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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삼현파 한림문회삼선조 의적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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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조의 높으신 공 받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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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16일(목) 10:0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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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삼현파 호남 한림문회 김정웅 회장(김헌(金軒)의 13대 종손)과 자손들이 성금을 모아 3선조 남산정 김헌(金軒), 청계 김두남(淸溪 金斗南), 월재 김지남(月齋 金志南)의 의적비를 해리면 송산리 임해에 세우고 지난 5월 25일 월전에 제막식을 가졌다. 임진왜란 때 이치, 웅치전을 승승장구한 청계 김두남, 월재 김지남은 진주성이 위기에 있다하여 백부 승지 김축(金軸)을 따라 치열한 전쟁에 가담했다. 그러나 신무기로 무장한 10만의 왜놈과 싸우다 순절하니 근왕(勤王, 임금을 위해 나랏일에 힘씀)길에 돌아온 참판 김헌은 백형(金軸)과 두 아들(두남, 지남) 등이 진주성에서 싸우다 순절했다는 말을 듣고 청해면(지금의 해리) 송산리 임해 남산에서 7일간 국운을 빌다 타계했다. 김정웅 회장을 비롯한 자손들은 삼선조의 높으신 공을 받들어 뒤늦게 서야 제막식을 열게 되었다. 해리면 송산리 임해에는 5백여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도 육충(六忠), 일효(一孝), 사열(四烈)의 나라를 위한 의적(義蹟)의 서기가 감돈다. 여기서 육충(六忠)은 김축 절충장군(金軸 折衝將軍), 김헌 참판(金軒 參判), 김두남 의금부도사(金斗南 義禁府都事), 김지남 현감(金志南 縣監), 김기남 사복사정(金起南 司僕寺正), 김흥립 훈련주부(金興立 訓練主簿)를 일컫는다. 일효(一孝)는 일등효자 김효립 통덕랑(金孝立 通德郞)이며 사열부(四烈婦)는 반남(潘南)박씨, 김축의 처이며 함안(咸安)조씨는 김헌의 처, 영암(靈巖)박씨는 김두남의 처를 말한다. 반남박씨와 함안조씨는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사, 자결했으며 영암박씨는 비보를 듣고 기절했다 둘째아들 효립(孝立)이 손가락을 깨어 피를 드려 3일간 연명하다 시아버지의 순절과 동시에 순절했다. 이렇듯 조부모, 부모 형제 등 여섯 명이 나라를 위해 장열한 순절에 대하여 오직 김두남의 차자 효립은 실록과 문헌 유지를 받들어 조정에 상신하여 고창읍 교촌리에 나라에서 내리는 어사단서철권을 모시기 위해 어사각 지방문화재 109호를 하사해서 받았다. 고창읍 백양동에 3충신 김축, 김두남, 김지남을 모시라는 삼충부조(三忠不?)를 내린 것이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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