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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고인돌의 중요성 재조명 ⑦ -경기.충청.강원지역의 고인돌

- 강은 고인돌을 품고, 고인돌은 강을 지키며 ...

2007년 10월 05일(금) 09:07 [(주)고창신문]

 



 


 

국내 고인돌취재 마지막 지역은 경기 ․ 충청 ․ 강원지역이라 부담이 컸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거리를 횡단해야 하는 부담으로 해서 우리는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길이 멀다는 것은 먼 길만큼 그리움도 크다는 것이다. 두고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은 가는 거리만큼 깊다. 우리는 삶이 떠날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몇 번의 짐을 싸고 풀면서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풍요를 기대하면서 길을 떠난다.


강화지역의 고인돌은 대부분 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산 ․ 별립산 ․ 봉천산 등 주로 북쪽 지역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특히 고려산 일대를 중심으로 고인돌이 집중되어 있는데 부근리에 28기, 삼거리에 30기, 고천리에 20기, 오상리에 17기 등 95기가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강화지역의 고인돌 유적이 위치한 지세조건을 보면 평지에 있는 경우는 매우 적다. 이것은 해변가나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왔고,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돌을 산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부근리 고인돌 지역이다. 탁자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 고인돌 주변은 몇 년 전과 달리 잘 정비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가 고인돌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이 고인돌을 찾듯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고인돌이기도 하다. 그러한 잇점을 살려 주변환경을 깨끗하게 정비한 것은 무엇보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일행은 바로 오상리 고인돌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고인돌은 2000년에 선문대 고고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11기의 탁자식 고인돌의 덮개돌과 무덤방을 이룬 돌들이 발견되었다. 고인돌의 분포는 구릉의 끝 부분에 낙타 등처럼 생긴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 .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평면 형태는 모두 판석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방의 복원 결과 돌널 형태의 ‘ㅒ’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굄돌을 세울 때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쐐기돌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방의 바닥은 맨바닥이 많고 부분적으로 판석이나 활석이 깔려 있었다. 또한 고인돌의 주변에는 돌을 깔거나 쌓아 놓아 무덤방을 보호하도록 묘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출토 유물로 석기류는 간돌검, 화살촉, 달도끼, 반달돌칼, 갈판, 돌자귀 등 비교적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그리고 팽이형 토기 조각이 있다.


임진강을 따라 연천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참 낯설고 가슴이 아팠다. 바라보는 북녘은 고요했으며 땅이 갈라진 것도 아닌 연이은 땅이었고, 그 땅은 바로 그들과 우리들의 땅이었다. 자유로는 벌써 코스모스가, 메밀꽃이 간혹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9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임진강 유역의 경기도 연천지역에 대한 고인돌의 입지조건은 해발 고도 12.8m ~ 80m 범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물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수계로부터 유적의 입지를 분석한 결과 수직거리 분포는 평균 5.3m, 수평거리는 최소 28.7m, 최대 757m이며 평균 200m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에 위치하고 있는 학곡리 고인돌은 2002년 세종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본래 5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현무암의 아주 잘 생긴 고인돌 1기뿐이었다. 이 고인돌은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손질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윗면에는 정교하게 판 구멍이 있다고 하나 물이 고여 있어 일행은 볼 수 없었다. 이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무덤방 안에서 민무늬토기편이 발견되었고, 무덤방 주변에 깔아놓은 돌깔림 아래에서는 가락바퀴와 반달돌칼, 그리고 민무늬토기 조각, 흙그물추가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고인돌을 신성하게 생각했으며, 마을에 재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곳에서 굿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현재 고인돌이 위치한 이 집은 무당집이다.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덮개돌은 마름모꼴 모양으로 길이 550cm, 폭 480cm, 두께 66cm이다. 이 고인돌은 예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 곳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집안의 잡귀를 쫓는 굿도 여기서 행했다고 한다. 고인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연천 학곡리 고인돌과 함께 이 고인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면서 일행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춘천으로 향하면서 일행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고인돌이 위치한 곳을 찾지 못할 때에는 해가 기울어 더 이상 일을 진행시키지 못할 것이고, 그럼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순조롭기를 바랄 뿐이다. 재를 몇 번 넘으면서 우리는 강원도 춘천 땅에 진입하였다.




