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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동의로 되살아난 검열거부-정남기(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유신정권이 몰락하자 깊은 수렁에 빠졌던 언론계에 재기의 바람이 일었다. 기자협회는 연일 계속되는 행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980년 늦은 봄까지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자 기자협회는 이에 대응하는 전열을 갖추어 나갔다. 기대와 열망을 안고 출범한 기자협회와 분회 조직은 유신시절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5월 16일 오후 우리는 기자협회 회의실에 집결했다. 이날 모임은 기자협회 집행부와 시도지부장 그리고 각사 분회장이 모두 참석

2007년 02월 28일(수) 17:31 [(주)고창신문]

 

 

유신정권이 몰락하자 깊은 수렁에 빠졌던 언론계에 재기의 바람이 일었다. 기자협회는 연일 계속되는 행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980년 늦은 봄까지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자 기자협회는 이에 대응하는 전열을 갖추어 나갔다. 기대와 열망을 안고 출범한 기자협회와 분회 조직은 유신시절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5월 16일 오후 우리는 기자협회 회의실에 집결했다. 이날 모임은 기자협회 집행부와 시도지부장 그리고 각사 분회장이 모두 참석하는 연석회의였다. 물론 1975년 동아·조선사태 이후 거리로 쫓겨난 동아·조선 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도 참석했다. 기자협회로서는 신군부의 집권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거리로 쫓겨나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정면대결의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다. 사회봉을 잡은 김태홍 기자협회장이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개회선언 직후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계약과 언론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김회장은 유신시절 수없이 보아온 기자들의 변절을 반서하고 오늘로 방관자적 태도를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우리의 마지막 카드인 계엄군에 대한 기사검열 거부였다. 기자들이 신문대장을 들고 서울시청으로 달려가 군인들의 가위질을 지켜보는 치욕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1960년 이후 정치군인들이 걸핏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기자들을 노예로 부려온 못된 버릇을 이번 기회에 고쳐줘야 한다는 결의가 기자들 사이에 불꽃처럼 번졌다. 김 회장은 전국의 모든 기자협회 회원들이 하나로 뭉쳐 5월 20일부터 신문 통신 방송 제작을 거부하는 행동에 돌입하자고 호소하는 말로 마무리했다. 회의장 분위기는 갑자기 얼어붙은 듯 싸늘하게 식었다. 극소수의 참석자들은 오늘의 사태를 예상한 눈치였지만 많은 기자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중대사안과 맞닥뜨리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김 회장의 설명을 잘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장 결론을 내리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느꼈다. 참석자 모두가 선뜻 찬반의견을 드러내기가 난감하여 눈치만 살폈다. 기협 집행부 몇 명이 참기 어려웠는지 피를 토하듯 지지발언을 했고 곧 이어서 누군가 목소리를 낮추어 냉정을 잃지 말자고 호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때로는 침묵이 흐르고 때로는 고성이 오갔다. 나이가 지긋한 선배 한분은 동아·조선 투위의 힘겨운 투쟁을 소개하며 기자가 현장을 떠나면 힘이 빠져서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없으니 제작에 참여하면서 싸우는 게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집요하게 펼쳤다. 참석자들은 토론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결론을 내리기엔 시간과 정보가 부족함을 절감했다. 우리는 쫓기듯 표결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반대였다. 찬성보다 반대표가 많아서 부결된 것이다. 검열거부 의안을 주도한 기협 집행부와 투쟁의지를 불태우던 기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부표를 던진 기자들도 뜻밖의 결과에 당황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사마다 정문에 우뚝 선 탱크와 집총한 군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오늘의 표결 결과가 오욕의 시간을 연장하려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회의장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태홍 회장은 피로에 지친 듯 국면을 진정시키고 4시간에 걸친 마라톤회의를 끝내려했다. 모든 회의 참석자들도 폐회가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일어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회의를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약간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장을 향해 소리쳤다. 부결로 처리된 신군부의 검열거부 안건을 다시 상정하여 재론하자는 번안동의안을 제안했다. 일순간 회의장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가려던 참석자들은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며 주저앉았다. 김태홍 의장은 기다렸다는 듯 번안동의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희한하게도 검열 거부안은 재 상정 되었고 다시 토의가 시작됐다. 