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10만평의 고구마 재배면적은 이상수, 남숙재부부의 애환이 담긴 결실의 땅이다.
26년 전 분가하여 나락 한 섬을 갖고 나와 초가집을 얻어 생계를 꾸려나가려 했지만 그때 당시에도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 대우를 받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 ‘사회’라고 깨닫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속된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이상수씨는 “가을이 되면 낮에는 경운기로 타작을 하고 밤에는 로터리를 쳐 논보리를 갈고 새벽 4시에 들녘에 나가 밤 10시가 되서야 기름통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며 젊은 날 흘렸던 눈물들이 이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힘든 나날의 반복 속에 이상수씨는 부인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잖소, 우리 늙어서 힘없이 사느니 노후를 기약하며 지금 고생합시다”라는 말을 전하며 이상수씨와 부인은 서로를 부여잡고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부인인 남숙재씨는 아들 셋을 들쳐 업고 땅콩을 따고 행여나 도둑 맡을까 가을 밤 찬 서리 맞아가며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이제나 저제나 올 남편을 기다렸고, 밤새도록 일하는 남편이 행여나 잠이 올까 남숙재씨는 들녘에 함께 나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운 때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었던 것 같다고 그녀는 전했다.
이상수씨는 이 같은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땀과 눈물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었고 항상 소외된 이웃에게 마음을 쓰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는 등 그는 마을 이장직은 물론 성송농협 이사, 소방대장을 역임, 이제는 기반이 잡혀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상의 영광을 관내 기관장과 정남진조합장, 송하현면장, 김광옥군지부장 등에게 돌리며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초심을 잃지 않는 생활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갈산농장
위치: 전북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 455번지, 전화 : 063)563-1519
황규관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