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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고인돌의 중요성 재조명 12

동남아시아 고인돌과 한반도 고인돌 비교 분석-인도네시아<1>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난 길에서 만난 고인돌과 사람들

2007년 11월 28일(수) 11:30 [(주)고창신문]

 



거대한 상석

 

따끔 따끔 살갗을 꼬집는 팔월의 태양 아래 비행기는 인도네시아(INDONESIA)를 향해 출발하였다. 깃발 관광이 아닌 취재로 떠난다하니 적지 않은 지인들이 치안문제와 속임수를 조심하라고 조언을 해주어 가는 길 내내 낯선 문화에 대한 설레임 못지않은 두려움이 교차하였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2시간 차이가 나지만 비행시간은 6시간이었다. 비행기가 자카르타(JAKARTA)의 수카르노-하타(SOEKARNO-HATTA)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해진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어둠은 인간을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 막 도착한 여행객을 맞는 어둠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공항의 출국장을 나서자마자 여행객을 도와주겠다고 수많은 현지인들이 따라붙었고, 숙소로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돈을 더 많이 요구하는 택시기사와 실갱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서 모기를 비롯한 해충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숙소가 깨끗해서인지 생각보다 심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이미 취침시간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답사를 하고자 하는 고인돌은 멀리 수마트라(SUMATRA) 섬의 파세마(PASEMAH) 고원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 예약을 비롯하여 교통편을 해결한 후에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고인돌은 B C 2500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5000년의 시간을 안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숨바(SUMBA)와 플로레스(FLORES) 지역의 경우 거주민들은 아직도 고인돌을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바(SUMBA)와 플로레스(FLORES) 지역의 고인돌은 선사시대 고인돌 문화 복원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고인돌은 각기 다른 섬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기본적인 믿음은 유사하다 할지라도 각각의 장소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립고고학연구센터 소장인 하리스 슈켄달(Dr. Haris Sukendar)은 인도네시아의 고인돌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누었는데, 파세마(PASEMAH)고원지역, 람펑(LAMPUNG)지역, 동부 자바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되는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숨바(SUMBA), 플로레스(FLORE), 사브(SABU)에서 발견되는 현존 거석문화의 고인돌로 분류하였다. 이번 답사계획은 주로 파세마 고원의 고인돌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숨바와 플로레스의 고인돌은 현재진행형의 문화이기 때문에 고창의 고인돌과 유사한 선사시대 고인돌을 답사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의미가 크다.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은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벽 한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흥분한 뇌파는 네 시에 벌써 기상을 선언하였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침 6시 50분에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서 셔틀로 공항까지 이동을 하는데 기사가 항공권을 확인하였다. 어떤 항공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터미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일찍 서둘러 나왔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 시간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의 도착지인 수마트라 섬의 관문 팔렘방(PALEMBANG)은 지난 7월 28일 아시안컵 3위를 놓고 일본과 우리나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우리나라를 승리의 감격으로 들뜨게 했던 축구시합이 있었던 바로 그 도시다.  수마트라섬 남동쪽 무시(MUSI)강 어귀에서 100Km 상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7∼11세기에는 슈리비자야 왕국의 수도였으며, 근세에는 술탄 왕국의 기지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전이 개발됨에 따라 수마트라 제2의 도시로서 정유 중심지가 되었다.
옆 자리에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의상을 갖추어 입은 여인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덟 살부터 한 살까지 다섯 명의 아이가 있고 현재도 임신5개월의 상태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인도네시아 여행 내내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넘치게 많았고 학교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자리에는 동료이자 연인인 것처럼 보이는 처녀 총각이 있었는데, 결혼식 참석차 자카르타에 왔다가 팔렘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하였다. 회계 감사원 역할을 하는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는데, 월급이 2,000,000 RP라 하니 우리나라 돈으로 25만원 정도를 받는 셈이었다. 아가씨는 YURIA, 총각은 ARKO라 하였는데, 믿을만한 직업을 가진 현지인을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워 팔렘방을 떠날 때까지 이들과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팔렘방의 반다라(BANDARA)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열시경이었다.
