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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고향 풍경

김양일(언론인,수필가)

2004년 10월 18일(월) 18:00 [(주)고창신문]

 

지겹고 무더웠던 여름. 억수같이 퍼붓던 폭우.



지난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10년만의 폭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앞에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을 느끼니 어김없는 가을이다.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노래가 생각나기도 한다. 코스모스로 시작해서 국화로 영글어 가는 가을이다. 귀뚜라미가 긴밤을 지져대며 누군가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가을은 뭔가 골똘이 생각해 보고 고민하는 선비의 계절. 추사비라고 했던가. 하루하루 더 길어지는 밤. 밤잠을 설치고 지난일을 후회하고 참회하고 그래도 살아야만 하는 현실의 압박감. 누구나 해당되는 고민사항인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 자신의 건강문제, 나이외의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사항, 노후의 할 일과 생존을 위한 고민, 그리고 하고 싶은일, 해야할 일을 해야 하는 성취, 보람, 사랑, 행복을 이루는 미래의 설계. 그결실을 위해 정진하고 고민하는 가을이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내 마음의 자유와 평화, 풍요와 보람이라고 했다.

곧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럴 때 내고향 고창의 가을 풍경을 생각해보는 모처럼의 여유를 가져본다.

동내(동산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개구쟁이였던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남의 보리밭에서 생보리 서리해 먹던일, 6■25전쟁직후 동네 꼬마들을 모아 모양산성밑에서 병정놀이하면서 꼬마대장하던일, 봄이면 뒷산에 올라가 진달래 꽃 따먹던일,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장구치고 놀던일, 겨울에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나가서 놀던 시간이 많았기에 손과 볼이 항상 터서 까칠까칠하고 손등에는 피멍이들 정도였다.





말썽많이 피운만큼, 야단도 많이 맞았던 어린시절이지만 60이 넘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흐뭇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바로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우리모두의 생명의 시작이자 생명의 밑바탕을 이루는 곳이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처해있을때라도 항상위로 받을수 있는 푸근한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깊은 사연, 말못할 사연, 고운정 미운정, 한이 엉켜 있는 고향, 그렇기 때문에 고향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고 눈언저리가 따가워짐을 느끼는 것 같다.

내 고향 고창은 이렇듯 나에겐 정감어린 곳이기도 하지만 역사와 전통으로 의미 깊은 고장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산맥줄기가 서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어내려 오다 우뚝 멈춰선 방장산 아래 맷방석처럼 평평한 야산지대에 안겨있는 고창은 산이 있고 강이 흐르는데다 바다를 안고 있는 지역조건으로 일찍부터 문물이 발달했으며 옛 성곽인 모양성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고창읍성은 총길이 1천6백80미터로 1965년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모양산성이라고 부르는 이 읍성은 방장산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위의 완만한 곡간을 두른 원형으로 동, 서, 북쪽에 각각 문이 설치되있다.



내고향 고창은 또한 임진왜란, 동학혁명때에는 병이 크게 일어나고 일제때도 대일항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등 의자신의를 중히 여기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고향 고창에도 어느덧 도시화 산업화의 피할수 없는 시대적 물결이 밀려들어 요즘에는 어린시절의 그 풋풋한 정과 낭만이 점차 퇴색되어가는 것만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요새 고향을 생각하며 느끼는 그리움을 안타까움과 겹쳐 한층 더 나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곤 한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땅의 순리를 믿고 살아가던 순박한 고향 사람들. 그들은 이제 하나 둘 고향을 떠나고 낯선 타향에서 새로운 삶의 둥지를 시험하며 살아가고 고향은 버림받은 늙은 아내처럼 묵묵히 그마른 가슴을 안고 옛추억을 기릴뿐이다. 기껏해야 자연적 재해만이 큰 위협으로 다가왔던 꿈과 희망을 버팀목으로 삼으면서 열심히 살았던 농민들이 당장 닥칠 외국쌀 수입이다 뭐다해서 또다른 문명의 인위적 재해 앞에서 황당해 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속에 사랑하는 고향의 향기. 어머니의 정내음이 묻어나는 것 같다.

풍요한 결실을 앞둔 이 계절, 산천은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문득 떠오르는 옛 시인의 시귀에 비쳐진 허무함과 사랑이라는 일므의 꽃을 피울 것이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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