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고향에 오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늘 푸근하고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어 “그래서 고향을 찾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주위를 둘려볼 겨를도 없이 많은 세파 속에서 살다가 고향에 내려 올 때면 마음 한쪽이 설레기도 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면 뭉클 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아닌 어릴 적 나로 돌아가는 원점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고창모양성보존회에서 모양장을 수상하셨습니다. 모양성 복원에 많은 도움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와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내 고향에 다소 도움이 되는 일, 쉽게 말해 심부름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자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각별한 애향심으로 공직에 계셨을 때 고향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앞장선 사업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간략하게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청와대 행정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잦았던 저는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녘에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라홍찬회장을 비롯한 모양성보존회 유지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오로지 모양성 복원과 보존에 대한 염원과 고향에 대한 열정 그리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야겠다는 굳은 의지 하나로 서울까지 올라오신 그 분들을 보고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화재관리국 책임자에게 복원예산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지만 모양성은 보존 차원에 아니라 복원하는 데 쓰일 예산을 만드는 것이어서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파급되는 문제도 있었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상황이었으나 적극적으로 종례방침을 바꾼 파격적인 방침으로 예산지원을 한 첫 번째 케이스가 되어버렸습니다.
▲군청사 신축에도 도움을 주셨다는데?
-그때당시 최충일 군수와 반기진 군의회 의장 및 의원 몇 분 오셔서 고창군 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행자부 최차관에게 “고창군 청사 곳곳에 비가 새고 군 의회장도 너무 낙후된 시설이어서 청사 신축을 하고 싶으나 고창군이 재정이 어려우니 재정을 지원해주자 했었습니다. 그때 만해도 특별교부금으로 군 청사 짓게 도와준 일례가 없었는데 고창군이 최초로 지원을 받았던 곳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밖에도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해결해주신 걸로 기억이 납니다만..
-정읍에서 고창 들어오는 4차선 도로를 개설 할 때도 결정적인 지원을 해준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 칠보에서 정읍까지만 오게 되어 있는 물을 건설부에 이야기해서 부안댐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 물을 먼저 해결했었습니다. 구시포항을 3종에서 2종항으로 만들었고 종무처에 있을 때 수산지도소 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은 기능대학이 경기도로 유치되는 것이 유력했었지만 고창으로 방향을 돌리게 만들었고 체육진흥원에 있을 때 공설운동장에 우레탄을 깔아주는 등 지금 생각해 보니 고향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다는 것에 대해서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향의 선·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고창모양성제 기간 중 고창모양성보존회에서 모양장이라는 상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마음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고창인이 되겠습니다. 대내외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고향을 볼 때마다 가슴 뿌듯함을 느끼며 고창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저를 대신하여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선·후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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