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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현(興德縣)의 연혁(沿革)과 의병활동(義兵活動) ②

고 석 상(전 흥덕향교 전교, 성균관 부관장)

2009년 05월 06일(수) 10:18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① 흥덕현의 연혁
1. 흥덕읍성(興德邑城)
흥덕면 흥덕리 뒷산 배풍산(培風山)에 있다. 고려 후반 서기 1천1백년대 흥덕현감이 있을 때 배풍산에 석성(石城_과 토성(土城)이 있었는데 기소와 석축 높이가 열세자(十三尺)가량 되고 그 위로는 토성으로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축성(築城)년대는 미상이다. 동쪽 섭문을 동문이라 하였고, 서남쪽 성문을 서남문이라 하였다. 동문은 주로 고위직 등이 출입하였고, 서남문은 일반인이 출입하였다고 본다. 현 교운리 내 마을 이름을 성밖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성밖에라 하고 서남문 쪽에 있는 마을을 서남마을이라 한다. 1597년(선조 3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시에는 채홍국의병장과 고덕붕맹주장 등 500여명의 의병들이 흥덕읍성에서 왜적을 맞아 2일간의 전투 끝에 왜적 7명을 참살하기도 한 곳이다. 1700년대까지만 해도 석성은 거의 남아있었으나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거의 훼손되고 지금은 성석 일부만 남아있다.
② 의병활동(義兵活動)
1. 병오의병(丙午義兵)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선생의 의병주모지(義兵主謀地)는 흥덕현 이남면 가평리 방호정사(方壺精舍) 현 도동사(道東祠)이다. 면암 선생은 현 신림면 가평리 방호정사, 도동사에서 20여년간 고석진, 고용진, 고순진, 고예진, 고제만, 정시해, 노병희, 황종관 등 수백명의 제자들을 양성시켰다. 선생은 탁월한 재지(才智)가 있어 일찍 문과(文科)에 올라 이조말(李朝末)에 공조참판(公曺參判)으로 국가를 위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오적의 무리들을 주참(誅斬)하라는 상소(上疏)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체결되자 면암 최 선생은 문을 잠그며 죽기로 결심하고 식음(食飮)을 전폐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수남(秀南) 고석진(高石鎭)선생은 이 사실을 중형(仲兄) 송재(松齋) 고용진(高龍鎭)선생에게 여쭈었던바 송재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족제 만취(晩翠) 고순진(高舜鎭)선생, 족제 송천 고예진(高禮鎭)선생, 족질 죽계 고제만(高濟萬)선생을 신림면 가평리 방호정사9현 도동사)로 소집하여 면암 선생과 동맹약(同盟約)하기로 결의했다. 면암선생께서 그대로 굶어죽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빨리 올라가서 면암 선생께 의병을 일으키라고 권유하라는 질책하시므로 수남선생은 바로 송천선생과 죽계선생을 대동(帶同)하고 충청도 청량 의정산에 있는 면암 선생을 찾아갔다. 문전(門前)에는 곡성(哭聲)이 낭자하고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면암선생께서 단식(斷食)하신지가 이미 여러 날이 되셨다고하자 깜짝 놀라고 ‘선생님’하고 불러보았으나 선생은 대답이 없으므로 더욱 당황했다. ‘선생께서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없이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몇 번 외치니 그제서야 면암선생께서 문을 열어주시면서 들어오라하심으로 수남 고선생과 송천 고선생, 죽계 고선생은 지사(志士)들을 규합, 국치조약(國恥條約)의 무효와 아울러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力說)했다. 면암선생께서는 ‘의병을 일으키는 것이 쉬운 일인가.’라고 하시니 수남선생 일행은 ‘선생님께서 의거(義擧)할 것을 허락만 하신다면 소자(小子)들이 모든 계획을 세우겠습니다.’라는 허락을 여러 번 간청함했다. 