북한강유역의 지형적인 특성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침식분지의 분포를 들 수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북한강 본류와 최대의 지류인 소양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한 춘천분지이다. 춘천분지는 우두 ․ 천전 ․ 신매 ․ 중도 등 넓은 충적평야를 발달시켜 북한강 상류 유역에서 선사 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고인돌은 이와 같은 충적대지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춘천분지에서 나타나는 고인돌 유적 중 천전리 유적은 북한강 유역 중 최대 규모이다.

천전리 고인돌군은 일제강점기와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 후 현재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춘천시는 이 고인돌군을 정비하여 현재는 소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전리 고인돌 유적의 특징은 묘역식 고인돌이다. 전체적으로 장방형의 묘역이 일렬을 이루면서 순차적으로 조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전북 진안 용담댐 수몰지역의 여의곡 유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한 고인돌 묘역에 각각 2개의 매장시설을 갖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의 고인돌은 친연관계에 있는 피장자들의 합장무덤으로 보이는데, 대동강과 합류되는 재령강 유역에서도 확인되어 문화 전파를 이해할 수 있다.


참으로 많은 길을 달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난 일행은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숙소인 홍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홍천의 유명한 숯불 삼겹살을 먹으면서 삼겹살이 달콤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입에서 녹는 듯한 고기맛과 함께 매실주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여행에서 경험하는 것 중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것이다.




충북 제천의 청풍명월 길을 달려가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일행은 매료되었다. 산과 강의 어우러짐은 우리의 가는 발걸음을 계속해서 멈추게 하였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금성초등학교 내에 위치한 이고인돌 유적은 2001년 세종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이 고인돌은 개석식 고인돌로서 무덤방은 손질이 되지 않은 막돌을 쌓아서 만든 돌덧널 형태이며 바닥은 넙적한 돌을 깔아 놓았다. 무덤방 주변에는 작은 돌을 깔아 놓은 돌깔림이 찾아졌는데 이것은 무덤방의 보호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고인돌에서는 삼각만입형과 슴베가 긴 화살촉이 12점, 반달돌칼, 돌도끼, 간돌검 조각, 민무늬와 붉은간토기 조각 등이 발굴되었다. 또한 이 고인돌 유적 바로 앞에는 가장자리의 떼임질 자국이 뚜렷한 선돌이 1기 서 있다.




일행이 이 곳을 찾았을 때 충주시에서는 신니면 신청리 고인돌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었다. 이 고인돌에서는 다 수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고인돌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남북방향이고 주변에는 내천으로 흐르는 실개천이 있었다. 원래 이 곳에는 여자와 남자로 상징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나 여성 고인돌은 하천 공사할 때 유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고인돌은 남성 고인돌이라고 한다. 




취재 마지막 지역인 대전 비래동 고인돌 유적은 충남대 박물관이 1997년에 3기의 개석식 고인돌을 발굴조사하였다. 일행이 본 것은 계곡 비탈면에 위치한 2기의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에서는 다 수의 성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굴 조사 시에 무덤방을 만들기 위하여 잡석과 황갈색 찰흙을 사용하여 50~100cm 쯤 성토를 하면서 돌덧널을 축조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유물로는 비파형동검과 삼각만입석촉 5점, 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은 검끝이 약간 위로 한 채 출토되었으며,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길이가 짧다. 그리고 등대의 돌기가 보이지 않고, 슴베 아래 부준에는 홈이 파인 것이 특징이다.


국내 고인돌 취재를 모두 마친 일행은 묵직한 아랫배를 쓸어내리듯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웠다. 그리고 무사히 국내 취재를 끝낼 수 있었던 행운을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서쪽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우리의 가는 길을 붉게 물들이면서 빠르게 하강하고 있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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