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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풀꽃시인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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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서로 부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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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수) 16:1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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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풀꽃시인 나태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서로 부탁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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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태주 시인 | ⓒ (주)고창신문 | |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던 지난 21일, '책이 있는 풍경(이하 책풍)'은 이른 점심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풀꽃 시인'으로 사랑받는 나태주 시인이 월드비전 후원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이와의 여정을 담은 여행 시집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를 들고 고창 군민을 찾았기 때문이다. 본지 기자가 찾은 현장은 단순한 북콘서트를 넘어, 80 평생 시와 함께 살아온 노시인이 건네는 투박하고도 진솔한 '삶의 지혜'를 듣기 위한 군민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 사람 냄새나는 고창의 보물 '책풍'
강연의 문을 열며 나태주 시인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행사가 열린 공간, '책풍'이었다. 시인은 "전국의 문학관을 다녀보면 잘 지어놓고도 운영을 안 해 문을 열면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곳들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하지만 이곳 '책이 있는 풍경'은 다르다. 문을 열면 곰팡이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는 이런 공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오아시스"라며 극찬했다. 그는 "공공의 지원 없이 개인이 이토록 생명력 있게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사람이 북적여야 침 냄새가 곰팡이를 이겨낸다. 이곳이 고창의 인문학적 자산으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공공의 관심과 지원이 더해지길 바란다"고 당부해 청중의 큰 박수를 자아냈다.
■ 세상 살맛 나게 하는 고창의 맑은 맛
고창의 '맛'과 '정'에 대한 시인의 찬사도 이어졌다. 시인은 이번 방문에서 접한 고창의 음식을 언급하며 "맛이 아주 어렸을 때 먹었던 그런 바지락, 백합의 맑은 맛이었다"고 감탄했다. 특히 "세상 사는 맛이 안 나고 지칠 때 먹으면 다시 기운이 날 것 같은, 다시금 세상 살맛 나게 하는 음식이었다"고 극찬했다. 시인은 고창에서 느낀 이 맑고 깊은 맛을 어떻게 시로 옮길지 벌써부터 고민이라며, 고창의 풍경과 맛이 조만간 그의 시집에 담길 것임을 예고했다.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현대인들을 향한 날카로운 조언도 이어졌다. 시인은 괴테의 말을 인용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강조하며, 방향도 모른 채 속도만 내는 삶은 홍수에 휩쓸려가는 흙탕물과 같다고 경계했다. 특히 스마트폰과 AI 시대의 '정보'와 '지식'을 엄격히 구분한 대목이 돋보였다. 시인은 "쏟아지는 정보는 마실 수 없는 '흙탕물'일 뿐"이라며,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지식이 깊은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최근 화두인 AI에 대해서도 명쾌한 선을 그었다. "AI는 정보를 조합할 뿐 인간의 '체험과 시간'은 없다"며, "타자에 대한 욕망(에로스)이 없는 AI는 시를 흉내 낼 뿐"이라고 단언했다. 시인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길러내는 '샘물'이야말로 진짜 지식이며, 우리가 가진 서툴고 불안한 마음이야말로 인간만의 귀한 자산임을 강조했다. 이어 속도전에 지친 이들에게 "잘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명쾌한 처방전을 건넸다.
■ 시가 건네는 위로, "너도 그렇다"
이날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국민 시(詩) 「풀꽃」에 담긴 반전의 미학이었다. 시인은 이 짧은 문장 안에 숨겨진 치밀한 시적 장치를 직접 설명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은 "이름 없는 들판의 풀꽃을 향하던 시선이, 마지막 구절인 '너도 그렇다'에 이르러 비로소 독자에게로 옮겨온다"고 설명했다. 보잘것없는 풀꽃을 관찰하던 따뜻한 시선이 느닷없이 '나'라는 존재를 향해 확장되는 순간, 시는 강력한 위로의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특히 시인은 이 시가 유독 한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로 '낮아진 자존감'을 꼽았다. "우리 한국인들은 유독 자존감이 낮다. 남들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느라 정작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며, "그런 우리에게 나이든 시인이 '너도 자세히 보면 참 예쁜 사람이다'라고 건네는 이 한마디가 일종의 마음을 고치는 약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인의 해설이 끝나는 순간, 객석 곳곳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긍정하는 듯한 깊은 공감의 파동이 일었다.
■ 서로 부탁하며 삽시다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투병 당시의 비화가 공유됐다. 남편과의 불화로 힘들 때 「부탁」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한 독자의 사연에 시인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6개월 동안, 아내가 곁에 없으면 몸 수치가 나빠지더라.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라'는 시는 어린아이 같은 내 마음이 아내에게 건넨 간절한 부탁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인은 "우리 서로 부탁하며 살자. 오늘도 돌아갈 길이 있고, 기다려줄 사람이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며 강연을 맺었다. 시인 나태주가 고창 '책풍'에 남긴 것은 단순한 사인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라는 따뜻한 당부였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책풍'을 떠나지 못하고 시인의 여운을 되새기는 군민들의 모습에서, 고창이 단순한 농생명 도시를 넘어 '인문학적 성지'로 거듭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디 아프지 마라"는 시인의 따뜻한 끝인사처럼, 고창의 봄은 그 어느 해보다 맑고 깊은 시의 향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김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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