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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10주기 만정 김소희 선생을 되돌아보며..

“생가와 산소에 관심 어린 눈길이 필요 ”

2005년 05월 26일(목) 17:45 [(주)고창신문]

 

 

판소리는 우리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제2차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우리 고창은 판소리의 본향답게 동리 신재효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판소리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판소리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며, 지난 28일에는 전문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되기도 했다.

 

또, 올해는 만정 김소희선생의 추모 10주년이 되기도 하여 판소리 학술대회는 물론 각종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고 판소리박물관에서는 '명창 만정 김소희의 삶과 예술전'이라는 기획전도 열리고 있어 만정 김소희선생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행사라 여겨진다.

 

만정 김소희선생의 본명은 순옥, 아호는 만정(晩汀). 평생을 소리꾼으로 살았던 전형적인 국악인으로 정통 판소리 보존에 앞장섰다.

 

한을 안으로 삭혀낸 고고함의 정수였던 그녀의 소리는 어느 한순간에도 넘치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절제된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광주에서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3세의 김소희를 소리꾼으로 만든 것은 당대의 명창 이화중선이 부르는 〈심청가〉중 '추월만정'이었다.

 

그녀는 국창 송만갑의 문하로 들어가 〈심청가〉.〈흥보가〉를 배웠으며, 17세에는 정정열․박동실 명창을 사사하면서〈춘향가〉와 〈수궁가〉를, 김계문에게 향제 가곡을, 이승환에게 거문고를, 강태홍,김윤덕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동편제와 서편제를 대표하는 스승들로부터 배운 '소리'에다 거문고와 살풀이춤까지 배운 그녀는 말 그대로 사통팔달한 예인으로서 한평생을 올곧게 살아냈다. 1936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빅터레코드사에 전속되어 음반을 내기도 했으며, 1964년 12월에 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명창 박윤초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특히 후진 양성에 많은 정성을 쏟아, 1945년에는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하는 한편 신영희,안숙선,이명희,박소영 등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1972년 국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 무대에서 판소리를 열창함으로써 그곳의 비평가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김소희는 뮌헨 올림픽 대회 참가공연, 유럽 순회공연 등을 통해 일찍부터 세계에 한국 판소리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1994년 '국악의 해' 기념 국악제를 지휘하기도 한 김소희는 숨을 거두기 얼마 전 "광대는 대중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기생은 자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광대와 기생이 다른 점이다"라고 말해 철저한 예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2년 한국 국악대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숨을 거두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후학들은 국립국악원 박물관에 만정기념실을 설치했다.

 

이렇게 만정 김소희선생은 판소리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를 했으며, 후진양성에도 많은 정성을 쏟아 판소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이러한 훌륭하고 멋진 분의 고향인 고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부심을 느껴야 하며, 그분들이 남기고 가신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보호해야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흥덕면 사포리 335번지에 복원된 만정 김소희선생의 생가는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묘소를 찾아가는 길목에는 표지판 하나 세워 두질 않아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물어서 찾아가기도 힘들 정도다. 

 

혹여 찾아갔다 한들 새파랗게 잔디가 돋아난 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묘 위에 시커멓게 씌워진 천막 때문에 고인을 위해 찾아간 추모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천막을 씌운 이유는 토질이 좋지 않아 비가 올 때면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씌워놓았다고는 하지만 고인에 대한 예우와 찾아오는 추모객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가령 잔디를 더 심는 다든가 주위에 꽃나무나 나무를 심는 것이 천막을 씌우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고인의 묘소에 검은 천막이 아닌 새파란 잔디가 돋은 모습을 보고싶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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