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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 특집 - 심원면 도천리 담암마을 홍명의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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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속으로 말할 필요가 없재. 그저 다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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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30일(수) 10:1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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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심원 면직원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심원면 도천리 담암마을(이장 최기대). 자동차를 타고도 굽이굽이 내어진 포장길을 지나면서 ‘이런 깊숙한 곳에도 마을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며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과 정취를 만끽했다. 어느새 도착한 마을회관 앞에는 담암마을 최기대 이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최기대 이장의 도움을 받으며 홍명의(85) 어르신 댁을 찾아갔다. 좁은 골목을 조심조심 운전하며 다다른 곳에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파란 물장화를 신고 머리에는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신 어르신이 바구니에 땔감을 담고 계셨다. 그분이 바로 홍명의 어르신이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라는 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신 홍명의 어르신은 하던 일을 멈추시고는 일어서시며 마치 손녀딸을 반겨주시듯 “그래, 왔는가?”하시며 손을 잡아주셨다. 어르신과 마주 잡은 손을 이끌고 아담하게 만들어진 툇마루에 앉았다. 마침 할머니께서는 마실을 나가신 터라 집안에 계시질 않으셨다. 하여 할머니께서 들어오시기를 기다리며 홍 어르신과 몇 마디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러나 귀가 많이 어두우신 홍 어르신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르신의 오른쪽 귀를 향해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질문을 해 드린 후에야 어르신이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홍 어르신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양복점에 취직하여 40여년의 세월을 실·바늘과 함께 생활하셨다. 단 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던 양복점에서 어린 나이에 눈물콧물 쏙 빼며 배웠던 그 실력은 이젠 굳어진 손마디가 말해주듯 젊었을 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계신다. 전남 함평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정춘임(81) 어르신을 만난 홍 어르신은 21살 때 담암마을에 정착을 하시며 생활터전을 꾸리셨다. 현재 거주하고 계시는 집은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100년을 넘긴 탄탄한 집이다. 요즘 대부분의 시골집들이 현대식으로 고쳐진데 반해 홍 어르신 댁은 시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우물에서 갓 퍼 올린 물을 까만 가마솥에다 데우면 안방은 뜨끈뜨끈한 온기로 가득하다. 정지(부엌의 전라도 방언)의 한 쪽 벽면에는 홍 어르신이 산에서 직접 땔감을 구해온 장작더미들로 수북하다. 여든다섯의 연세에 다리, 허리, 어깨 등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먼 거리를 자전거 페달을 밟으시며 병원도 다녀오시고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실 때 두 손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실 정도로 정정하시다. 한 시간여 가량 홍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춘임 할머니의 모습은 뵐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홍 어르신은 슬하에 9남매를 두셨지만 노부부는 생활의 모든 부분을 자식들한테 의존하지 않고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같은 곳을 바라보시며 지금까지 오셨다. 홍 어르신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깊은 속으로 말할 필요가 없재. 그저 다 좋소.”라며 아흔을 바라보시는 나이에도 수줍은 미소를 띄우셨다. 60여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생활의 불편함은 이제 삶의 일부분이 되어 무뎌졌고 그저 욕심이 있다면 마지막 가는 길 노부부가 한날한시에 함께 갈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더 바랄 것이 없으시다. 나중에라도 심원면 도천리 담암마을을 방문했을 때 홍명의 어르신과 정춘임 할머니의 건강하신 모습을 또다시 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어르신과 깊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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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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