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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제5대 광주시교육위원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에서 고창출신인 전원범 광주교대 교수가 의장에 당선됐다. 전 의장은 총 7명의 위원 증 4표를 획득하여 상대후보를 1표차이로 누르고 의장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전 의장은 타지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광주교육을 견제, 감독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그의 소신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제5대 시교육위원회 수장인 전원범 의장은 5대 교육위원회 전반기 부의장에 이어 후반기 의장에 당선됐다. 전원범 의장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뿐만 아니라 대안제시와 협조를 통해 교육정책이 잘 구현되도록 돕는 기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교육청의 바른 정책과 교육위원회의 위상 제고를 통해서 광주교육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1일 광주시교육청 의장실에서 본사 조창환대표와 전원범 의장간의 인터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광주교육위원회 의장으로 취임하게 된 소감은? -교육위원회에서 전반기 2년을 부의장으로 활동해왔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협조를 동시에 하는 것이 교육위원의 임무이다. 집행부의 일탈을 막고 교육청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구가 교육위원회라고 생각 한다. 5대 전반기의 교육위원회는 견제기능이 약하고 집행부의 의지대로 결정된 사항이 많아 ‘교육위원의 입지가 좁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후반기에는 누가 의장이 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거 2~3일 전에 계획해서 갑자기 나오게 되었는데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쁘다.
▲가장 역점을 두고 실천할 공약 및 의장 활동 방향은? -첫째, 실적위주의 행사보다는 수업의 질을 높이는 광주교육, 둘째, 지나친 입시경쟁교육에서 벗어나 인성교육이 바탕이 되는 전인교육, 셋째, 교사인권과 학생인권이 함께 존중될 수 있는 조례의 제정, 넷째, 사회양극화, 이원화 갈등구조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설립에 대한 신중한 대처 등에 노력하겠다. 그리하여 미력하나마 광주교육정책의 방향을 바르게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지난 1975년도 ‘해’라는 작품으로 중앙일보 중앙문예에 당선된 후 30년 동안 써온 동시 70편을 우제길 화백의 작품과 곁들여 한권의 책으로 묶었는데 그것이 바로 ‘해야해야 노올자’라는 연작동시집이다. 그 시집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면? -70편을 우제길 화백의 작품과 곁들여 한권의 책으로 묶었는데 그것이 바로 ‘해야해야 노올자’라는 연작동시집이다. 그 시집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면? -맨 먼저 ‘해’라는 작품이 1975년 중앙일보 중앙문예에 당선됐는데 이것이 ‘해·1’이다. 그후에 해에 대한 감동은 계속되어 30년 동안 꾸준히 쓰게 되었고 마침내 ‘해·70’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다른 동시와 달리 이 ‘해’ 연작은 그동안 동인지 ‘동심의 시’에 주로 발표해 왔고 해마다 몇 편씩 써서 70편에 이른 것이다. 다른 연작시와 달리 ‘해’ 연작시는 ‘해’라고 하는 소재와 함께 주로 밝음·생명·희망의 주제로 짜여져 있으며,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나 가슴의 이미지로 이뤄져왔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서 연작 ‘해’를 묶게 되어 마치 한 매듭을 짓는 듯하여 기쁘다. 또한 우제길 화백이 생각하는 미술세계도 빛과 관련된 것이어서 그의 그림을 함께 삽입하게 되었다.
▲우리 미래를 짊어질 초·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교육위의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 시골에서 태어나 줄기차게 열심히 살아온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중·고등학교 때 나는 문학의 목표가 있었다. 고창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문학에 각별했으며 열성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문학에 대한 목표가 일관되게 내 삶을 지배해왔고 교육대학에 와서는 모교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이루게 되었다. 나를 붙잡아준 대부분은 그런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생활환경,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무엇이 되고 싶다, 하고 싶다는 목표를 일찍 세워 그것을 향해 노력을 한다면 결국엔 성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창군민에게 한 말씀... -고창에서 태어나 고창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광주교육대학을 진학해 열심히 살아왔다. 언제 어디서나 내 고향을 단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고 관련 지을 수 있다면 남의 눈에 띄는 것과는 상관없이 고향을 생각해왔다. 내 고향 고창에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쁘고 슬픈 일이 있어도 함께 마음 아픈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고향에 스픈 일 중 하나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로 인하여 고창과 광주의 소통이 빨리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좋지만 한편으로는 물이 고일 겨를이 없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가까운 곳으로 빠져 나가 버리니까 고창의 경제나 문화 등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적지 않느냐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고향에 가서 살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도 해보고 고창군이 늘 발전하고 좋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대담=조창환 대표
전 의장은… 1944년 고창읍에서 태어나 고창중·고등학교를 거쳐 광주교대, 서울대 사대 교육원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조문학’, ‘시문학’ 천료,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으며 시집 ‘달개비꽃’, ‘밤을 건너며’, 시조집 ‘걸어가는 나무들’, ‘이 걸음으로 어디까지나’, ‘맨몸으로 서는 나무’, ‘허공에 길을 걸어 그대에게 간다’ 등 발간. 우리나라 좋은동시문학상, 광주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동백문학상, 현산문화상, 황산시조문학상, 광주시민대상, 광주문학상, 고창문학상, 광주시 문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광주문인협회 회장과 광주교대 대학원장, 한국교총 회장 직무대행 등을 역임. 현재 광주교대 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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