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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과 무장기포일의 의미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 중요성 부각

2007년 10월 26일(금) 16:25 [(주)고창신문]

 



동학농민혁명계승 다짐대회에서 이강수군수, 정남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 이이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 15일 동리국악당에서 1894년 무장에서 기포한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계승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계승 다짐대회가 개최됐다.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으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 등 중앙 관계자와 장세영 군의장, 임동규·고석원도의원, 기관단체장, 지역주민 등이 자리를 빛냈다. 이번 대회는 이강수 고창군수가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신임 회장에 등록한 후 처음 갖는 공식 행사로 고창군 14개 읍면 1,345개 마을에서 1894년 3월20일 무장 기포일을 상징하는 1,894명 회원이 활약하는 첫 행사였다.

식전행사로는 혁명의 깃발과 동학시 낭송이 진행되었고 본 행사로는 이․취임식(이임 진남표, 취임 이강수), 포고문낭독, 군율반포, 결의문 채택, 식후행사로 새야새야 파랑새야, 선구자 등이 축가로 불려졌으며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됐다.

고창동학농민기념사업회 이강수 회장은 다짐대회를 통하여 “고창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태생지, 무장기포지, 선운사마애불, 여시뫼 숙영지, 손화중 도소, 영학당 전투지, 무장읍성과 고창읍성 등 많은 동학유적을 간직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성지화 사업으로 동학농민혁명중점추진 5대과제를 내실 있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추진내용에는 첫째, 동학농민혁명의 스토리 텔링 개발부분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고 국민적 관심을 높여 나가는 원소스 멀티유스 원작을 만들어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 둘째, 무장기포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학술․연구 문화사업 등에 기여한 유공자를 발굴하여 동학농민혁명 정신계승의 ‘동학대상제’를 실시한다. 셋째,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학술회의 정례화, 넷째, 무장기포 기념행사의 전국화 추진으로 무장기포지의 중요성을 대내외적으로 부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요람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동학로 걷기체험, 집강소운영, 포고문낭송, 관아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타 지역과 연계한 전국적 축제화이다. 마지막으로 동학유적지 성지화 사업추진은 동학농민혁명의 무장기포지, 전봉준장군 태생지, 동학농민군 훈련장인 여시뫼숙영장 테마파크조성, 손화중 포의 도솔암마애불 비기탈취설화, 손화중도소 및 피체지, 무장도소, 영학당 전투지, 무장읍성, 고창읍성, 동학농민혁명군 진격로, 정백현 생가 등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정비한다는 것이다.


▲무장 기포일(3월 20일, 양력 4월 25일)

1894년 1월 고부봉기에서 실패한 전봉준은 3월 20일 전라북도 무장에서 손화중 등과 연합해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 선언서를 곳곳에 반포한 뒤 혁명의 깃발을 올리면서 고부로 향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1년에 걸친 혁명은 시작되었다. 그래서 2004년 10월 7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주최한 기념일 제정 토론회에 참석한 경상대학교 정진상 교수는, 첫째로 무장 봉기는 국지적 농민항쟁의 ‘전국적 농민전쟁’으로의 전환점이다. 둘째로 무장 봉기는 동학농민혁명이 ‘한국근대사의 기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셋째로 무장 봉기는 이후 한국 사회운동사의 ‘일제 봉기’의 효시다 등의 이유로 무장 봉기일을 기념일로 제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무장 기포일은 역사적 성격과 상징성 면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할 수 있는 날이란 점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 역사적 성격과 의의 드러난 무장기포일로 해야

충북학연구소 김양식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인 사건의 기념일은 역사성과 대표성, 상징성, 대중성, 현재성 등이 두루 내포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무장 기포는 창의문에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잘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창의문이 전국 곳곳에 반포되어 실제 동학도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혁명 시작을 알리는 창의문에서 제시된 반봉건 반침략 슬로건은 혁명 내내 관철되었고, 혁명 이후에도 그 정신이 계승·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무장 기포일을 기념일로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일이란 점이다. 다른 역사적인 사건의 기념일 역시 시작일로 정하는 것이 세계적인 관례이다. 5·18이나 4·19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념일 역시 시작일을 기념일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무장 기포일의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국사교육에 있다. 지금까지 국사교과서는 실질적으로 고부 백산대회를 혁명의 시작으로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개정된 7차 교육 과정에 따라 개편된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고부 백산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것으로,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부에서 봉기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무장 기포나 창의문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심지어 현재 간행된 4종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역시 무장 기포에 대한 서술이 없는 실정이다. 이는 최근의 연구 성과가 전현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의 통념에 따른 결과이다. 그 때문에 무장 기포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고부 백산대회는 실체가 불명확하다. 1894년에 쓰여진 어느 기록에서도 백산대회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1894년 3월 26~29일 사이에 고부 백산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이 크게 집결하고 조직을 재정비·재편성하면서 무장력을 강화한 것만은 사실이나,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서 언급한 백산대회가 3월 25일에 있었던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고부 백산에 농민군이 집결한 것은 무장 기포의 연장선상에서 혁명이 한 단계 질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은 무장 기포→고부 백산대회→전주성 점령→전주회담→재기병→우금티전투라는 단계별 전개 과정을 밟았다. 그렇다면 혁명의 시작일인 무장 기포일을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지향점과 목표·이념이 명확히 제시된 창의문이 곳곳에 반포되고 이를 계기로 혁명이 시작된 상징성은 기념일로 제정해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점인데, 이는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교육과 홍보를 통해 극복 가능한 문제이다.

그런데 무장 기포일인 3월 20일은 음력이다. 이 날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나, 그럴 경우 현재의 양력 3월 20일을 기념일로 할 것인지 음력 3월 20일로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양력을 사용하고 있고 무장 기포일의 계절 감각을 추체험하는 차원에서 양력 환산일인 4월 25일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근대지향적인 사건인 만큼 양력 환산도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기념주간을 설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는 기념일 제정을 둘러싼 여러 논의 과정에서 이미 제기된 안인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장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단계별로 발전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만큼 혁명 기념은 어느 특정한 날과 장소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이 시작된 음력 3월 20일부터 고부에 동학농민군이 대대적으로 집결한 3월 26일 일주일 간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유기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최종적으로 기념일이 언제로 제정될지 모르지만,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이 제정되는 일은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곧 지난 1백년 면면히 이어져온 동학과 농민혁명의 정신이 활짝 꽃피워지는 것이자, 사람이 곧 하늘인 신성함과 생명력 및 서로서로의 삶이 존중되는 상생의 사회를 향한 큰 깃발을 역사의 흐름 위에 세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의 첫 기념일 날, 모두의 손을 잡고 칼춤을 추면서 대동사회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 고창군민들에게 있어 봉건제도의 개혁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수호를 위해 희생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의 정신과 무장기포일의 참다운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무장기포일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될 수 있도록 단합된 힘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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