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22 | 05:53 오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뉴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무장현의 사적고찰과 성혼의 정통 ②

김 종 수(대한노인회 고창군지회 무장면분회장)

2009년 03월 24일(화) 16:39 [(주)고창신문]

 

삼한시대부터 현재까지 장구한 역사적 배경과 고증(考證)으로 ‘무장현관아와 읍성’은 시급히 완전복원되어 후세들의 사적연구(史的硏究)와 지역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를 무장군 16개면민들은 큰 목소리로 외치며 갈망하는 바이다. 여기에 무장 남극관 노인당이 있으니 충효애향의 혼이 살아숨쉬는 무장고을의 교육의 산실로 성혼(城魂)의 정통(正統)을 후손의 가슴속에 전수(傳授)하기 위하여 그 맥을 이어오는 기로처(耆老處)가 남극관 경로당이다.
무장면 성내리(城內里)에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400년전 1607년(丁未年) 정초, 이조 14대왕(宣祖 40년) 주(州) 부(府) 군(郡) 현(縣)의 서해안의 전략요새지(戰略要塞地)인 무장현에 중앙의 경아전(京衙前)과 지방의 외아전(外衙前) 등 많은 향리(鄕吏)들의 내왕이 빈번하고 다양(多樣)하여 정청(政廳)인 동헌(東軒)옆에 政談장소인 객사(客舍)를 사용하였으나 장소가 협소하여 객사별관(別館)을 건립하게 된 것이 현 남극관노인당의 본당(本堂)이다. 당시 각 관아(官衙)에서 근무하셨던 비서승(秘書丞, 都五五三品) 현감, 교리, 군수, 의관, 진사, 오위장, 참봉, 면장 외 문과나 무과로 급제하신 전관에 계셨던 분과 향리들께서 충효의 혼과 충절애향의 전통을 후손에게 전수해야된다는 결의로 뜻을 모아 기로처(耆老處)로 정하고 이조 21대왕 영조(英祖 5년, 1729년) 기유년(己酉) 원월(元月) 망일(望日)이니 지금으로부터280년전 정식으로 계서(?書)를 발의하여 기로안(耆老案)을 작성하였으며 현재 노인당에 보관중이다. 기로안의 계서문(?書文)에 도유(屠維)작악(作?) 원월(元月)이라 하였으니 古甲子에서 천간(天干)인 십천간중(十天干中)에 기(己)요, 작악은 십이지지중(十二地支中)에 酉를 뜻하는 것이니 바로 己酉年에 발족한 것이다. 본부장군은 사마재(司馬齎)와 양사재(養士齎)를 두어 선비를 길러냈던바 등과(登科)한 분이나 선비들이 노년에 진사구락부(進士俱樂部)에 모여 노년을 즐기게 된 것이 바로 오늘의 남극관을 말하며 2월경에 남쪽지평선에 잠시 보이는 별(星辰)로써 중국고대의 천문설에 사람의 수명을 맡아보는 별이라하여 이 별을 바라보면 오래산다고 하였다. 따라서 남극성은 壽星 또는 老人星이라고 했으며 주로 남자의 壽命을 말하기도 한다. 觀자는 館과 같으며 큰집인 宮闕을 말한다. 보관중인 耆老案序文을 草察한 李校理는 承文院의 從五品(玉堂인 만취헌 李濟達로 朝鮮朝 제 4대 世宗때 集賢殿(집현전 : 왕실의 연구기관) 學士이다. 이후 노인당은 1920년 무장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色城안에 客舍를 사용하던 보통학교가 교실을 동헌 앞에 3칸을 新築하고 移徙를 감으로 인해 면사무소가 객사로 이사가고 노인당으로 환원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서해안지구에 주둔한 일본군연대의 군기대(軍旗隊)가 점령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서기 1987년 5월 1일 보사부장관으로부터 모범경로당으로 지정되어 왔으며 지금까지 城魂의 脈을 이어오고 있다. 금년 2009년 8월 23일 무장동명학교로 설립된 사립학교 개교 100주년이 되는 역사와 후학을 길러낸 홍익인간의 인재를 배출한 명문학교의 전신이기도 하다. 현재 본 노인당의 회원이 무려 2300여명이 넘고 있으며 지역개발과 주민화합과 큰 사랑의 봉사실천의 산실역할을 다하고 있다. 남극관경로당은 자원봉사 실천모범 경로당으로 실천강령을 ‘고령화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어른으로서 자혜(慈惠)롭게 베풀고 성심성의껏 봉사하자’로 정하고 지역봉사지도자의 역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2009년 현재 대한노인회 중앙회로부터 노인대학을 지정받아 2월부터 무장남극관노인대학이라는 명칭아래 입학생 60여명이 건강체조와 노래교실, 효 실천 예절교육 등 즐거운 노후에 지도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사 속에 묻혀버린 무장고을은 동학의 농민혁명의 혼과 광복의 투사정신의 맥을 이어 받아 무장기포제와 성혼의 정통을 가슴 뜨겁게 후손들에게 전수시키고 배움의 열망으로 100년을 이어온 무장동명학교의 100주년 교육개혁과 홍익 인간의 요람으로 무장 3대 정신지주운동과 역사에 길이 남길 개척정신으로 2만 면민과 일만칠천의 동창들이 큰 목소리로 힘차게 합창합시다.
“높은 하늘 / 넓은 바다 / 우리의 이상(理想) / 너와 나와 손을 잡고 / 한덩이 되어 / 삼천리 삼천만을 / 밀고 나가세 / 우리들은 / 무장청년 / 씩씩하구나 / 앞으로 앞으로 / 우리 무장을 / 앞으로 앞으로 / 세워나가세 / 우리 힘과 우리 열로 / 아름다웁게 빛내어라 15천년 / 대한의 역사 / (본 노래 가사는 광복직후 무장청년가로 불러왔던 의기양양한 ‘무장의 노래’로 남아있다)
※ 무장면의 뭉치는 기질이 계승되어 무장현의 후예인 제헌국회의원 김영동(납북)씨와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 한전사장과 국회의원,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씨, 도의원 박성열씨를 비롯하여 관내에서만 사시 12명, 외무고시 2명, 행정고시 7명 등이 합격, 현재 각 요처에서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무장출신 진기풍씨는 전북일보사장과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 등을 역임, 평소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강해 평생 부인 박수명씨와 함께 수집했던 서예, 미술, 도자기 등 126점을 고창군에 기증했다. 무초회향미술관을 건립하여 추사 김정희, 강암 송성용, 석전 황 욱, 소치 허 련, 남농 허 건, 해강 김규진, 서양화가 진환씨 등의 가치작품 등이 연중 미술관(고창읍 모양성 입구)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해설사도 상주하고 있어 한번쯤은 찾아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해 볼만 하다.
- 끝 -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봄의 기억, 길 위에 남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 인식개선 공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 예비후보자 현황..

과거를 품고 내일로, 신재효판소리박물관 재개관!..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유석영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유석영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