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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고창사람 - 제18대 인천 부평(을) 홍영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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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제 일꾼, 홍영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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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26일(금) 09:1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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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홍영표 국회의원은…
-1957년 전북 고창 부안면 오산리 출생
-고창중.이리고.동국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과)
-대우자동차 직업훈련원 수료, 차체부 생산직으로 입사91982)
-대우자동차 노동자대표(1985)
-대우자동차 영국판매법인 주재원 근무(1995-2001)
-참여연대 정책위원92001)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2004)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지원단 부단장(2006)
-재정경제부 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장(2007)
-18대 총선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2008)
5.3% 차이로 낙선, 인천지역 1.2위간 최소 격차 석패
-민주당 인천부평을 지역위원장
-산곡남중학교 운영위원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이사
-우석대학교 유통통상학부 초빙교수
고창 부안면 오산리 출신 홍영표(53) 국회의원이 지난 4월 29일 인천시 부평(을) 지역구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지역주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홍영표 국회의원은 소탈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추진력과 다양한 경험, 리더십을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안면 오산리에서 1957년에 출생했으며 고창중(21회)과 이리고,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1982년 대우자동차 직업훈련원을 거쳐 차체부 생산직으로 입사하며 대우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1985년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엔 노동자대표로 활동한 바 있으며 대우자동차 영국판매법인 주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 후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재정경제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지냈다. 1982년 GM대우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에 생산직으로 입사한 뒤 대우자동차 노동자 대표와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18대 총선에서 부평을 지역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구본철 전 의원에게 5.3% 차이로 패배, 1년간 민주당 인천시당 부평을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표밭을 다져왔다. 올해 1월 구본철 전 의원이 대법원에서 허위사실 공표 및 금품제공 등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음에 따라 재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지난달 초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재도전 끝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홍 국회의원은 당선 시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선거기간 중 경제 살리기와 GM대우 회생 문제가 과대포장 되고 재선거의 쟁점이 흔들리면서 유독 어렵고 힘들게 싸웠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부 여당이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표를 주신 유권자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한바 있다. 이에 지난 20일 선운산관광호텔 2층 연회장에서 고창군애향운동본부(본부장 조병채)는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고창 부안면 출신인 홍영표 국회의원(인천시 부평을)의 환영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환영회 자리에는 임동규.고석원 도의원, 김춘진 국회의원, 박우정 재경고창군민회, 고창중고총동창회 지구회장단 및 총무, 송건의 부안면장, 양주용 농협고창군지부장 등 고창중 21회 동창단과 부안초, 이리고 동문 등 부안면민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조병채 본부장은 환영사를 통해 “축사를 할 때마다 고창은 인물의 고장이란 말을 많이들 사용한다”며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출신으로는 5명이 금배지를 달은데 이어 홍영표 의원이 이번 보궐선거세도 보부도 당당하게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고창의 자랑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 본부장은 “특히, 인천 부평을 지역은 전국적으로 이슈화가 되어 여당의 총공격을 받고 모든 역량이 집중된 곳이었지만 고창출신인 홍 의원의 인물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며 “부평구민들의 탁월한 선택을 받은 홍 의원이 정말 훌륭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홍 의원은 이제 시작이다. 산민주주의, 국가발전 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주고 홍 의원을 비롯한 고창출신 국회의원들이 하나가 되어 고창이 발전될 수 있도록 힘써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조병채 본부장은 고창고보 폐교위기 당시 삼천명의 기부금을 단독 부담한 고 홍종철 어르신의 손자가 홍영표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 홍종철 어르신은 자기 부담 일만원 외에 지가 백원이하 오십원상당의 소유자로 고창군 내에 사는 삼천삼백여인에게 부담된 기부금 일만 육천여원을 단독으로 담당하는 등 고창고보를 설립하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시다. 홍 의원의 이러한 행보는 훌륭하신 조부 밑에서 자란 영향 탓이 클 것이라 여겨진다. 조병채 본부장의 환영사에 이어 홍영표 국회의원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홍 의원은 “이 자리에는 초중고 동창, 동문들이 함께 해주어 더욱 기쁘다”며 “어릴 적 친구는 영원히 똑같은 것 같다”고 감회를 밝혔다. 홍 의원은 “부모님께서는 부안면 오산에서 거주를 하셨지만 최근 연로하신터라 서울에서 거주하고 계셔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셨다”며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선거를 치르다보면 죽었다 살았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 4.29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순간 가장 먼저 머릿속에 스쳐간 생각 중 하나가 바로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인천 부평구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생활한 지가 30년이 되었다”며 “하지만 고향엔 매년 명절 때마다 찾아와 조상님들께 성묘도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고향에 대한 애향심은 항상 가지고 있었고 고향은 내 자리가 어디에 있든 항상 똑같더라”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지 1달 20일이 됐는데 국가의 상황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일이 많아 올 수 없었다”며 “그러나 조병채본부장님의 배려로 마련된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고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당선증을 받고 나서 국회의원이 됐지만 아직 선서를 못했기 때문에 정작 본회의장에는 들어가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홍 의원은 지난 1년 6개월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셔온 바 1주일간 봉하마을에 내려가 장례를 치렀다고도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고 싶다며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힘은 민주주의를 쟁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가 살아있어야 경제가 투명해진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입증한 것이다. 홍 의원은 “4.29 선거에서 당선한 후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20일 후 모임에서 충청도 홍성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펜션을 들어갔을 때 펜션 주인아저씨가 날 알아보더라”며 농담 섞인 소리도 전했다. 이어 “선거 당시 당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으나 당에서는 오히려 민주당을 살렸다며 초선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원내부대표와 노동특별위원장, 정무위원회, 운영위원회 배치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창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고 부평구와 고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며 “어디를 가던 고창이 고향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성대한 자리를 만들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일 잘하는 홍영표, 대한민국의 일꾼 홍영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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