나는 번안동의의 취지와 성립요건을 설명하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회의진행상의 의견을 개진했다. 번안동의에 필요한 요건으로는 1차 표결 때와 현재의 회의정족수 차이, 토론과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신군부의 정체에 대한 정보부족, 검열과 제작거부에 대한 준비부족 등을 지적했다. 번안동의라는 생소한 단어에 일부는 기가 질린 듯 말문을 닫았고 줄곧 근엄한 자세로 부결을 이끌어냈던 분들도 1차토론 때보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와 자유언론을 수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이날 기자협회 확대간부회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자들의 참된 용기와 기백을 만천하에 드러낼 두 번째 순간을 맞았다. 드디어 검열거부 안건은 재표결에 부쳐졌고 이번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표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가끔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가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의 만면에는 희색이 번졌고 그 사이사이로 두려움이 묻어나는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김태홍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검열·제작거부 의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이로써 전국의 모든 기자협회 회원은 5월 20일 0시부터 군 당국의 기사검열을 전면 보이콧하는 것은 물론 신문 통신 방송 등 모든 매체의 제작에도 불참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신군부 세력에 대하여 처음이자 공식적으로 내놓은 선전포고였다. 총칼에 대한 펜의 항전이 시작되었다. 이는 이 나랑 역사에 가장 빛나는 기자들의 총파업이었다. 그날 밤 기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둠이 깔린 태평로 거리를 걸었다. 몇 명은 무리지어 태평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불안과 초조감을 달래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내일부터 벌어질 신군부의 역습과 발악을 떠올리며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튿날인 5월 17일부터 전국의 신문 통신 방송 등 모든 언론사 분회가 긴급 기자총회를 열고 기자협회의 결의를 추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회사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합동통신의 경우 밤을 새어가며 토론을 진행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수 기자들이 귀가한 후 새벽에야 표결에 부쳐져 가까스로 기사검열과 통신제작을 거부하기로 한 기자협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의할 수가 있었다. 기자협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신군부가 예감한대로 구경만하고 있지 않았다. 기자협회 간부들이 하나둘씩 수감되었다. 붙들려간 간부들은 혹독한 고문 끝에 팔자에도 없는 옥살이를 시작했다. 김태홍 회장은 다행히 어디론가 사라졌고 여러 사람이 군경합동수사팀의 협박과 공갈에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나는 남달리 겁이 많아서 몸을 움츠리고 평소대로 회사에 출근하면서 20일부터 검열·제작거부 투쟁을 독려했다. 합동통신은 기자협회 결정을 어김없이 이행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의 사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답했다. 기자협회 집행부가 초토화된 이후로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알려주는 사령탑이 없어 각사가 알아서 원래 계획한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제작을 거부하며 투쟁대열에 참여하는 기자들의 괴로움과 분노가 광주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단계씩 치솟았다. 광주에서 벌어진 유혈참상을 즉시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간부들과 일부기자들이 군의 검열을 받아가며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아픔도 컸다. 나는 동양통신의 김영진 분회장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보조를 맞추자고 굳게 약속했다. 경쟁관계에 있던 두개 통신사 중에서 하나만 정상적으로 발행되며 우리의 투쟁은 그만큼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이 캄캄한 하루하루가 투쟁의 열기에 휩싸여 저물어간다. 사흘째 되던 날인가 나는 경향신문사를 찾아가 김충환 분회장을 만났다. 경향신문이 어김없이 거부투쟁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몇몇 언론사를 돌아보고 전국 기자들이 신군부의 야만적 탄압에 맞서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우리의 투쟁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시민군이 장악하고 있던 광주가 다시 계엄군에 함락되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수많은 광주 시민이 계엄군의 총격에 쓰러졌다. 우리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울면서 백기를 들었다. 우리가 벌였던 일주일간의 짧은 항쟁의 막은 내렸다. 그러나 기자들의 투혼은 언론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우리는 서로를 위안했다. 광주 민중항쟁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나는 고통스럽고 부끄럽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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