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화엄종주로 부각된 백파 긍선이라는 인물은 종교인이라는 특정신분이라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고창 무장에서 태어났고, 당시 그의 설법으로 입산 수도한 승려가 각처에서 운집하여 선문 중흥조라 부를 정도로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많았다. 그 법맥은 고창 선운사와 정읍 내장사, 장성 백양사, 해남 대흥사 등에 전법하였으며, 헌종 때는 설두스님과 노사 기정진 선생과 함께 친교를 맺을만큼 명성이 높았다. 당시 추사 선생은 백파 대종사를 높이 추앙하여 그 친필을 무수히 남겨 놓았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율사대기대용지비>의 비문이 제자들에 의해 대대로 구암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율사의 출가 본사인 선운사로 보내 백파율사비를 세웠다고 한다.
고창인의 자부심이기도 한 선운사와 함께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백파율사비를 보는 것은 관광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선운사 일주문에서 오른쪽 길로 50m 정도 들어가면 선운사 부도밭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 곳에 백파 율사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백파 긍선은 전주이씨 덕흥대원군 10대손으로 풍래군 번의 7대손이다. 1767년 공음면 예전리 시묘동에서 출생하였다. 18세에 선운사에 들어가 맹자를 읽으면서 불전을 탐독하다가 한 사람이 출가하여 한 가족이 왕생한다면 이보다 큰 효가 없으리라 생각하고는 부모를 설득하여 선운사 시헌을 스승으로 받들고 연곡에게서 계를 받아 스님이 되었다. 평안북도의 초산 용문동 용문암에서 안거 도중 심지가 열려 지리산 영원암의 설파를 찾아가 구족계를 받고, 순창 영귀산 구암사의 설봉에게 법통을 계승하니 서산대사의 8대 법손이 된다.
백파는 설파에게서 임제선의 도리와 화엄, 율까지 선수 받았으며 25세 되던 해에 스승 설파가 입적하자 초산 용문암에 머물며 설파를 추모한 후, 전북 남원 영귀산 구암사에서 설파의 손법자인 설봉회정의 법통을 이었다. 그리고 26세에 학도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45세에 문득 불법의 진실한 뜻이 문자에 있지 않음을 깨달아 가르치는 것을 철회하고 초산에 초막을 얽어 정혜쌍수에 힘을 썼다. 그리고 5년 후에 청도의 운문사에 법당을 세우고 선지를 강론하였고, 1830년 구암사로 옮겨 법우를 중창하고 법회를 열어 선문 중흥의 종주가 되었다.
그리고 백파는 출가한 뒤에도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생전에는 공궤를 게을리 아니하고 사후에는 정성을 드려 공양했으며 명당을 찾아 여러 번 이장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송계의 효를 기리기 위해 당대의 명사인 정조 부마 홍현주, 좌의정 홍석주, 판서 김이양, 그리고 노사 기정진 등에게 부탁하여 송계효행록을 꾸며 아버지의 효를 나타내는데 주력했다. 지금의 공음면 황산 아래 시묘동은 백파의 아버지 송계가 시묘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백파 긍선이 불교 참선수행자를 위해 지은 책《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은 1822년에 지은 것이지만, 현존본으로는 1860년에 지은 천마산 봉인사간본(奉印寺刊本)이 전하고 있다. 내용은 참선과 수행에 관한 것들로서, 언어도단(言語道斷)과 심행처멸(心行處滅)의 바른 눈으로 일체의 법(法)을 보면 일체가 그대로 정법(淨法)이요, 사(邪)된 눈으로 법을 보면 일체가 염법(染法)이 된다고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불선(儒佛仙) 3교를 통찰하여 볼 때, 유교는 유(有)를 숭상한 끝에 상견(常見)에 막히고, 도교는 무(無)를 중시하여 단견(斷見)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하였으며, 불교만이 유도 무도 아닌 중도(中道)를 나타낸 것으로, 한결같고 움직임이 없는 진여(眞如)의 경계를 체득할 수 있다는 불교우위론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유가 도가들을 위한 항목까지 마련하여 불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밝힘으로써 근기와 종파를 뛰어 넘는 일체 중생을 위한 보리 도량을 보여주었다. 책의 끝에는 <사중규승(社中規繩)>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동지들이 지켜야 할 일종의 계율로서 일곱 가지를 정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 선법을 계승, 후학들의 수행을 독려한 저술로서 고려 지눌(知訥)의《정혜결사문》과 함께 선가(禪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권 1책의 목판본으로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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