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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대가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인 만정 김소희는 지병인 간암으로 서울 소격동 자택에서 다소 쓸쓸하게 보내다가 95년 78세의 나이로 이 세상과 하직했다. ‘달밤의 기러기 울음소리’를 남겨두고, 쪽진 모리에 옥비녀와 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로 관객을 울리고 웃긴 고인의 판소리는 구성진 가락과 풍부한 방울 목으로 유명했다.
한평생 소리꾼으로서의 외길을 걸어 무소불통 빛나는 예술 혼을 불태웠던 만정 김소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10주기를 맞이하여 예술 혼을 되돌아보고 그의 삶과 소리인생을 통해 판소리를 예술적으로 체험하여 판소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고창판소리박물관 다목적실에서는 지난 15일부터 오는 7월 31일까지 106일간의 기획소전을 전시한다.
김소희 선생의 출생 및 유품과 판소리에 입문했을 때의 자료와 스승들에 대한 자료, 대형 실사사진, 김소희 소리의 계보 및 음반, 김소희 판소리의 특징, 활동사진들, 영결식 테잎과 김소희 묘소의 대형사진과 축음기 진공관식전축 등을 실연해 놓았다.
국악계의 사표(師表)이며, 국창(國唱)으로 불리운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본명 : 김순옥)는 1917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5번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순하고 살결이 백옥같다는 뜻의 순옥이었고, 아명은 돌림자를 딴 옥희였다.
고향인 흥덕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후 김소희는 광주로 시집가 살던 언니에게로 가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굘르 다녔다. 이때 광주에 내려온 이화중선 일행의 공연을 보게 된 어린 소녀는 이화중선의 소리에 이끌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협률사 공연을 보러 다녔고, 결국은 심청가의 눈대목이라 할 수 있는 ‘추월만정’을 그럴듯하게 흉내 낼 정도로 소리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 체험은 일시적인 의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영구적인 의식의 변환을 가져왔으며 판소리 세계에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렸고, 대명창이 되었다.
김소희의 유품은 무대의상, 무대용 꽃신, 대 부채,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증서 사본(춘향가,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사본,1973년), 금관 문화훈장, 제 1회 방일영 국악 상패, 친필 서예 유묵 대련 족자, 춘향가 취입 후 기념촬영 사진, 가야금 연주 사진은 딸 박윤초씨가 기증했고, 비녀(칠보)와 달비는 제자 이명희씨가 기증했다.
김소희는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거문고로 유명한 시대의 율객 박석기를 만나 이들 사이에 박윤초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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