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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송재·수남·송천 선생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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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항일의병운동 발상지격인 도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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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화) 09:36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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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호남 항일독립의병의 발상지격인 고창 신림면 가평리 도동사(道東祠)에서 지난 10일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열린 추모제는 대유학자이자 항일독립지사인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과 송재 고용진(松齋 高龍鎭) 선생, 수남 고석진(秀南 高石鎭) 선생, 송천 고예진(松川 高禮鎭)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추모제에는 최근덕 성균관장, 이강수 고창군수, 송영래 고창문화원장, 유림과 후손,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면암선생은 1880년대~1890년대에 도동사를 자주 오가며 8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수남선생과 송천선생이 인재를 양성했던 곳이다.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1905년 말 을사조약에 항거해 의병을 계획한 뒤 충남 청양에서 단식투쟁 중이시던 면암선생께 의병 봉기를 강력히 주청해 허락을 받았고, 도동사에서 의병 100여명을 소집해 본격적인 봉기준비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6년 4월13일(음력) 도동사에서 멀지 않은 태인 무성서원(면암과 같은 경주최씨인 최치원선생을 모신 곳)에서 면암선생을 의병대장으로 한 의병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000여명으로 불어난 의병들은 태인, 정읍, 순창, 구례, 곡성 등에서 전과를 올렸으나 1906년 4월22일(음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분루를 삼켜야 했다. 면암선생은 일본 쓰시마섬에 끌려간 뒤 단식하다 옥사했고, 송재, 수남, 송천선생 역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이후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1912~1914년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던 유림의 전국적인 비밀결사조직인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서 활약했다. 특히 송천선생이 고종황제로부터 1914년 2월에 독립의군부 활동과 관련해 받은 칙명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수록되고,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돼 있으며, 고종이 독립에 계속 뜻을 두고 독립운동세력을 후원했음을 증명하는 사료가 되고 있다. 이후 수남, 송천선생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청원을 넣기 위해 전국의 유림대표 137인이 참여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 장충단공원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우뚝 서 있다. 한편 도동사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이자 고창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곳에선 1946년부터 면암선생과 수남선생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962년부터는 송천선생을, 1992년부터는 송재선생까지 함께 기리고 있다. 이밖에 면암선생은 대한민국독립장 1호이며, 송재, 수남, 송천선생은 독립운동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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