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김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이나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노라
고창 무장기포지에 131년 전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지난 25일, 고창군 공음면 무장기포지 일원에서 열린 ‘제131주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는 단순한 과거 재현을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민중의 외침과 민주주의의 뿌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에서 최초의 민권운동이자, 부패한 권력과 외세의 침탈에 맞서 백성 스스로 일어선 위대한 민중혁명이었다. 그 출발점이 바로 1894년 3월, 고창 무장에서의 ‘무장기포(武裝起包)’였다. 이날의 봉기는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라는 동학사상 아래 평등과 정의, 개혁의 시대정신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이번 기념제는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정기백 이사장)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심덕섭 고창군수, 조민규 군의회의장, 윤준병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와 전국 유족회 뿐 아니라, 역사가 주는 교훈과 가치를 미래로 이어나갈 젊은 세대, 전북인공지능고 학생 등 900여 명이 참석해 동학농민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행사는 ‘태권유랑단 녹두’의 축하공연으로 막을 열었다. 제18회 녹두대상 시상식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기여한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 1000만 원과 상패가 전달되는 순간, 참가자들은 동학 정신이 단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어진 ‘동학농민군 진격로 걷기’와 ‘무장읍성 입성재연’은 1894년 무장기포의 그날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특히 전북인공지능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은 ‘무장읍성 입성재연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지친 농민군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며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정탄진 전국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은 ‘무장포고문’을 낭독하며 선열들의 절절한 뜻을 되새겼다.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고통에서 구하라는 다짐은 131년이 지난 오늘에도 울림이 크다.
정기백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대에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심덕섭 고창군수 역시 “무장기포는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라며, 전국적인 기념사업으로 확대해 나갈 뜻을 밝혔다.
이번 행사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창군은 오는 5월 11일까지 토·일·공휴일에 동학진격로 걷기 챌린지를 비롯하여 5월 9일 총체극 공연, 12일 명사특강(강사 황현필) 등 다채로운 후속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을 앞두고 있는 고창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은 동학의 가치를 늘 상기할 수 있도록 고창군청 맞은편 전봉준 장군 동상 가까이에 있다.
무장기포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부패한 권력, 외세의 횡포, 기득권의 착취 속에서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던 농민들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밥을 위한 봉기’가 아니었으며 평등과 정의,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한 소망이었다.
사회 곳곳에 불평등과 소외, 그리고 기득권의 장벽이 존재하는 한, 무장기포기념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131년 전, 무장에서 터져 나온 민중의 외침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우리는 꿈꾸던 사회를 이루었는가?”
유석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