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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자는 떠날 수 있다” 라고 말해야할까. 신문이 나오고 난 후 잠시 동안 여유로움을 지닌 일행은 경상도를 답사할 때와 사뭇 다르게 즐거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득해서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있던 자리를 털고 떠나면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충만했다. 이번 호에는 전남 영산강·섬진강유역의 고인돌과 전북 고인돌을 살펴보자. 수계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고인돌문화를 비교해보고 분석해보자. -편집자 주-
전라남도 고인돌은 영산강 하류지역, 영산강 중류인 나주지역, 영산강 지류지역인 함평 ․ 화순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분포는 영산강을 따라 들어온 고인돌을 축조하던 집단이 나주 일대에 자리를 잡고 고인돌을 성행시켰으며, 그 후 일부 집단들이 점차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고인돌이 영산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전파되어 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물줄기로는 섬진강 유역권을 들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고인돌 문화권과 섬진강 유역의 고인돌 문화의 차이는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부장 유물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섬진강 유역에서는 많은 청동 유물이 나타나고 있어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영산강 유역의 고인돌에서는 타 지역에 비해 부장유물이 매우 빈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인돌의 대표적인 부장유물인 석검의 출토가 얼마 되지 않고, 또 석촉도 석실주변에서 수습되었을 뿐이다.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 중 부장유물로 발견된 석검은 영암 산호리, 광주 매월리에서 유병식석검이, 나주 회진리, 영암 영양리, 화순 대신리에서 발견되었다. 영암 지역에서 청동기제작과 관련된 용범과 세형동검, 동경 등 청동기가 출토되어 이 지역이 청동기 문화의 중심 지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드물지만 유물 가운데 삼각형석도, 유구석부 등 송국리토기 문화 요소가 나타나고 있어 이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송국리토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넓게는 함평, 영광, 고창 등지의 고인돌 문화도 역시 이 지역의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고창 역시 고인돌에서 부장품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문화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섬진강유역은 전남 동부지역에 해당되는데 산지가 발달한 지역으로서 평지는 곡간에 좁게 형성되어 있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 ․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곡성에서 전남지역으로 흘러들어 보성강을 합치고 경상남도와 도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간다. 동쪽은 백두대간에 의해 영남지역과 구분되며, 서쪽과 남쪽은 호남정맥에 의해 영산강유역 및 남해안지역과 구분된다. 섬진강유역의 고인돌은 보성강 중류지역에 뚜렷하게 중심분포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해안지역은 관산반도 ․ 고흥반도 ․ 여수반도에 각각 중심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비파형동검이 가장 많이 출토된 지역이며, 석검, 석촉을 비롯한 유물들도 많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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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서남단인 전라남도 중앙부에 위치한 화순 고인돌군은 영산강의 3대 지류인 지석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지석강에 화순천이 합류되는 곳에 자리한 이 곳 일대는 강변 충적평지가 세 갈래로 펼쳐져 있는 내륙 분지형 지형으로 넓은 충적 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지석강 유역의 선사 ․ 고대문화는 다른 지역에 비해 고인돌의 분포가 밀집되어 나타나고, 청동기문화의 발달과 토광묘의 성행, 그리고 고총 고분의 존재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후기로 나타나는 대곡리 적석목관묘에서는 청동기가 11점이 출토되었는데, 무기류 뿐만 아니라 의기류도 출토되어 이 지역을 다스리면서 제사와 정치를 주관한 통치자의 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을 잇는 고개 보검재는 예전부터 교통로의 역할을 해온 곳이라 교통로를 따라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징을 전라북도 고창에서 찾는다면 대산면 상금리 고인돌군을 들 수 있다. 이 지역 역시 장성으로 넘어가는 남쪽으로 영광군 대마면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장성군 삼계면과 접하고 있다. 이 지역은 표고 526.7m인 고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구릉 능선 남사면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은 낮은 구릉들이 이어지고 이 구릉들 사이에는 그리 넓지 않는 곡간평야가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의 입지는 주로 이러한 구릉사면이나 구릉능선에 위치하고 있어서 화순 지역의 고인돌군과 지리적인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교통로를 따라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는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화순고인돌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지역과 달리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산마을에서 보성재로 가는 길로부터 북쪽 50m 지점인 백초가등과 관청바위 등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고인돌은 괴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괴바위는 지형적으로 고양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괴바위 앞 100m 남쪽 성곡 마을 뒷산 즉 금성산 불무지 등에 있는 풍산 홍씨 선산이 쥐형국이라고 한다. 고양이와 쥐는 상극인데, 다행이 그 앞에 계곡물이 흐르니 괴바위인 고양이가 쥐를 향해 달려들지 못한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이 깃든 핑매바위는 마고할매가 운주골에 천불천탑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치마에다 돌을 싸가지고 가는데 닭이 울어 돌을 내려놓았는데, 그 중 하나를 마고할머니가 발길로 차버려 그 자리에 놓인 것이 지금의 ‘핑매바위’라고 한다. 이 ‘핑매바위’ 위에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XX구멍’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왼손으로 돌을 던져서 구멍 안에 돌이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들어가지 않으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또한 처녀와 총각들이 왼손으로 돌을 던져서 보지구멍에 돌이 들어가면 그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는데, 돌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해에 결혼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인돌과 함께 한 역사는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구술문화를 형성하였다. 이것은 고인돌을 단순한 돌로서 인식하지 않고 삶의 한 단편으로 인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신성한 돌로 인식시켜 구체적인 삶의 염원을 표현했다는 것을 화순 고인돌에서 볼 수 있었다.

