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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돼지의 해가 밝았다. 지난해 쌍춘년은 가고 600년만에 ‘황금돼지 해’가 돌아왔다고 아우성인걸 보면 돼지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임에는 변함이 없다.
돼지만큼 상반된 대접을 받는 동물도 없어 보인다. 먼저 돼지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복권이나 큰 재물을 얻었을 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돼지꿈 얘기가 있다. 여기에다 개업하거나 발전을 비는 자리에 여지없이 올라가 있는 빙그레 웃는 돼지머리가 또한 그러하다.
이만큼 돼지는 언제인지부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생각 저 깊숙한 곳에 다산(多産)과 다복(多福) 그리고 큰 재물을 상징하는 복스러운 동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탐욕스럽고 게으르며 깨끗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도 사람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린다.
그러나 돼지는 전혀 탐욕스럽지도 더럽고 게으르지도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83년부터 돼지와 동고동락해온 정원환(51) 대표가 바로 그다.
정원환 대표는 “돼지처럼 깨끗하고 모성애가 강한 동물도 없다”고 설명하며 “돼지는 한번 용변 본 자리를 절대 잊지 않으며 자기가 먹을 만큼 만 먹는 영리한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또, “새끼 돼지의 가는 이빨이 어미의 젖을 갈라지게 해도 그 고통을 참아가며 새끼들을 위해 희생한다”며 “돼지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더럽고 게으른 동물”이라는 주장을 일축했고 돼지에 대한 찬사와 존경심을 나타냈다.
정 대표는 대산면 칠거리에서 돼지 1만여 두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처음 새끼돼지 8마리를 시작으로 50두, 100두, 300두로 늘려나갔다. 직접 용접기술을 배워 축사시설을 만들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부인 채순자(51)여사와 함께 10년 만에 3천두로 키워냈다. 돼지 3천두라면 양돈업계에서는 일차적으로 안정을 이룬 셈이라고 한다. 두 부부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대산양돈이 오늘날 국내 최고의 양돈업체가 되기까지는 큰 전환점이 있었다.
지난 1994년 농수산부에서 전국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뽑은 유럽 축산농가 견학단에 전라북도 대표 두 회사 가운데 하나로 선발되어 네덜란드로 선진지 견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정 대표는 축사 시설을 눈 여겨 보았고 사료와 돈분을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과 창문 없이 만들어진 ‘무창돈사’를 도입해 한국형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인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그 후 4년간을 쉬지 않고 달렸고 드디어 2000년도에 현재의 한국형 무창돈사를 완성하게 되었고 현재 전 축사가 무창돈사로 되어 있는 곳은 대산양돈 한 곳 뿐이다.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1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야 했고 정 대표의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이 그를 빛나게 했으며 부인 채순자 여사의 지지와 뒷받침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과를 예측하기란 힘들었다.
성공의 그림자 뒤엔 좌절과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정 대표라고 어찌 쓰디쓴 좌절과 실패의 잔을 마셔보질 않았겠는가.
수박농사의 실패로 빚을 지게 되었고 어렵사리 양돈을 시작한 후 막내 아이가 스크랩터라는 축사 기계에 다쳐 세 손가락을 잃었을 때 정 대표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2003년 퇴비처리장의 돈분을 나눠 주는 장비인 ‘세퍼레이트’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점검을 하려고 손을 넣던 중 손가락이 딸려가 네 손가락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그를 붙잡아준 아내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후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고 그들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 까 정 대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여러 차례 전달했으며 복지시설 등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곳에서 돼지를 요청할 때면 흔쾌히 보내주었고 돼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전달, 더불어 사는 사회구현에 앞장서 심지어는 ‘yes man’이란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자신이 힘들어 진다”며 “소유욕을 떨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모든 걸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세상엔 소유가 최대의 행복인 것 같지만 나눔의 기쁨을 알면 더 큰 행복을 맛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인생은 저수지와 같아서 물이 넘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해야 한단다. 돼지도 딱 1만마리 정도만 사육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서양에선 제물로 쓰는 가장 비천한 동물이 양이지만 동양에서는 돼지라며 밑바닥의 근원이 되고 있는 돼지를 키우는 것에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며 행운과 부를 주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는 돼지에게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돼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고마움이 깊어서 일까 정 대표는 이 세상을 떠나는 돼지의 영혼을 애도하기 위해 머지않아 ‘돈혼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돼지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동물에 지나지 않는 돼지에게 경이로움을 표하고 있는 정 대표의 행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돼지와의 인연은 우연히 맺었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돼지는 나의 운명이자 숙명이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돼지와의 연(緣)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황금 돼지해에 그의 소망은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돼지를 키우지도, 국화를 심지 않았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위하여 심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로지 많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함이고 그로인해 고창군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외로울수록 더 빛이 난다”고 그는 말했다. 돼지를 키우면서 얻은 돈분으로 국화를 심었고 국화를 이용하여 여러 가공제품을 생산했으며 국화포크를 만들기 위해 개발 중에 있다. 자신의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된 삶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고창을 위해 그는 어김없이 돼지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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