 떠 있지만 본래 하나인 것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도 다 같은 천리가 담겨있음을 깨닫고 정진하라는 주자의 가르침이 들리는 듯하다.

도동서원 역시 ‘전학후묘, 전저후고’의 구조를 따르고 있고 모든 문과 건물의 중앙을 중심축으로 배치하고 있어서 계속 계단을 오르며 일직선으로 나아가게 되어있다. 수월루를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 앞에 서서 올려다보게 되는 ‘환주문(喚主門)’은 「좁은 문」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그의 소설 「좁은 문」에서 크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한다. 계단 앞에 서서 소맷돌에 새겨진 연꽃과 태극 문양을 통해 수양의 본래 의미를 헤아리면서 옷매무새를 추스르던 선비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주인은 부른다는 의미의 ‘환주문’은 자신의 참된 본성을 깨우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좌우로 닭 두 마리가 장식하고 있는 현판은 다분히 해학적이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깊은 뜻을 생각해 보게 된다. 첫 닭 울기 전의 시간은 어둠의 시간이므로 문을 통과하면서 빛이 깨어나듯 몽매함에서 깨어나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모지붕을 얹고 아름다운 토담으로 이어진 아기자기한 모습의 환주문은 친근한 겉모습과는 별개로 엄숙함을 담고 있다. 연꽃봉오리처럼 놓인 환주문의 문지방돌을 비롯하여 추녀의 모서리마다 새겨진 연꽃도 선비들에게 더러운 진흙에 매몰되지 않는 참된 선비가 되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도동서원의 강학공간으로 들어선다.

강학공간은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이 중심에 서서 동재인 ‘거인재(居仁齋)’와 서재인 ‘거의재(居義齋)’를 좌우로 거느리고 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거인재가 서쪽에 있고 거의재가 동쪽에 있지만 중정당은 배산임수의 지형 상 북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중정당의 왼쪽이 동재, 오른쪽이 서재가 되었다. 이는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신이 상징하는 방향과도 부합한다. 인은 동쪽을, 의는 서쪽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중정당의 중앙으로 이어지도록 돌길을 깔았는데 그 끝에는 거북이 큰 눈을 부릅떠 지키고 있다. 유교에서는 ‘동입서출’이라 하여 오른쪽은 들어가는 문, 왼쪽은 나오는 문이며 가운데 문은 신이 출입하는 문이다. 가운데 길이나 문은 아무나 함부로 밟거나 출입할 수 없는 것으로 중정당의 중앙으로 이어지는 돌길도 신도(神道)라 하여 스승이나 신(神)에게만 허락된 길이다. ‘중정’의 출처는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인 주돈이의 ‘태극도설’ 중 ‘성인정이중정인의(聖人定以中正仁義)’이다. 성인은 중·정·인·의로써 모든 것을 안정시킨다는 의미이다.
중정당은 여덟 계단 위의 높은 기단 위에 팔작지붕을 활짝 펼쳐 화려하고 위엄 있게 서 있다. 높은 기단석이 오목조목 맞춰 이은 조각보처럼 곱다. 전국에서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각자의 돌을 가져다 쌓았다고 하니 그 정성과 솜씨가 감동을 준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도동서원의 담장, 사당과 더불어 보물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기단 윗부분에는 용 네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물을 다스리는 용을 조각하여 낙동강 범람으로 마을이 수해를 입지 않도록 기원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용머리가 물고기를 물고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옆으로 혀를 빼어 문 것 같이 보인다. 쓰다듬고 싶은 애완동물처럼 귀엽고 장난스럽다. 네 개 중 세 개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 알고 보니 도둑을 맞아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 한다. 도둑맞은 용머리를 찾기 위해 서울 인사동 골목에 잠복까지 해서 되찾아 오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진품은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라 한다. 중정당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좌우 양 끝에 놓였는데 그 옆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계단 옆에는 올라가는 다람쥐가, 왼쪽 계단 옆에는 내려오는 다람쥐가 꽃송이 문양과 나란히 새겨져 있다. 오늘날 계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우측보행’을 이처럼 귀엽고 해학적으로 표현해 놓다니, 서원 건축 당시 아기자기하고 성품이 다정한 예술가가 있었나보다. 다람쥐 부조가 새겨진 돌도 도둑맞았다가 다시 찾았다고 하니 씁쓸한 한편, 그것을 되찾은 후손들의 의지와 집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동서원에는 이처럼 개성 있고 아기자기한 석조각품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중정당의 정면에서 보면 편액 세 개가 나란히 보인다. 두 개는 도동서원 편액이고 아래로 중정당 편액이 걸려있다. 처마 밑에 고풍스럽게 걸린 목판의 글씨는 이황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고 안쪽에 걸린 현판은 선조가 내린 사액 현판으로 경상도 도사 배대유가 쓴 것이다. 퇴계의 글씨를 집자한 처마 밑 도동서원 편액 아래에는 한강 정구가 스승 퇴계의 글씨를 집자한 이유를 적은 글이 직사각형 목판으로 걸려있다. 퇴계가 한훤당의 서원 건립에 늘 관심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만일 도동서원이 퇴계의 생전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손수 현판을 썼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사액 현판을 내릴 즈음, 퇴계의 편액 글씨 중 네 자의 큰 글씨를 찾아 본을 뜬 뒤 새겨서 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한훤당, 퇴계, 한강으로 이어지는 그 의리가 부러워 본받고 싶어진다.
중정당을 더욱 기품 있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여섯 개의 기둥 윗부분에 둘러진 상지(上紙)라는 흰 띠이다. 이는 도동서원에 모신 한훤당 김굉필의 위상을 드러내준다. 한훤당은 동방5현 가운데 수현(首賢)으로서 가장 웃어른으로 모셔진다. 상지는 위대한 성인을 모신 곳임을 알려 예를 갖추도록 한 것으로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관솔불을 놓는 정료대는 중정당 바로 앞에 당당하게 놓여있다. 마당 한편에 치우쳐 놓은 다른 서원들과 비교하면 독특한 위치이다. 내면적 밝음에 대한 추구가 물리적 위치에서도 강하게 표현된 것 같다.

중정당 오른쪽 옆으로 서 있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은 장판각이다. 한훤당의 경현록(景賢錄)을 보관하던 곳으로 내부는 통 칸으로 통풍과 방습에 좋도록 바닥을 띄웠다.

중정당 뒤편 높은 계단 위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보인다. 이 곳 계단에도 태극 문양과 만(卍)자 문양, 꽃봉오리 모양 그리고 계단 한 가운데 양머리 형상 등 자세히 관심 있게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다.

신성한 공간인 사당은 내삼문을 중심으로 따로 담장을 쳐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현판이 걸려있지 않아 왠지 허전하다. 중앙에 한훤당 김굉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한훤당의 왼쪽에는 한강 정구를 모셨다.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낸다. 사당 담장에는 판석 4장으로 만든 사각형 구멍이 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낸 뒤 축문을 태우는 감(坎)이라 한다. 보통 사당 뒤쪽 바닥에 두는데 도동서원은 감이 위치한 장소 또한 독특하다.

앞서 기술하였듯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사당, 담장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켜켜이 시루떡을 안치듯 진흙과 암키와를 배열하고 중간 중간에 수막새를 사용하여 음양의 조화로 생명력을 불어넣은 담장은 돌과 진흙과 기와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개성 있는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동방 5현 중 수현으로 추앙받는 김굉필을 모시는 도동서원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해학적 표현으로 엄숙한 가르침을 친근하게 전한다.

글,사진 유석영,조창환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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