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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835년경 김권삼(김종대씨의 조부)씨께서 한씨 집안에서 지윤도와 함께 제작 기술을 전수 받았고 이후 김정의(김종대씨 백부)씨 에게 전해졌고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난 김종대씨가 1962년서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 윤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김종대씨의 아들 김희수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4대째 윤도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김종대씨는 “우리나라에서 윤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옛날 백부님이 만드는 패철을 어깨 너머로 배웠었는데 백부님이 돌아가실 때 '이 일을 본업으로 삼지 말고 가업으로 이어가라'는 유언을 지킨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했다.
전국각지에서 그의 패철을 원하지만 특히 경상도에서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예전엔 별자리 연구나 절기(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요즘엔 거의 지관들이 많이 찾는다”며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수작업으로 하는 일이라 물량을 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윤도는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지남성의 바늘(자침) 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여행객의 길을 인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풍수지남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말부터 윤도라는 풍수나침반이 발달하였고 풍수가나 지관들에게 중요한 기구로 쓰였으며, 15세기경 부터는 항해자나 여행자들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전통나침반이 사양길을 걷게 된 것을 6.25를 거치면서 미제군용 나침반이 밀려들면서 부터 전통나침반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나, 흥덕 패철의 전통을 믿는 지관 및 풍수가들이 꾸준히 찾고 있어 전량 주문제작만 하고 있으며 일년에 약30∼40개의 나침반을 만든다.
나침반의 종류에는 부채 끝에 매달아 장식품과 나침반 역할을 하는 선추, 거울과 나침반의 기능을 조합한 명경철, 지관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전통패철, 거북패철 등이 있으며, 나침반의 재료는 2~300년 이상 된 대추나무를 둥글게 잘라 쪄서 그늘에 건조시켜 만든다.
김종대씨의 윤도는 공예품을 넘어 예술품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지도 모른다.
큰 손에서 음각 또는 양각되는 용이며 사슴이며 기와, 새들 문양은 서양의 나침반과 비교할 수도 없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가장 세밀한 작업을 요하고 경탄을 금치 못하는 작업은 음각 되어지는 글자다.
방향을 가리키는 글자들은 그가 하나하나 조각을 해내는데 그 숫자가 수 천개나 된다고 하니 들인 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칫 획이 비뚤어지면 며칠간의 고생은 허사가 된다. 특히 그림과는 달리 글씨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한글자만 잘못 써도 그간 공들였던 시간들은 허사로 돌아간다”며 “이 일을 할 때는 잡념을 다 털어 내고 오로지 손끝에다만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는 김종대씨.
정성 들여 파내는 글자 한 획 한 획이 힘 있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윤도는 역사적 생명력을 가진 섬세함의 모든 것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윤도의 전통이 한해 더해갈수록 윤도장 김종대씨의 세월도 함께 흘러간다.
전통을 이어가기란 어느 한사람의 희생이 없고서는 지켜지기 힘든 우리의 것이라 하겠다.
김택종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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