면암선생께서 허락하시면서 ‘그대들은 만반의 준비를 해달라’고 하시므로 세분 선생들은 면암선생의 건강을 당부하고 기쁜 마음으로 고향로 내려오는 도중 전락안군수 임병찬(林柄瓚)을 찾아가 의병지휘 책임을 해달라고 승낙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군량미 500석과 군자금을 모아 무기를 구입하고 지사궐기의 포고문(布告文)을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고 의병을 규합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905년 12월 25일에 충남 노성의 궐리사에 200여명의 지사가 결집하여 회동했다. 거의 격문의 인쇄와 이의포고 등을 종용하여 결행키로 합의하고 면암선생의 동문들을 독려하여 면암선생을 옹립했다. 호남에서 거의 할 것을 책동하는데 그 주역이 되었다. 1906년(광무 10년) 2월 22일 고용진, 고석진, 고예진, 고제만 등 4인이 최면암 선생을 찾아가 임병찬이 참여소식을 보고한 후 관장의 경력이 있고 폭도를 제압한 공이 있는 임병찬에게 모군과 연병의 지휘책임을 맡길것으 건의하였다. 면암께서 쾌락하고 의거(義擧)일자를 윤 4월 13일로 정하여 주면서 면암 자신이 서명했다. 각자된 사각인장을 그들 4인에게 내리고 실무수행을 위임하면서 거의격문(擧義檄文)을 전국 각처에 포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원 연락책 고예진에게 면암의 사민서 거의문을 인쇄하여 전국에 전포하게 하였고 고석진, 임병찬, 고예진, 최재학, 고제만, 임현주, 노병희 등과 같이 태인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면암 최익현을 옹립, 호남의병창의소(湖南義兵倡義所)를 설치하자 왜놈의 군경들이 여기저기 경계까 삼엄했다. 그러나 윤 4월 13일(양 6월 4일) 송천 고예진은 격문을 인쇄하여 팔도에 전파중 모인이 광주경찰서에 밀고하여 이를 중단하고 장형 고순진에게 부탁하여 깊이 숨겨두었던 조총 10여정을 면암에게 전달했다. 태인 무성서원에다 팔도유림강회(八道儒林講會)를 개최하고 거의의 기치(旗幟)를 높이 걸고 대열(隊列)을 정비하니 전국에서 1천여명이 모인 의병들은 의거를 선언했다. 고종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려 거의 결의하였음을 아뢰옵고 바로 면암 최선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했다. 수남 고석진을 참모총장으로 일광 정시해를 중군장으로 모병경로가 있는 송재 고용진에게 소수 및 선봉자로 포사(包士) 강종회를 포군장으로 임명하여 포병 60여명의 대열로 선봉을 서도록 했다. 의병들은 태인, 정읍, 구례, 곡성, 순창 등지를 근거로 관아를 습격하여 군자금과 무기를 충당하여 넓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통감부??? 전주경무고문지부의 일본경찰을 동원하여 의병을 향해왔으나 번번히 쫓겨가곤하였다. 4월 19일(양 6월 10일) 순창으로 진격하여 그곳의 일본군을 격퇴시킨 의병들은 순창군수 이건용을 설득시켜 의병에 가담케하였고 의병 1천여명이 순창 복흥에 주둔하고 있는데 왜군이 이를 알고 윤 4월 20일 일제는 전주관찰사 한진창을 시켜 남원과 전주의 진위대를 이끌고 의병을 공격해왔다. 최면암의병대장이 글을 보내 동족상쟁(同族相爭)을 할 수 없으니 진위병들이 물러 갈 것을 권유하였다. 전주진위대가 먼저 발포하여 접전이 점차 격화되면서 중군장 일광 정시해가 순국전사하고 천여명의 의병들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4월 22일(양 6월 13일)까지 혈투항전하던 의병들은 열세하여 패배의 고배를 맞게 되었다. 최면암의 명에 의해 대부분 의병들은 물러가고 최후까지 자리를 지킨 최익현 영수(領首)를 비롯하여 임병찬, 고석진, 김기술, 문달호, 임현주, 유종규, 조우식, 조영선, 최제학, 나기덕, 이용길, 양재해 등 14명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성되었다. 이들은 일본 헌병사령부에 감금되어 가진 고통을 겪어 다음 9월에 가서야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재판에 회부되어 최면암은 대마도로 이수(移囚)하고 임병찬은 2년, 고석진, 최제학은 4개월 감금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형을 받고 석방되었으며 10월 순창구암사전투에서 고예진은 붙잡혀 전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2월 27일 방면되었다. 면암 최익현선생은 1906년 병오 음 11월 17일 대마도에서 순국(殉國)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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