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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액운 털고 새봄 맞이...고창의 정월대보름

끊어질 듯한 공동체의 끈, 굿 소리로 다시 잇다

2026년 03월 04일(수) 15:01 [(주)고창신문]

 

[기획] 끊어질 듯한 공동체의 끈, 굿 소리로 다시 잇다



묵은 액운 털고 새봄 맞이...고창의 정월대보름




↑↑ 고창농악 줄놀이, 오방돌기

ⓒ (주)고창신문




↑↑ 고창농악 줄굿

ⓒ (주)고창신문





정월 대보름은 예부터 고창 땅 전역이 들썩이는 날이었다.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는 정월대보름 전야인 지난 2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제45회 고창오거리당산제’를 거행했다. 국가무형유산 등재를 위해 정성을 다한 이번 제례는 읍내 중앙당산 일대에서 엄숙하게 치러지며 군민의 안녕을 빌었다. 또한 공음참나무정농악단 역시 이틀간 공음면 일대를 돌며 ‘마당밟이’ 행사를 펼쳤다. 가가호호 방문해 지신을 달래고 액운을 물리치는 이들의 굿 소리는 농촌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고창의 보름은 이렇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굿 소리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3월 1일, 성송면 고창농악전수관에서 펼쳐진 ‘고창농악보존회 대보름굿’은 단순히 한 단체의 대보름 행사를 넘어, 사라져가는 공동체 문화를 부여잡고 다시 세우려는 간절한 염원의 장이었다.
올해 행사는 ‘제28회 고창농악 공개행사’를 겸해 그 어느 때보다 격식 있고 풍성하게 치러졌다. 특히 지난해 상쇠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명훈 보유자의 기념 잔치가 더해지며 전수관 마당은 전국에서 모인 전수생과 지역 주민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 정성껏 디린 용줄에 마을 어르신이 굿전을 꽂고 있다.

ⓒ (주)고창신문



▶ 줄굿에서 당산제까지, 대동의 미학
고창을 비롯한 호남 서부지역의 보름 문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줄다리기’다. 하지만 고창의 줄다리기는 단순히 힘을 겨루는 경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굿과 의례, 놀이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한 예술적 축제의 장이다.
고창 농악의 전통 속에서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줄이 완성되면 그 앞에서 줄의 신명을 돋우는 ‘줄굿’을 친다. 여기서 줄굿은 좁게는 줄 앞에서 치는 굿을 뜻하지만, 포괄적으로는 줄다리기와 오방돌기, 줄감기 전체 과정을 통칭하는 생명력 넘치는 의례다. 편을 갈라 한바탕 줄다리기를 마친 사람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줄을 높이 들고 마을 곳곳을 도는 ‘오방돌기’를 행한다. 마을의 사방을 돌아온 줄이 마지막으로 당산나무에 도착해 줄을 감아놓는 ‘줄감기’를 마치고서야 비로소 당산제가 거행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줄다리기를 단순한 놀이에서 공동체 전체의 축제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마을 단위의 ‘굿패’가 갖춰져야 한다. 마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공동체 문화가 퇴색해가는 오늘날, 마을 스스로 이러한 굿패를 꾸려 대규모 줄다리기를 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고창농악보존회가 매년 정성을 다해 줄을 디리고(만들고), 당산에 새 옷을 입히며 손님 맞이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을에서 사라져가는 이 소중한 풍경을 전수관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라도 온전히 보존하고, 끊어질 듯한 공동체의 끈을 다시 잇고자 하는 ‘전통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 고창농악보존회 구재연 회장의 축문 낭독

ⓒ (주)고창신문



▶ 굿판을 일구는 사람들의 진심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저마다의 위치에서 고창농악을 지탱해온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구재연 고창농악보존회장은 과거의 풍요로웠던 보름 풍경을 회상하며 안타까움과 희망을 동시에 전했다.
“예부터 정월 대보름이면 고창은 온통 보름굿 소리로 들썩였습니다. 마을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굿판 덕분에 우리네 삶도 마음도 더욱 풍요로웠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사회는 변화하고 지역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농촌 공동체의 위기로 다가오는 실정입니다. 그 안타까움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은 ‘우리들의 보름굿’을 꾸준히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대보름마다 전수관에서 줄을 디리고, 당산에 새 옷을 입히고, 모두의 넉넉한 마음을 모아 굿판을 벌입니다. 오늘 이 굿판에서 묵은 액운을 털어내고, 고창농악의 활기찬 기운을 듬뿍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난해 고창농악 상쇠 보유자로 인정된 이후 첫 공개행사를 치른 이명훈 보유자의 소회는 더욱 묵직했다.
“보유자가 되고 나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예전 원로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공개행사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선배님들이 닦아오신 고창농악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정진하고 소리를 깊게 다듬겠습니다.”

젊은 전수자들에게 보름굿은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얻는 ‘삶의 엔진’과도 같다. 이한울 보존회원은 고창 곳곳의 굿판을 누비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매년 보름마다 보존회 굿뿐만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무장면의 보름굿, 심원면 용기마을의 보름굿 등 여러 마을을 찾아다닙니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무사 안녕을 빌어주고 그분들로부터 복을 받아오는 과정이 저에게는 진정한 일 년의 시작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굿의 생명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 고창농악 전수생들의 당산제

ⓒ (주)고창신문



오후 내내 이어진 판굿의 대미는 연희자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진 대동놀이였다. 꽹과리 소리와 함께 모두의 열기가 전수관 마당을 채울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왜 우리는 이토록 굿 소리에 열광하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멈추지 않는가.
공동체는 단순히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을 한 가락의 장단에 실어 보내고, 무거운 줄을 함께 어깨에 메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감의 연대’다. 인구 소멸과 개인주의의 확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고창농악보존회가 지켜낸 이번 보름굿은,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함께함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고창농악의 쇠 소리는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마을 공동체의 담장을 다시 쌓고,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외침이다. 올 정월 대보름, 전수관 마당을 가득 채웠던 그 뜨거운 신명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과 마을로 흘러 들어가 공동체를 회복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창의 굿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굿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김민찬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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