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22 | 05:53 오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뉴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뭍의 그리움은 제주 섬 구릉 위에 고인돌을 세우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고인돌의 중요성 재조명 ⑥

또 하나의 섬 제주 그리고 고인돌

2007년 09월 18일(화) 10:29 [(주)고창신문]

 



제주도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더위는 한결 순해져서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것 같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태풍이 조만간에 올라온다고 해도 그동안 비를 피해 다닌 행운을 우리는 굳게 믿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이른 아침 목포항으로 출발하였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그리움을 이제야 풀어낼 수 있다는 설레임은 배를 타면서 더욱 출렁였다. 배가 가는 동안 바다는 드넓고 고운 빛으로 흔들렸다.

난 아직도 바다 한 가운데에서 멀리 제주항이 바라보이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많은 사람들이 바람에 순응하면서 도달했을 저 섬. 그 제주섬이 보일 때 비로써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던 그들의 오랜 항해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나온 바닷길의 여정은 고달픈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바다와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힘겹게 찾아온 제주에서 저 뭍의 모든 인연을 가슴에 묻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삶의 절실함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들이 제주섬에 정착하면서 뿌리를 내린 흔적을 만나러 간다. 


제주도에서 조사된 고인돌의 숫자는 대략 200여기 정도 된다. 이보다 더 많은 숫자의 고인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주도의 돌은 대부분 깨지기 쉬운 현무암돌이라 이미 파손된 고인돌도 상당수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이 위치한 입지는 대체로 해발 100m 미만의 해안지역에 밀집되어 나타나는데, 제주시를 비롯하여 서북부와 서남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의 고인돌은 형식상 비탈면을 이용하여 매장시설의 일부가 지하에 존재하는 반지상형이 많다. 그리고 제주도의 고인돌을 형식상 위석식 고인돌로 분류하는데 이를 다시 제주도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주도는 바람이 많은 곳이라 고인돌 역시 무덤방을 너른 판석으로 두른 독특한 형식의 고인돌을 축조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 대표적인 고인돌의 모습이 용담동 일대의 고인돌이다.



다음은 제주대학교 사대부고 안에 위치한 고인돌의 모습이다. 고인돌 하부구조는 170cm 정도 되어 시신을 펴묻기 하기에 적정한 크기임을 알 수 있다. 본래는 7장의 넓은 판석으로 무덤방을 만들었으나 현재는 5장의 판석만이 남아 있다. 상석의 남서쪽은 지석을 만들지 않고 문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시신을 안치하고 문돌로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다른 지석과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문돌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돌이라 가장 먼저 유실되기도 한다.

우리가 제주도 고인돌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고인돌을 이야기 할 만큼 제주도 고인돌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정원이 남국을 온 듯 아름답게 꾸며놓은 집안에 위치하고 있다. 상석의 크기는 장축길이가 315cm 폭이 217cm, 두께가 105cm이다. 지석은 잘 다듬은 11장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석 11매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져 전형적인 위석식 고인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인돌은 1959년에 발굴 조사를 하였고, 그 때 당시 지표를 길이 160cm, 폭 100cm의 장방형 토광을 판 후 바닥에 자갈돌을 얇게 깐 다음, 토광테두리를 괴석으로 돌린 석곽이 조사되었다. 고인돌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은 적갈색토기편이다.


일행은 지난밤에 먹었던 옥돔과 돌돔의 환상적인 맛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는 인사로 아침을 시작하였다. 제주도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전날 밤의 만찬에 이어 싱싱하고 풍성한 해산물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고인돌 취재를 위해 우리는 제주도 해설사 좌동열 선생님께 안내를 부탁하였다. 선생님의 열정에 취재진 모두 감동하였고, 그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보다 쉽게 고인돌을 찾아 움직일 수 있었다.

