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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오거리당산제는 향토 민속놀이답게 다양한 요소가 구성돼 있으며 전통성과 예술성이 높은 놀이라는 평이 나왔다.
또 지역의 문화단체인 고창문화원이 구심점이 되어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전승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어 모범이 되고 있다고 대회 관계자는 전했다.
고창문화원장이자 고창오거리당산제대표인 이기화원장은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향토 민속놀이를 발굴해 전승 보전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전했다.
고창오거리당산제의 시나리오와 소품을 제작하는 등 전체적인 연출은 설태종(53)씨가 맡았다.
그는 교직에 몸닫고 있던 20여년전부터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오거리당산제를 재현해왔던 그는 전북민속예술경연대회를 앞두고 시나리오를 다시 짜고 소품을 제작하는 등 오거리당산제 재현을 총 지휘·감독·연출했다.
설씨는 “당산제를 재현한 것은 생활속에 젖어있는 향토문화였기 때문이다”라며 “고창오거리당산제는 전통성과 예술성도 높이 평가받았지만 132명이나 되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호평을 얻었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고창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설태종씨.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라 생각하고 참가했고, 안으로는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밖으로는 관광상품화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고창 오거리 당산의 유래
고창오거리 당산은 고창읍의 동.서.남.북.중앙의 5방에 세워진 미륵 돌기둥으로 된 수호신적 화표로서 1969년 12월 6일에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신앙의 표적으로서 의미도 있거니와 전국에서 유일한 가족 당산 형태로 된 고을의 풍수적이 집단 신앙적 화표로서 더욱 유명하다.
그 유래를 보면 오랜 옛날부터 고창고을의 풍수학적인 0를 메꾸기 위해 5방에 세운 자연신체의 당산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조선후기 정조년간(1790년대)에 전라도 일대에 물난리를 크게 만나 이로 인해 엄청난 질병의 화를 입게 되었는데 질환에 내몰린 주민들이 피막에서 질펀하게 시달림을 겪었다가 환역(患疫)후에 이를 재빨리 수습하라는 어명이 내리자 화주(化主)를 자청한 고을 아전들이 민심수습을 위해 고을의 허한 수구막(水口幕)을 보완하고자 중거리.중앙.하거리의 저지대 당산을 거창한 역사의 인공신체로 1803년에 완성해 냈다.
이른바 고창읍의 고을 풍수가 행주형국(行舟刑局)으로서 파도를 타고 있는 출렁이는 배의 모습이 되고 있어 고을의 허기를 메우기 위한 입석신체(立石神体)를 세운 것이다. 이들 새로 세운 3기의 미륵 석주를 동신체로 한 당산은 모두 머리에 원형과 사각으로 된 갓을 쓰고 서 있다. 동쪽의 상거리와 북쪽의 교촌당산은 지대가 높아 침수지역이 아니지만 중거리.중앙 하거리는 지대가 낮아 자칫 수침의 우려가 있어 이 세 곳의 당산은 더욱 우뚝하게 정성이 가중되어야 함으로 크게 공들여 다듬어낸 미륵석주의 신체를 모신 것이다. 고창오거리당산은 당 집이 없고 상거리와 교촌은 자연신체 입석당산으로 세워져 있으며 중앙과 중거리, 하거리 당은 인공신체로 잘 다듬어 진 삿갓 당산으로서 당의 표시로 탑신형의 화강석 화표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을 형상시키는 등 음양에 맞게 배치되어 민속공예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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