나주시 신포리 고인돌은 영산강 중류지역인 저평한 구릉지대에 솟은 봉의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이 봉의산 주변에는 4 개의 지역에 95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 중 기념물로 지정된 신포리 내동마을 남쪽에 있는 고인돌군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곳에 위치한 고인돌은 대부분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2열로 나타나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인돌은 이 고인돌군을 대표하는 고인돌임을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소군집으로 나타나는 고인돌군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인돌을 중심으로 구릉의 방향으로 2열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일대의 고인돌 역시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35-2번지 고인돌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전북 지역은 북쪽의 금강과 동쪽의 백두대간이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전북 지역은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린 호남정맥을 경계로, 동쪽은 높은 산지로 이루어진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서쪽은 변산반도와 선운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해발고도 100m 이하인 충적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전북의 동부 지역인 동부 산악 지역에 고인돌은 대부분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일정한 범위 안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고인돌은 군집수에 따라 미라미드형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공간적으로 위계적 조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인돌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과 함께 묘역식이라는 기존의 고인돌 형식과는 다른 구조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되어 전북 서부 지역과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라북도에서 나타나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가운데 묘역식 고인돌 문화는 송국리형 주거지의 한 분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용담댐에서 다수 발견되는 묘역식 고인돌은 송국리형 주거지의 한 형태에서 나타나는 묘역식 고인돌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진안 용담댐의 문화는 보성강과 섬진강 일대의 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진안 안천면 일대의 고인돌 유적은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지금의 구곡 마을은 용담댐으로 수몰된 지역이며, 구곡마을이 이주해 새로 마을을 조성하고, 망향의 동산을 건립해 그 곳에 고인돌을 복원해 놓았다.
구곡 고인돌유적은 2기의 상석이 지표상에서 확인되었으나 조사과정에서 10기가 확인조사되었다. 매장주체부의 축조에 판석을 주로 이용하는 것과 개석이 있는 소형의 석관형이 있다. 유물은 적석 사이에서 붉은간토기편, 송국리식 무문토기, 돌도끼, 반월모양돌칼, 돌살촉 등과 유구 주위에서 무문토기편, 갈돌,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전북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구곡마을)
구암리 고인돌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의 덮개돌은 거북이 등처럼 가운데가 솟은 모양이나 전체적으로 타원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덮개돌은 남북방향으로 놓여져 있으며, 규모는 길이 640cm, 폭 450cm, 두께 80cm이다. 덮개돌 아래로는 8매의 받침돌이 고여져 있고 받침돌의 규모는 길이 70~100cm, 폭 30~76cm이다. 10기의 고인돌 중 가장 큰 고인돌의 모습은 역시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 고인돌이 소군집으로 나타날 때, 다른 고인돌과 비교했을 때 가장 위쪽에 자리한 고인돌은 동물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굄돌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부안 고인돌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는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그 노을과 사람이 어우러져 여름밤을 수놓고 있었다. 길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잦아들고 있었지만, 길 따라 가면 그 목적지에 다다르듯이 인생의 길도 앞서간 사람들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길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길을 떠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미일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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