외도동에 위치한 이 고인돌은 남쪽이 높고 북쪽은 낮은 경사를 이용하여 축조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낮은 북쪽은 판석을 이용하였고, 남쪽은 둥굴납작한 잡석과 깬돌을 이용해 굄돌로 조성하였다. 상석의 경사도는 어느 정도 수평을 유지하고 있으나 측면에서 보면 판석으로 지석을 만든 북쪽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부구조는 암반을 파서 시신을 매장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시신을 지상에 두고 상석 주위를 돌아가면서 판석으로 돌려 석실을 만들어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 와서 이 고인돌을 보게 된 것은 큰 행운이 아닌가 싶다. 취재진들은 좌동열 선생님의 안내로 애월읍 하귀리(관전동이라고도 한다)에 위치한 고인돌을 볼 수 있었다. 취재진들은 언덕에서 바닷속 고인돌의 형체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물때를 정확하게 맞춘 듯 찾아 온 우리는 그 고인돌을 보기 위해 바다로 향했다. 고인돌은 이 천년을 물 속에 잠겼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조금도 흩으러짐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건실함에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고인돌의 모습은 오랜 세월 물살로 인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이 고인돌 상석의 모습은 바닷속 동물 모양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는 사람마다 그 모습이 달리 보이는 것은 바닷물로 인한 작용 때문이다. 지금도 굄돌에서 밀려나지 않고 상석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고인돌 축조에 대한 비밀은 여전히 신비임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고인돌의 발견은 고인돌에 대한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감동은 충분히 느껴질 것이다. 고인돌 옆에는 제주도의 담수인 삼다수 샘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본다면 아마도 지금은 이곳이 바다이지만 그 당시는 이 지역이 해안가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평리 고인돌은 해안과는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상석의 모양은 네모꼴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이러한 고인돌의 상석은 제주도에서는 드문 경우라 독특한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 상석의 모습은 어떤 모형을 조각한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하나 들자면, 지석을 네모 반듯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충분히 상석 또한 네모꼴로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만들지 않고 어떤 모양을 거칠게 조각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네모꼴에 가까운 상석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3개의 판석으로 구성된 석실을 볼 수 있고, 한 부분의 문돌은 유실되었다. 이 고인돌에서는 적갈색토기파편 몇 점이 발견되었다.




신례리 고인돌은 신례리 롯데공장에서 동쪽으로 350m 되는 국도변에서 북쪽으로 5m 지점인 감귤과수원 돌담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고창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고인돌의 모습은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고, 이 고인돌 주변에서는 묘역식 고인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묘역식 고인돌이란 고인돌 주변에 돌을 깔아 묘역을 조성한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북제주군과 다른 고인돌의 문화가 남제주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문화는 서남해안권의 고인돌 문화와 상통하는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즉, 서남해안권의 고인돌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고인돌을 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인돌에서의 마지막 날 일기예보는 비를 예보하고 있었다. 일행은 마음이 급해서 아침 일찍 우도를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다. 잠깐 동안 배를 타는 것인데도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로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집에서는 비바람이 심하다고 걱정하는 전화가 계속해서 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바라보는 우도는 아름다웠다. 일행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취재기간 내내 한번도 분위기를 잡지 못했으니 해안가를 따라 자리 잡은 찻집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고 가자는 바램을 말하기도 하였다. 우도의 고인돌은 성산일출봉을 마주보는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다. 우도의 고인돌을 보는 순간 우리는 고인돌 주변에 벌초를 먼저 해야만 했다. 정성스럽게 고인돌 주변을 정리하고 사진촬영이 끝나자마자 비는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섭게 내리 부었다. 결국 우도의 아름다운 모래와 현무암의 조화로운 해안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는 서둘러 배를 타야만 했다. 우도에서의 분위기는 배 안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고인돌을 취재하면서 해안으로만 제주도를 2바퀴를 돌았고 내륙을 1번 횡단하였다. 여유있는 취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일정은 빠듯했다. 제주도에 있는 고인돌을 전부 볼 수는 없었지만 제주도 고인돌에 대한 오랜 그리움은 해갈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는 추자도에 다다를 때까지 출렁거렸다. 어지러워서 드러누워 뒤틀리는 속을 달래야만 했다. 추자도를 넘어선 후 갑판 위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세계 청소년 연합회 단체들의 춤판이 벌어진 것이다. 젊음과 기울어가는 여름밤의 열기가 바람과 함께 너울대고 있었다. 바라보는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밤배는 뭍을 향해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네티즌의견 0개가 있습니다.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 많이본 뉴스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 인식개선 공연..

봄의 기억, 길 위에 남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

과거를 품고 내일로, 신재효판소리박물관 재개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 예비후보자 현황..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유석영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유석영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