고인돌 분포지역인 파세마(PASEMAH)고원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팔렘방에서 남서쪽으로 약 310Km정도 떨어진 파가랄람(PAGARALAM)으로 가야하는데, 길이 좁은 고원지역이기 때문에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오늘 중으로 그곳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팔렘방시의 답사는 다음으로 미루어 두고 점심만 먹고 바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점심은 공항에서 만났던 YURIA와 ARKO와 같이 먹었는데, 은근히 인도네시아의 현지인들의 식사모습을 기대하였으나 그들은 선뜻 먹지 않고 우리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바로 파가랄람을 향해 출발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처음에는 기사의 인상이 너무 고약하여 몹시 불안하였다. 더구나 산골처럼 느껴지는 고원지대를 가야하니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었다. 영화의 나쁜 장면들이 떠오르는가 하면 행방불명된 채 사라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나자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순식간에 마음을 덮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사는 여전히 고약한 인상을 찌푸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불안감이 더 깊어져서 이대로 가야만 하나 고민을 하는 참에 비로소 기사가 어디로 전화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남편을 위해 옷가지를 챙겨서 아이들과 같이 나온 그의 부인을 보면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였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사차선의 도로는 중앙에 나무가 심어져서 넓은 정원처럼 형성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오토바이와 뒤엉켜 차들이 밀물처럼 달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시(MUSI)강을 건너면서 도로는 이차선으로 좁아졌는데, 고원지대는 아직도 멀었는지 산은 보이지 않고 널따란 평원이 잡목으로 우거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평원 군데군데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는 것 같았다.
쁘라브믈리(PERABUMULIH)라는 제법 큰 도시를 벗어나자 도로는 아주 심한 굴곡을 그리면서 이어졌는데, 운전하는 것을 지켜보니 이 곳에서는 방향 표시등이 우리와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갈 때는 방향 표시등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뒤따르는 차를 추월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추월하라고 알려주는 경우에만 쓰고 있었다. 기사가 졸리는지 창문을 열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야셀이 잠을 쫓기 위해 부르는 노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느껴져 마음을 구슬프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라하트로 가는 도중 어찌된 일인지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고장을 일으키면 이 먼 여정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 생각하니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아직 라하트에도 도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처음부터 점검해 가자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라하트에 도착하였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파왔다. 그러나 음식을 만드는 주방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저녁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는데, 야셀은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기 전에 나오는 종재기 같은 물에 손을 조물조물 씻더니 밥과 생선을 오른손으로 먹는 모습이 자유롭게 보였다. 피곤했기 때문에 라하트에서 그 날을 묵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빨리 파가랄람(PAGARALAM)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저녁을 마치고 바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라하트(LAHAT)에서 파가랄람까지는 65킬로미터. 길이 좋지 않아 두 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였다. 라하트를 출발하자마자 길은 좁아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밖은 어둡고 비까지 내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길 아래는 낭떠러지일 것임이 분명하였다. 한참 올라가니 그 고원지대에 인가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두 시간 십분 정도 그렇게 쉬지 않고 험준한 산길을 오른 끝에 드디어 파가랄람에 도착하였다. 산 속을 한참 올라왔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파가랄람에 도착해보니 놀랍게도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도착한 시각이 밤 열시 가까이 되는 시간이었으나 우리의 방문 목적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 늦은 시각에 손전등을 가지고 나오며 보러가자는 기세였다.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내 편에서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보러가자고 말려야 했다.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에 필요한 것은 썰렁한 관리소나 의무적인 관리인이 아니라 이 같은 지역민들의 애정과 자부심 그리고 관심과 열정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 될 것 같아 잠을 청했으나 이곳은 호텔과는 달리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모기를 쫓으며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천장에서 쥐들의 우당탕탕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그렇게 깨워진 잠은 더 이상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일어나기로 하였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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