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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현(興德縣)의 연혁(沿革)과 의병활동(義兵活動)

고 석 상(성균관 부관장, 전 흥덕향교 전교)

2009년 04월 14일(화) 14:50 [(주)고창신문]

 

↑↑ 고석상

ⓒ (주)고창신문


1. 흥덕현의 연혁
백제시대에는 본래 상칠현(上漆縣)이라 하였고 통일신라시대 경덕왕(景德王) 16(757)년에 상칠현(上漆縣)으로 그 명칭이 바뀌어 고부군(古阜郡)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장덕현(章德縣)으로 고쳐 감무(監務)를 두어 고창(高敞)을 겸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던 1308년에 왕명(王名)과 혐명(嫌名)을 피해 창덕현(昌德縣)이라 하였다. 고려 창왕(昌王)이 1389년에 즉위하면서 지금의 흥덕현(興德縣)으로 고쳐졌다. 조선시대 태종원년(太宗元年) 1401년에 겸임해오던 고창에도 감무(監務)를 두어 갈라섰고 세조원년(世祖元年)인 1455년에 지방조직의 개편에 의해 현감(縣監)으로 고쳐 전주진관(全州鎭管)의 소속이 되고 토포(討捕)로는 나주(羅州), 속오(束伍)로는 입암산성(笠岩山城)에 속하였다. 당시 행정 구역은 ①현내면(縣內面) ②북면(北面) ③일동면(一同面) ④이동면(二東面) ⑤일남면(一南面) ⑥이남면(二南面) ⑦일서면(一西面) ⑧이서면(二西面)이었다. 왜정시대 고정(高宗) 32년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령(칙령 98호)에 의거 흥덕군(興德郡)으로 승격되었으며 광무(光武) 8년 1904년에 고부군의 부내면(富內面)과 부외면(富外面) 현 부안면을 편입시켰다. 1906년에는 현내면, 북면, 일동면, 이동면, 일남면, 이남면, 일서면, 이서면, 부안면의 9개면을 관활하였으나 1914년 3월 1일 부군통폐합령(府郡統廢合令)에 의해 고창군으로 병합되었다. 또한 비능률적인 행정방리를 통폐합하여 현내면, 과북면을 합하여 흥덕면(興德面)으로, 일동면과 이동면을 합하여 성내면(星內面)으로, 일남면과 이남면을 합하여 신림면(新林面)으로, 일서면과 이서면을 합하여 벽사면(碧沙面)으로 그리고 부안면(富安面)을 더해 5개면이 되었다. 그러나 이동면 지선리(二東面 芝仙里)가 정읍군 입암면으로 편입되었고 1935년 3월 1일 면 폐합 및 구역변경의 개편에 의해 벽사면이 흥덕, 신림, 부안면으로 흡수 통합되어 지금은 흥덕면, 성내면, 신림면, 부안면의 4개면이 관할 구역을 이루고 있다.
2. 의병활동(義兵活動)
1)임진왜란(壬辰倭亂)
선조(宣祖) 25년 1592년 임진왜란에 제봉고경명(霽峰高敬命)의 격문(檄文)을 보고 채홍국(蔡弘國) 고덕붕 등이 고경명의 진영이 있는 금산(錦山)에 참전(參戰)하였다. 그러나 고경명이 이미 순절하고 부대가 패몰하자 산졸(散卒)을 모아 고향에 돌아와 채홍국의 세 아들과 종족 33명을 규합하고 동지(同志)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 92 의사(義士)와 360여 병사로 흥덕남당(興德南塘)에서 의병창의의 혈맹(血盟)을 맺었다. 채홍국은 의병장(義兵將)이, 고덕붕은 맹주장(盟主將)이, 조익령, 김영년, 지익수, 채명달, 채경달, 채영달, 한계상이 참모관(參謀官)이 되어서 해안을 사수했다. 병량(兵糧) 400석을 모아 300석은 의주행조(義州行朝)로 100석은 곽재우진(郭再祐陣)에 보내다 적이 순천(順天) 에 범함을 듣고 급히 출군(出軍)하여 추격(追擊)하였다. 선조(宣祖)가 그 사실을 듣고 가상히 여겨 채홍국에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재수하고 다시 가선동추(嘉善同樞)로 승진하였다.
2)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작성(作成)하여 전국(全國)에 돌리고 야수의병장 채홍국(野? 義兵將 蔡弘國)과 제봉맹주장 고덕붕(霽峯盟主將 高德鵬)과 조익령, 김영년, 조익수, 한계상 참모(參謀) 등 500여명의 동지(同志)를 규합하여 흥덕배풍산 흥덕읍성(興德邑城)에서 왜적을 맞아 2일간 전투끝에 왜병 7명을 참살하고 부안군 상서면 상량치까지 격퇴(擊退)하였으나 상량치에 많은 왜적이 대기잠복(待機潛伏)하고 있었다. 40여일간의 전투끝에 수백의 적을 사살하고 의병(義兵) 119명이 순국전사(殉國戰死)하였다. 그때의 일기와 동맹록(同盟錄)이 김영년(金永年)의 집안에 간직되어 있는데 모두 참모관(參謀官) 조공의 기록이다. 후인(後人)들이 그곳을 일러 호벌치(胡伐峙)라고 한다. 고종(高宗) 9년 채홍국 의병장에게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증직하고 고덕붕 맹주장에게는 고종(高宗) 30년 1893년 나라에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증직하였다.
3)회맹단(會盟壇)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채홍국의병장과 고덕붕맹주장 등 92 의사(義士)가 흥덕면 남당리에 높이 20척, 둘레 200척, 직경 67척의 단을 쌓고 백마(白馬)피를 마시며 5개 항의조약(條約)을 체결하고 맹훈련을 하여 충혈(忠血)이 젖은 곳이다. 1963년 신상우(申祥雨) 군수가 기적비를 단상에 세울 때 좌대 작업 중 이척하(二尺下)의 장검(長劍) 다섯자루, 투구끈, 청색구슬 반되 가량 45되들이 반흑색주기(半黑色酒器) 토기(土器), 화살촉 1되가량이 채홍국의병장의 유물(遺物)로 추정(推定)되는 물품이 출토되어 수십명의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유물은 현 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단(壇)은 남원의 만인의총(萬人義塚)과 금산(錦山)의 900의총과 다를 바 없어 마땅히 국가적인 사적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2004년 6월 4일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었다.
4)모충사(慕忠祠)
1924년 야수 채홍국선생(野? 蔡弘國先生)을 흥덕면 하남리 행정(杏亭)에 단향(壇享)으로 모시다가 1985년 신사범(愼思範), 남대희(南大熙) 주선으로 고창군수 이윤갑(李允甲)의 3천만원지원과 국도비 9천만원, 유족성금 4천만원 합계 1억 6천만원으로 맹단(盟壇)옆 현지 남당리(南塘里)에 대규모로 사우(祠宇)를 건립하여 채홍국의병장과 고덕붕맹주장을 주벽(主壁)으로,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한계상(韓繼常), 채명달(蔡命達), 채경달(蔡慶達), 채영달(蔡英達)을 좌우로 배향하고 동의사(同義士) 119위(位)를 동서(東西)벽으로 조행하였다. 행사일(享祀日)은 음력 10월 10일이다.
다음호에 계속…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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